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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에스코리알 궁전은 왜 산기슭에 건설됐을까?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신앙과 의지의 결정체, 엘 에스코리알

엘 에스코리알 왕립 수도원 Real Monasterio de San Lorenzo de El Escorial (이하 엘 에스코리알)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독특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이곳은 왕궁, 바실리카, 수도원, 도서관, 왕실 판테온 등을 포함하는 복합 건축물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Madrid 에서 북서쪽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합니다. 엘 에스코리알은 톨레도 Toledo, 세고비아 Segovia, 아랑후에스 Aranjuez 등과 함께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인기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UNESCO World Heritage Site 으로 등재된 곳입니다.

멀리서 바라 본 엘 에스코리알 전경

엘 에스코리알은 스페인 왕 펠리페 2세 Felipe II de España 의 명에 따라 1563년 건축이 시작되어 1584년에 완성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왕궁이 과다라마 산맥 Sierra de Guadarrama 의 아반토스 산 Monte Abantos 기슭에 건설되었다는 것입니다. 왕궁 부지라기엔 다소 이례적인 이곳은 사냥감과 장작이 풍부하고 공기와 물이 좋으며 근처에는 화강암과 점판암 채석장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펠리페 2세가 아반토스 산에 엘 에스코리알을 건설한 이유는 여러 가지 역사적, 전략적, 종교적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이 왕궁이 평지가 아닌 산에 위치한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엘 에스코리알 바실리카 파사드와 왕들의 안뜰

1. 종교적 상징성

펠리페 2세는 깊은 가톨릭 신앙을 가진 군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엘 에스코리알은 성 로렌조 San Lorenzo 에게 헌정된 왕궁이자 수도원입니다. 펠리페 2세는 1557년 8월 10일 생 쿠엔틴 Saint Quentin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했는데, 그날이 바로 성 로렌조의 축일이었습니다. 펠리페 2세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왕궁을 건설하기로 결심했으며 이곳의 이름과 위치 또한 이 성인을 기리기 위해 신중하게 선택되었습니다.

요새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엘 에스코리알

2. 전략적 위치

아반토스 산의 위치는 군사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왕궁이 위치한 곳은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45km 떨어져 있어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전략적 위치입니다. 이 지역은 자연 방어벽 역할을 하여 왕궁과 그 안에 있는 중요 인물들을 보호하는 데 유리합니다.


3. 기후와 환경

아반토스 산의 고지대는 스페인의 무더운 여름 날씨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입니다. 엘 에스코리알은 해발 약 1,028m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비교적 시원한 기후를 유지합니다. 이는 왕실과 수도원 주민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엘 에스코리알 바실리카의 정문

4.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

엘 에스코리알은 단순한 왕궁이 아니라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펠리페 2세는 이곳에 대규모 도서관 짓고 예술품들을 모았는데, 이는 당시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고지대에 위치한 왕궁은 이러한 활동들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었습니다.

엘 에스코리알 바실리카의 파사드. 가운데 두 석상 중 왼쪽은 다윗, 오른쪽은 솔로몬이다.

5. 건축적 고려사항

펠리페 2세는 엘 에스코리알을 ‘제2의 솔로몬 성전’으로 구상했으며, 왕궁의 건축은 그의 개인적인 비전과 종교적 신념을 반영합니다. 아반토스 산의 위치는 이러한 웅장한 계획을 실현하는 데 이상적이었으며, 견고한 바위 지대에 지어져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었습니다.

엘 에스코리알 바실리카의 돔

엘 에스코리알은 외관상으로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며, 궁전이나 수도원보다는 요새의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이 깊었던 펠리페 2세가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던 종교개혁의 거대한 파고에 맞서 건축가에게 보다 엄격하고 고귀하며 위엄 있는 건축물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엘 에스코리알 중앙의 거대한 돔은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부터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음에도 최대한 단조로운 모습으로 구현되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종교개혁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습니다.

엘 에스코리알 왕립 도서관

이렇듯 다소 경직된 외관과 달리 엘 에스코리알 왕립 도서관 Real Biblioteca del Monasterio de San Lorenzo de El Escorial 은 처음부터 기념비적인 예술 작품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이곳은 공간 계획에 있어 중세의 관습을 과감하게 무너뜨린 유럽 최초의 도서관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엘 에스코리알 건축의 총책임자였던 후안 데 에레라 Juan de Herrera 는 책장을 벽과 직각 형태로 나란히 배열시키는 중세식 스톨 시스템 Stall System 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벽을 따라 책장을 배치하는 벽 시스템 Wall System 을 최초로 도입하였습니다. 이후 이 도서관의 공간 계획은 유럽 전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바티칸 도서관 Bibliotheca Apostolica Vaticana 또한 엘 에스코리알 왕립 도서관의 공간 배열에서 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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