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더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마음이 갑갑하고 터질 것 같았던 어느 시기였을 것이다. 난 혼자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훌쩍 떠났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뒤 짐을 풀었다. 비린내 나는 자갈치 시장에 위치한 곳이었다. 2층 침대가 양쪽에 세줄씩 줄지어있는 12인실 도미토리, 그중에 협소한 나의 공간 하나. 피곤한 탓에 그 침대에 잠시 몸을 눕혔다. 하얀 시트에 먼지가 그득했는지 콧속이 근질근질해졌다. 자꾸 재채기가 났지만 왠지 마음이 편안했다. 집에서는 내 방에 혼자 있어도 온전히 혼자인 기분이 아닐 때가 많은데. 떠나온 여행지에서는 한 방에 12명과 함께 있어도 온전히 나 혼자인 느낌이었다. 저녁으로 회가 먹고 싶어서 바로 앞 회센터를 향했다.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사방에서 웅왕웅왕 울려댔다. <ㅇㅇ수산>이라는 팻말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수많은 횟집들 중에, 난 그저 자리가 남아있는 곳을 찾아가서 앉았다. 횟집 이모는 정말 혼자 왔냐고 재차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하며 여쭈어보았다. “이모, 혹시 매화수 있어요?” 이모는 매화수는 없고 더 비싸고 좋은 설중매밖에 없다고 하셨다. 나는 광어회와 설중매를 주문했다. 이모는 나에게 용기가 대단하다며, 기특하다며 자꾸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셨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은 부산에도 혼자 회에 술 한잔 하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나 보다. 하여간 이모는 왠지 다 먹지도 못할 서비스를 자꾸만 챙겨주셨다. 민망하면서도 괜스레 좋았다.
회를 오물오물 씹으며 잔에 혼자 설중매를 따랐다. 그리고 배낭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서는 내 감정을 적어내려 갔다. 바로 앞 테이블과 대각선 테이블과 뒷테이블에서 얼굴이 벌게진 아줌마, 아저씨들이 큰 소리로 대화를 하고 계셨지만 왠지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혼자 있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아 주셔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먹는 게 느린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천천히 회 한 접시와 설중매 한 병을 비웠다. 나무줄기에서 나뭇가지 뻗듯 술기운이 머릿속으로 스르르 퍼졌다. 숨 막힐 것 같던 그 갑갑함이, 휴, 한결 풀리는 기분이었다.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워낙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과 부대끼던 나에게는. 또 워낙 공부와, 일과, 책임에 묶여있던 나에게는. 아주 가끔은 고독과, 적막함과, 주변과의 단절이 필요했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혼자를 즐겼다. 혼자 술을 마시러 가거나, 혼자 드라이브를 가거나,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혼자 산책을 하곤 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퇴사 후 출퇴근을 안 한 지 8개월째.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그 누구와도 부대끼지 않는다.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영상 작업을 하고,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책을 읽는다. 매일 이렇게 혼자 있는데도 신기하게 혼자가 지겹지 않다. 이 외로움이, 이 쓸쓸함이 좋다.
고독은 군중들 사이로 나아갈 에너지를 충전해준다.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하고, 또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아직 나는 군중들 속에 나아갈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이렇게 여전히 고독이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