사이트의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상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부장님의 자리를 메운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람은 원래 좋은 소리에 대해선 잘 듣지 못하지 않는가. 자꾸 고객사에서 들려오는 '부장님이 없으니까 지원이 잘 안된다'는 이야기만 어찌나 잘 들리던지 싶었다. 나는 원래 자존심이 세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말이 들리는 것 같으니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고 또 나는 왜 이렇게 못하는 걸까 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이러려고 이직했나'하고 내가 이직을 후회할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많이 속상해했었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 언제 출산휴가를 사용할지 그 시점이 중요해졌고, 배가 점차 불러옴에 따라 여기저기서 출산휴가를 언제부터 쓸 건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가 태어나서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출산예정일에 임박해서 쓰겠다고 이야기를 하곤 했었지만, 주체 못 할 정도로 부풀어 오르는 배와 임산부임에도 불구하고 왕복 4-5시간의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업무를 처리하라는 배려 없는 회사에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출산휴가를 미리 쓰겠다고 회사에 공지를 했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에는 비상이 걸렸다.
주먹구구식이었지만 개발계에서 개발을 완료하고 테스트를 마쳤고 이행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담당자가 프로젝트를 이탈한다고 하니 프로젝트 매니저인 PM 측과 고객사에서는 당황하였다. 책임감 없는 줄은 알았지만 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회사 측에서는 내가 출산휴가에 들어가기 전에 부랴부랴 내 그동안의 업무를 인수인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찝찝했지만 출산휴가를 들어갔고,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기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오대리, 사람이 너무 없어서 그러고, 고객사에서도 이행할 때 오대리가 와서 지원해줬으면 하는 것 같은데 시간 되면 하루만이라도 나와줄 수 있을까?"
만삭 임산부에게 그것도 늦은 밤에 왕복 4시간의 사이트를 와달라는 건 너무 무례한 부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력이 없는 회사가 안타깝긴 했지만 배려 없는 회사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났었다.
나는 인력이 없어서 염치 불고하고 부탁한다는 회사 차장님의 말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동안 배려 없던 회사를 생각해 최대한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