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의 독점,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국내 항공업계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이번 합병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국제 항공동맹에서의 입지 확장과 통합된 운영 시스템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공기 유지 보수 및 인력 운영 등에서 비용 절감을 이루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과잉 공급을 줄여 항공기 가동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이러한 인수합병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독과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존재하는데요. 이에 2004년 에어프랑스와 KLM 네덜란드항공의 기업 결합 이후 발생했던 부정적 사례를 참고하여, 양사 간 합병이 불러올 부작용 6가지를 소비자 측면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경쟁이 사라지며 독과점 체제가 형성되면 항공 요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대규모 합병은 법적, 재정적 절차에 상당한 비용을 초래하며, 초기에는 비용 절감보다 추가 지출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예측은 더욱 설득력을 얻습니다. 또한 국내에서 유이한 전통적인 항공사(FSC)가 하나로 합쳐지면 외항사 및 저비용 항공사(LCC) 운임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사 합병 후 중복 노선이나 수익성이 낮은 노선은 통합된 항공사에 의해 축소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특정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대한항공에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노선의 일부를 타 항공사에 이관토록 요구했으며, 이들은 저비용 항공사인 티웨이항공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해당 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앞으로 서비스의 편의성을 감소시키는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하거나 외항사의 경유편을 이용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두 항공사 간의 경쟁이 사라지면, 그동안 양사가 운영하던 차별화된 서비스가 약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주요 노선의 일부가 저비용 항공사로 이관되면서 서비스 품질이 전반적으로 저하될 우려도 있습니다. 특히 저비용 항공사는 일반적으로 출발 지연, 기체 결함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상대적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의 서비스 경험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는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 기준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용카드사 기준 대한항공은 일반적으로 1,500원당 1마일 적립이 가능한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1,000원당 1마일을 적립해 왔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가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전환되면 그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된 양사는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에 대한 혜택을 줄이거나, 사용 제약을 늘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스타 얼라이언스 Star Alliance 는 190개국 이상, 1300여 개 공항을 연결하는 세계 최대 항공 동맹체입니다. 이번 기업 결합으로 아시아나항공이 스타 얼라이언스를 탈퇴하게 되면, 승객들은 그동안 누려온 회원사 간 원활한 환승과 다양한 노선 선택의 혜택을 잃게 됩니다. 특히 스타 얼라이언스를 통해 연결되던 일부 노선이 대한항공이 속한 스카이팀 SkyTeam 으로 대체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특정 노선의 접근성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카이팀에 비해 회원사 간 마일리지 적립과 사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스타 얼라이언스 탈퇴는 마일리지를 활용한 항공권 예약에 제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합병 이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점유율은 약 7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 저비용 항공사인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과 같은 양사의 계열사들의 점유율을 합칠 경우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한 국제선의 독과점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저비용 항공사 간 경쟁으로 운임이 다소 하락할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추가적인 항공사 간 인수합병 등으로 저비용 항공사의 운임 또한 상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페이팔 PayPal 공동 창업자 피터 틸 Peter Thiel 은 그의 저서 ‘제로 투 원 Zero to One’에서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 없는 독점적인 시장을 구축하거나, 경쟁자들보다 월등히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죠. 마치 이 같은 틸의 철학에 영감을 받은 듯, 대한항공은 유럽 주요 노선 일부를 티웨이항공에 넘기고 아시아나항공의 핵심 사업인 화물 부문을 매각하면서까지 양사의 합병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국내 항공 산업이 본격적인 독점 체제로 전환될 것이 예상됨에 따라 향후 소비자의 권익은 어떻게 변화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