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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월이면 시카고 강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이유

아일랜드 수호성인을 기리는 성 패트릭 데이 St. Patrick Day

영화 도망자 (the Fugitive, 1993)

1993년 영화 '도망자'는 해리슨 포드, 토미 리 존스, 줄리안 무어 등 최고 배우들의 출연으로 1994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웰메이드 액션 스릴러 작품입니다. 주인공 리처드 킴블(해리슨 포드 분)은 저명한 의사였지만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도망자가 됩니다. 극중 갖은 고초를 겪은 주인공은 억울한 누명을 스스로 풀어내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데요.

영화 '도망자'에 등장하는 초록색으로 물든 시카고 강

위 사진은 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시카고 강의 모습입니다. 특이한 건 강이 초록색이라는 점인데요. 영화 개봉 당시 강이 원래 초록색인지, 아니면 촬영 당시 녹조가 낀 것인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했던 기억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그렇게 의문으로 제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 시카고 강의 초록 빛깔은 이후 우연한 계기로 그 원인을 찾게 되었는데요. 시카고 강이 초록색이었던 건 놀랍게도 시카고 시민들이 일부러 시카고 강에 초록색 염료를 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그들은 왜 멀쩡한 강에 염료를 뿌렸을까요?

초록색으로 물든 시카고 강

3월 17일은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패트릭을 기리는 성 패트릭 데이 St. Patrick Day 입니다.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1800년대 이후 아일랜드 이민자와 그 후손들에 의해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는 성 패트릭 데이 축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시카고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행사입니다. 영화 '도망자' 속 장면처럼요. 이 특별한 전통은 1962년 시카고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고국의 문화와 전통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초록색으로 물든 시카고 강 위에서 여유롭게 카약을 즐기는 모습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에 발생한 대기근으로 많은 아일랜드인은 부득이 고국을 버리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아일랜드인에게 인기 있던 목적지는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시카고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중 시카고는 2차 산업과 농업이 함께 발전했기 때문에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결국 시카고는 다수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사는 도시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자신들의 수호성인인 성 패트릭을 기리는 대규모 행사가 해마다 시카고에서 개최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3월 16일 아침이면 시카고 시민과 방문객들은 이른 아침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시카고 강에 초록색 염료를 뿌리는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강변에 모입니다.

아일랜드 전통 복장을 입은 퍼레이드 행렬

그렇다면 아일랜드인들은 왜 시카고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였을까요? 과거 아일랜드는 울창한 초록빛 풍경으로 '에메랄드 섬'이라 불렸습니다. 또한 성 패트릭이 이교도였던 아일랜드인에게 성삼위일체 聖三位一體, Trinity 를 설명할 때 클로버의 일종인 샴록 Shamrock 을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초록색은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성 패트릭 데이가 되면 초록색 복장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찬 성대한 퍼레이드가 개최되며 축제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릅니다. 오늘날 성 패트릭 데이는 아일랜드의 전통과 문화를 기리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와 문화 간의 연대를 상징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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