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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에 성 크리스토퍼 벽화가 그려진 이유

여행자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퍼

톨레도 대성당 Catedral de Toledo 의 남쪽 출입구인 사자의 문 Puerta de los Leones 을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벽에 아기 그리스도를 어깨에 짊어진 거대한 성 크리스토퍼 Saint Christopher (스페인어 San Cristóbal) 의 벽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벽화는 유럽의 다른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형태인데요. 이는 1638년 가브리엘 드 루에다 Gabriel de Rueda 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이 벽화가 이렇듯 특별한 모습을 갖게 된 배경 속에는 성 크리스토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톨레도 대성당의 전면 파사드

성 크리스토퍼의 본명은 레프로보스 Reprobus 입니다. 2.3m에 달하는 거인이었다고 전해지는 그는 자신보다 강한 자를 섬기기 위해 가나안 왕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왕이 악마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곧 그를 떠나 악마를 찾아 나섰습니다. 레프로보스는 스스로 악마라 칭하는 자를 만나 그를 섬기려 했지만 그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악마 곁을 떠나 다시 그리스도를 찾아 나선 레프로보스는 어느 날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 은둔자를 만나게 됩니다. 레프로보스는 그 은둔자로부터 돈이 부족해 배를 타고 강을 건널 여유가 없는 여행자를 돕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다는 조언을 듣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레프로보스는 가난한 여행자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강을 건너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자의 문의 사자 상

그러던 어느 날 레프로보스는 강을 건너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한 아이를 만납니다. 별생각 없이 그 아이를 자신의 어깨 위에 짊어지고 강을 건너기 시작한 레프로보스는 곧 이 아이가 너무도 무겁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에 의지하여 간신히 강을 건넌 레프로보스는 기진맥진하여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를 건너게 해주려다 큰일 날 뻔했지 뭐냐. 어찌나 네가 무겁던지 마치 온 세상을 짊어진 것 같았단다." 그러자 아이는 "방금까지 자네 어깨에는 온 세상과 그 세상을 만드신 분이 앉아 계셨다네. 내가 바로 자네가 찾던 만유의 왕 그리스도라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자 종려나무로 만든 레프로보스의 지팡이는 땅에 뿌리를 깊게 내렸고 푸른 잎이 돋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톨레도 대성당의 성 크리스토퍼 벽화. 바로 옆 오르간과 출입구 등을 통해 이 벽화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이후 레프로보스는 여행자와 순례자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퍼 Saint Christopher 가 되었습니다. 영어권에서 흔히 쓰이는 크리스토퍼 Christopher 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Χριστόphορος (Christóphoros, Christóforos)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Χριστός (英 Christ)와 ‘옮기다’를 뜻하는 ψέρειν (英 bring)의 합성어로 ‘그리스도를 옮기는 자’로 해석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교회에서는 순례자들이 교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도록 남쪽 문에 성 크리스토퍼의 형상이나 조각상을 두곤 했습니다. 따라서 톨레도 대성당의 남쪽 출입구인 사자의 문 옆에 성 크리스토퍼의 거대한 벽화가 있는 것은 이러한 전통을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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