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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신비로운 동거,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코르도바 메스키타 대성당의 과거와 현재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Muhammad 사후 각 부족의 원로들은 무함마드의 뒤를 이을 정치·종교 지도자를 선출하였으며 그를 ‘무함마드의 후계자'란 의미의 칼리프 Caliph 라 불렀습니다. 이로부터 무함마드의 후계자 칼리프가 이슬람 세계를 다스리는 정통 칼리파 시대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정통 칼리파 시대는 오늘날 시리아 Syria 의 다마스쿠스 Damascus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크게 확장한 무아위야 1세 Mu'awiya I 의 반란으로 30여 년 간의 통치에 막을 내리고 우마이야 왕조 Umayyad Caliphate 가 새롭게 들어섭니다.


최초의 세습 칼리파 국가인 우마이야 왕조는 비록 광대한 영토 정복을 바탕으로 이슬람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아랍 우월주의와 피정복민에 대한 강압적 통치 등으로 9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존속한 비운의 왕조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새롭게 부상한 아바스 왕조 Abbasid Caliphate 의 시조 아부 알 아바스 Abu al-Abbas (as-Saffah) 는 우마이야 칼리프를 전복시킨 후 왕족을 몰살시키는데, 이 때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왕자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Abd al-Rahman I 는 아직 아바스 왕조의 세력이 미치지 못 한 이베리아 반도로 도주합니다. 756년 아브드 알 라흐만 1세는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 Córdoba 를 수도로 한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으며, 이것이 후(後)우마이야 왕조 Caliphate of Córdoba 입니다.


무슬림의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미나레트 Minaret 를 개조한 종탑

오늘날 스페인 코르도바의 대표 관광지 메스키타 Mezquita-Catedral de Córdoba (성모 승천 대성당 Catedral de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는 과거 이베리아 반도에서 번성한 이슬람 세력의 문화와 건축 기술 등을 매우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곳입니다. 메스키타는 이슬람 사원을 의미하는 모스크 Mosque 의 스페인어로 일반명사이지만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압도적 존재감으로 인해 관사를 붙여 La Mezquita 라 불립니다. 메스키타는 후우마이야 왕조를 건국한 아브드 알 라흐만 1세의 명에 따라 785년 기존 서고트족의 교회를 개축하여 2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내에 완공되었습니다. 최초의 메스키타는 74mx79m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사원이었으나 이후 코르도바가 이슬람 세계의 경쟁자인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 Baghdad 는 물론이고 동로마 제국 Eastern Roman Empire (Byzantine Empire)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 에 견줄 만큼 중세 최고의 도시로 성장하면서 그 위상에 맞는 확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987년 메스키타는 2백 여년에 걸친 증축 공사 끝에 2만5천 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23,400m² 규모의 사원으로 거듭났으며 이는 당시 세계 두 번째 규모의 거대한 모스크였습니다.


메스키타의 상징인 이중 아치와 기둥

메스키타의 상징은 붉은 돌과 흰 돌을 번갈아 사용한 이중 아치와 기둥입니다. 856개의 기둥엔 이오니아 Ionic order, 도리아 Doric order, 코린트 Corinthian order 양식의 주두 柱枓 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는 과거 코르도바에 산재한 로마 및 서고트 건축물의 기둥을 메스키타 건축에 재활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기둥들이 원하는 천장 높이만큼 충분히 길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상당한 건축적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이중 아치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쪽 말굽 형태의 아치는 지지대 역할을, 위쪽 반원형 아치는 지붕을 떠받드는 역할을 합니다.


무슬림의 기도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모스크의 핵심 공간 미흐랍 Mihrab

미흐랍 Mihrab 은 무슬림이 올바른 방향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이슬람 성지 메카 Mecca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모스크의 핵심 공간입니다. 무데하르 Mudéjar 양식의 열쇠구멍 형태를 띈 메스키타의 미흐랍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칼리프 알 하캄 2세 Al-Hakam II 는 메스키타의 미흐랍을 화려한 황금 장식으로 꾸미길 원했습니다. 이에 당대 최고의 모자이크 기술을 보유한 동로마 제국 황제에게 전문 모자이크 기술자의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는데, 황제는 그에 대한 회신으로 약 1,600kg의 모자이크 조각과 모자이크 장인을 함께 선물로 보냅니다. 이 모자이크 장인은 후우마이야 왕조의 장인들이 스스로 모자이크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훈련을 시켰고, 그 결과 화려한 황금 모자이크로 뒤덮인 메스키타만의 아름다운 미흐랍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메스키타의 미흐랍이 눈길을 끄는 또다른 이유는 무슬림의 기도 방향을 뜻하는 키블라 Qibla 의 색다른 해석 때문입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키블라는 메카의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메스키타의 미흐랍은 코르도바를 기준으로 남동쪽에 위치한 메카 방향이 아닌 남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형태는 알 안달루스 Al-Ándalus 와 마그레브 Maghreb (현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지역의 관행으로, 이는 ‘키블라란 동쪽과 서쪽 사이에 자리한 모든 방향’이라는 과거 무함마드의 말씀을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메스키타 중앙 부분에 건설된 대성당

이슬람 세력이 지배 하의 코르도바는 당대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으나 1236년 기독교 세력인 카스티야 Castilla 의 페르난도 3세 Fernando III 에 의해 정복되며 메스키타 또한 수난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메스키타는 작은 예배당과 기독교식 무덤이 추가되는 등 기독교 성당으로 용도가 변경되었으며, 16세기에는 메스키타 중앙 부분에 대성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부분 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메스키타의 아름다움에 감명을 받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로스 5세(카를 5세 Karl V, 에스파냐 국왕 카를로스 1세 Carlos I)는 대성당 완공 후 몰라보게 달라진 메스키타의 모습을 보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을 위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건물을 훼손했다.’는 한탄을 남겼다는 후일담이 전해집니다. 오늘날 메스키타는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성당의 기묘한 동거 형태에도 불구하고 알람브라 궁전 Alhambra 과 함께 가장 중요한 안달루시아 건축 유산 중 하나로 꼽히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UNESCO World Heritage Site 으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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