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지극히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 시끄러운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소리이지만 누군가는 어떤 소리가 지나갔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한 달 전 나와 남편은 태어난 지 3개월가량 된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름은 달콩이라고 붙였다. 달콩이는 유기견의 새끼로 태어나 약 두 달 만에 구조되었다.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소리를 경험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소리에 무척이나 민감하고 겁이 많다. 강아지는 어렸을 때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어야 덜 예민하게 큰다고 한다. 안 그러면 성견이 되어서도 낯선 소리가 들리면 격하게 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달콩이를 다양한 소리에 노출시켜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삼 놀랐던 것은, 이 세상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소리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우리의 귀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이 소리들은 백색소음이 아님에도 백색소음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곁에 머문다.
함께 산책을 나가면 여기 가자, 저기 가자 보채는 달콩이 덕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벤치에 앉아 쉬어가기도 한다. 이럴 때 1인칭 달콩 시점에 몰입하여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토끼같이 쫑긋 서 있는 달콩이의 두 귀가 끼우뚱 끼우뚱 바쁘게 움직일 때면 어딘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발소리, 자동차 브레이크 밟는 소리, 짹짹거리는 새소리, 아이들이 꺄르르 웃는 소리, 바스락 봉지 뜯는 소리,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무심코 지나치는 소리 하나하나가 달콩이의 세계에서는 모두 새롭고, 궁금하고, 그렇기에 두렵기도 한 존재인 것이다.
달콩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따지자면 나는 소리에 꽤 민감한 편이다. 아무래도 예민한 성격 탓이 아닐까 싶다. 강아지도 예민하게 자라면 많이 짖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는 짖지는 않지만.) 소음에 노출될 때면 내 속에서는 쉽게 짜증이 솟구치곤 한다. 나의 오빠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종종 오빠에게 화를 내고 다투었던 기억이 있다. 그와 나는 평소에 거의 싸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TV 소리마저도 싫어한다. 많은 가정집에서 사람이 있는 한, 거의 매일, 고정적으로 TV를 켜놓는다. 마치 태초에 이 집이 탄생할 때 벽이 있고 바닥이 있고 천장이 있는 것처럼. TV도 아주 당연하게 존재하고 당연하게 화면이 움직이고 또 당연하게 소리가 흘러나오곤 한다.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우리 집이 그랬다. 아빠는 일을 다니실 때도 출근 전, 퇴근 후에는 꼭 TV를 켜 두셨다. 그러다 은퇴를 하신 뒤로는 더더욱 매일같이 TV를 틀어놓으셨다. 아빠는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심지어 기타 연습을 하실 때도 TV는 여전히 웅왕웅왕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와 나는 질색을 하며 “제발 하나만 하시라”고 했지만 아빠는 어떤 상황에서도 TV의 전원은 끄지 않으셨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매번 방 안에 처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요즘도 친정집에 가면 안방과 거실 TV 모두에서 소리가 엉켜서 흘러나올 때가 있다. 왜 그리 시끄러운 걸 좋아하시나, 이해를 못 했는데 아빠는 아마도 고요한 공기를 잘 견디지 못하시는 듯하다. 은퇴한 아버지들은 유독 허전함과 쓸쓸함을 많이 느끼시곤 하지 않는가. 아빠는 그런 감정들을 TV 소음으로 묻어버리시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더욱 이해하게 된 것은 시골에 살고 계신 이모 댁에 놀러 갔을 때였다. 이모는 시골에서 미용실을 운영하시는데, 직장 때문에 이모부와는 주말부부이고, 다 큰 아들내미들도 이모부와 도시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서 혼자 살고 계신다. 나는 좋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정화시킬 요량으로 이모 댁에 내려가 며칠 동안 머물렀다.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만, 직접 목격한 인기 미용실 사장님의 하루는 무척이나 고단했다. 온종일 힘들게 일을 하고 마친 이모는 집에 오면 나와 맥주를 한 잔씩 했다. 그리고는 조금 수다를 떨다가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다 말고 눈이 떠지는 바람에 나는 거실에 나와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모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시각 새벽 3시.
‘내일 출근하셔야 하는데 아직도 안 주무시나?’
이모 방으로 가서 빼꼼 쳐다보니 TV가 아주 큰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TV의 빛은 끊임없이 형형색색으로 바뀌며 이모가 누워있는 침대를 비추었다. 이모는 아주 깊게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대체 어떻게 주무시는 거지...? 시끄러운 TV 앞에서는 밥조차도 못 먹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의아한 광경이었다. 리모컨을 찾아서 TV를 끄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곤히 잠든 이모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냥, 왜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 뒤로도 이모는 주무시기 전 무조건 TV를 크게 틀었다. 그러다 잠에 드셨다. 피로한 하루의 끝. 당장이라도 단잠에 들고 싶지만 어둠과 고요함이 먼저 덮쳐오는 시간. 이모는 그 시간을 무탈하게 지나기 위해 TV 전원을 켠다. 볼륨은 온 집안이 울릴 정도로 크게. 그 고요함이 사라지면 이모의 복잡한 마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제서야 피로한 몸은 잠을 부른다.
나는 여전히 TV 소리를 싫어하지만, 어른들이 TV 소리를 크게 트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차가 지나가는 소리에는 무심하지만, 달콩이가 그 소리에 놀랄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소리란 모두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소음일지라도. 아마 누군가에게는 소란스러운 마음을 묻어버리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