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온갖 강아지 사진과 영상들을 보며 앓는 소리를 내는 일. 산책 나온 반려견을 마주칠 때마다 주인이 부러워 한숨 쉬는 일. 우리 집에 강아지가 뛰노는 장면을 상상하는 일. 시도 때도 없이 유기견 앱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강아지를 찾는 일.
간절히 바라지만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무기력해지곤 한다. 요즘의 내가 그랬다. 반려견을 입양하고픈 마음의 크기는 나의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점차 거대해졌다. 하지만 그 지경이 되면서도 차마 행동으로 옮길 엄두는 내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쉽사리 새로운 자리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12년가량을 함께한 반려견이 있었다. 시츄였던 그 아이. 눈이 똥그랗고 초롱초롱했던 그 아이. 아래턱이 돌출되어 아랫니가 윗입술을 덮고 있었던 그 아이. 어딘지 모르게 나를 닮았던 아이. 멍청한 게 매력이었던 아이. 정말이지, 못난이라서 더욱 귀여웠던 아이.
이 글에서는 그 아이를 ‘꿍’이라고 칭하겠다. 안타깝게도 꿍은 처음 데려왔던 아가 시절부터 허약 체질이었다. 일생동안 피부병에 시달렸고 언제부턴가는 요로 결석이 생기는 바람에 몇 번이고 수술을 했다. 동물 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혹시나 꿍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아픈 가족과 함께 사는 일은, 게다가 그 가족이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강아지라는 사실은 아주 많이 슬펐다.
돌이켜보면, 나는 꿍에게 좋은 누나가 아니었다. 책임질 행동은 하지 않고 그저 예뻐할 줄만 알았다. 꿍이 아플 때마다 눈물은 제일 잘 흘렸어도, 막상 꿍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부끄럽게도 잘 떠오르질 않는다.
반면 꿍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학창 시절 난 우울증을 앓았는데,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서 울고 있자면 꿍이 문을 박박 긁곤 했다. 문을 열어주면 꿍은 내가 앉아있는 침대로 폴짝 올라와서는 몸을 둥글게 말고 내 옆을 지켰다. 어찌나 다정했는지,나는 종종 꿍을 부둥켜안고 그 복실한 털을 쓰다듬으며 실컷 울었다. 고된 시기에 그 아이와 나눈 정서적 교감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사연이 이렇다 보니 무지개다리를 건넌 꿍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산책도 자주 못 시켜줘서 미안해, 그저 받기만 해서 미안해, 모든 것들이 다 미안해, 미안해......그리고 나는 줄곧 말하곤 했다.
"난 앞으로 강아지 못 키울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러니까, 분명 그랬던 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반려견 타령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준비도 안됐는데 누굴 데리고 오겠다는 거야? 최대한 단호해지려 노력했지만 감정은자꾸 나의 이성을 침범해왔다.간절함의 밀도와 두려움의 밀도가 동시에 두터워지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느라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중 나의 생일이 다가왔다. 남편이 어떤 선물을 갖고 싶냐고 묻기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했다. 강아지를 선물해줘, 라는 말 대신, 같이 유기견 쉼터에 봉사를 가줘,라고. 가족을 들이는 일은 천 번 만 번 신중해야 할 일이지만 봉사활동은 그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남편이 기꺼이 응해준 덕에 평소 내가 눈여겨보던 유기견 쉼터에 가게 되었다. 주인 분이 가정집에서 열댓 마리 가량의 강아지들을 임시 보호하며 입양을 보내고 있는 곳이었다. 우린 최대한 편한 옷을 입고 그곳을 찾았다.
문을 열자마자 귀여운 똥강아지들이 나를 향해 반갑게 달려들었다. 그 아가들에게 깔리는 바람에 나는 방바닥에 벌러덩 누운 것도 모자라 마스크고 머리카락이고를 다 뜯겨버렸다. 아, 이게 뭐라고. 그렇게나 황홀해졌다 나는.
우리는 여섯 마리의 강아지를 차례대로 목욕시켰다. 순둥순둥한 아가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씻기는 도중에도 쉴 새 없이 그 조동이에 뽀뽀를 해주었다. 목욕을 시킨 뒤에는 강아지들과 실컷 놀았다. 모두들 우리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내 품에 안겨서 잠이 들기도 하고, 앙앙 물며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또 손과 얼굴 등을 핥으며 애정 표현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5시간 정도 머물렀을까. 놀다 지친 강아지들은 남편과 나의 발과 무릎을 하나씩 차지하고서는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이 천사들을 뒤로하고 떠나려니 마음이 저릿해졌다. 잠든 아가들이 깨버리기 전에 살금살금 집을 나왔다. 나와서 보니 온 몸에는 강아지 털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울을 보니, 강아지들이 내 머리카락을 뜯어먹은 탓에 없던 앞머리까지 생겼다. 그 짧은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 복잡한 감정이 폭발하여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가들과의 소란스러웠던 시간을 생각하며, 또 꿍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엉엉 흐느꼈다. 봉사라고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도리어 내가 큰 위로를 받았다. 나의 첫 유기견 쉼터 봉사는 이렇게 끝이 났다.
앞으로 그 쉼터에 자주 가게 될 것 같다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마음의 준비가 확실하게 되기 전까지 입양 생각은 최대한 참아보려구. 대신 쉼터에 종종 가서 아이들을 놀아주고, 씻겨주고, 보듬어줄래.”
그렇게나는 중대한 결정을 한 차례 미루었다.과연 언젠가는 새로운 반려견과 다시 시작할 수 있을런지. 생각을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어보아도,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조금 더 크다.
시작이란 이토록 쉽지 않은 일이다. 설령 그게 다시 시작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대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기로 했다. 봉사를 통해 꿍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강아지에 대한 당장의 갈증을 덜면서. 언젠가 준비를 마칠 그날까지, 나는 계속해서 쉼터에 가볼 생각이다.
시작이 어렵다면 일단은 쉬운 일부터 실천해보는 게 어떨까. 해결되지 않던 묵직한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