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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의 상처와 화해의 상징 전몰자의 계곡

화해와 분열의 현장이 되어 버린 기념비적 건축물

전몰자의 계곡 Valle de los Caídos 은 마드리드 지방 산 로렌조 데 엘 에스코리알 San Lorenzo de El Escorial 자치구의 과다라마 산맥 Sierra de Guadarrama 남쪽 끝 쿠엘가무로스 계곡 Valle de Cuelgamuros 에 위치합니다. 엘 에스코리알 왕립 수도원 Real Monasterio de San Lorenzo de El Escorial 에서 북쪽으로 약 9.5km,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이곳은 스페인 내전 Guerra civil española(1036-1939)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1940년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Francisco Franco(1892-1975)의 명령으로 건설된 복합 건축물입니다.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후, 좌우로 나뉘어 극렬히 대립하는 자국민의 화합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승자(국민파)와 패자(공화파)의 시신 3만 3천여 구를 전몰자의 계곡에 함께 안장했습니다.

전몰자의 계곡 전경

스페인 최대 규모의 국립묘지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전몰자의 계곡은 네오 에레리안 양식 Neo-Herrerian 을 적용한 기념비적 건물입니다. 이 양식은 엘 에스코리알의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 Juan de Herrera 가 창시한 에레리안 양식 Estilo Herreriano 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 프랑코가 흠모했던 스페인 왕 펠리페 2세 Felipe II de España 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엘 에스코리알을 오마주한 것입니다.

동굴로 건설된 전몰자의 계곡 성 십자가 대성당 Basílica de la Santa Cruz del Valle de los Caídos

전몰자의 계곡의 정상에는 4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높이 152.4m의 거대한 십자가가 화강암 산 위에 우뚝 서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십자가 바로 아래에는 동굴로 건설된 전몰자의 계곡 성 십자가 대성당 Basílica de la Santa Cruz del Valle de los Caídos 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본산인 성 베드로 대성당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를 자랑하는 이 대성당은 1960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바실리카(대성당)로 선언되었습니다.

전몰자의 계곡 성 십자가 대성당 입구 상단에 위치한 피에타 La Piedad (높이 5m, 길이 12m)

전몰자의 계곡은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딛고 화해를 위해 건설되었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국민파와 공화파의 유해 3만 3천여 구가 평화롭게 안장된 듯 보이지만, 패자인 공화파의 시신 대부분은 유가족의 동의 없이 임의로 이장된 것입니다. 투표에 의해 성립된 정통성을 갖춘 정부(공화파)를 쿠데타로 전복시킨 프랑코를 비롯한 국민파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공화파 인물들을 학살 및 암매장했고,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다시 이들의 시신을 파헤쳐 화해와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자신들의 승전기념비와도 같은 건축물(전몰자의 계곡)에 매장한 사실은 두고두고 논란의 여지를 낳고 있습니다.

전몰자의 계곡 수도원 Abadía de la Santa Cruz del Valle de los Caídos 의 아케이드형 복도

또한 프랑코의 유해가 이곳에 묻혀 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전몰자의 계곡에 묻힌 유일한 스페인 내전의 생존자였던 프랑코로 인해 이곳은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또한 묘비는커녕 묘비명도 없는 3만 3천여 구의 무명의 시신과 달리 프랑코의 그것은 묘비를 갖춘 유이한 묘지였습니다. 이는 이곳에 묻힌 이들(특히 공화파)이 대성당과 수도원을 위한 조연일 뿐이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입니다. 결국 수많은 논란 끝에 그의 유해는 2019년 엘 파르도 El Pardo 의 밍고루비오 묘지 Mingorrubio Cemetery 로 이장되었습니다. 이는 2011년 스페인 사회주의 노동당 정부가 공화파의 극심한 반대에 맞서 전몰자의 계곡을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모든 스페인 시민을 기리는 기념물로 지정하고, 프랑코 묘지의 이장을 제안한 결과입니다.


이 외에도 공사에 투입된 노동자 중 일부가 복역 기간 단축과 노동력을 교환한 수감자들이었으며, 이들의 대부분이 공화파 측 정치범이었다는 사실 또한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이렇듯 내전 후 유럽 최빈국으로의 전락, 독재 정권의 득세, 그리고 그에 따른 이념 논쟁과 진영 갈등 등 스페인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통해 스페인의 아픈 역사와 우리의 역사 사이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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