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정 Jan 27. 2021

산책견으로 키우다 보니

#6-3 실내 배변과 실외 배변

달콩이는 3차 접종 이후로 매일 같이 산책을 나갔다. 사회성을 키우기 위함도 있었지만 달콩이의 에너지는 다른 일반적인 강아지들의 에너지와 비교해도 실로 엄청났더랬다. 이를 방출할만한 수단이 필요했는데,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는 정도로는 한참 부족했다. 게다가 많은 전문가들이 강아지에게는 산책이 만병통치약이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 분리불안에도 좋다고 하니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나가는 것이 마땅한 나의 의무였다.
 
 산책은 나의 시간과 의지만으로 쉽게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달콩이는 산책이라면 환장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네스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매일 하네스를 들고 달콩이와 한바탕 술래잡기를 하고 나서야 산책을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면, 내가 달콩이를 산책시키는 건지 달콩이가 날 산책시키는 건지 헷갈릴 만큼 달콩이에게 질질 끌려다녔다.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하면 달콩이는 리드줄의 영혼까지 당기겠다는 심산으로 처절하게 앞발을 굴렸다. 이고, 고집불통 같으니. 해야 할 훈련이 태산이로구나. 나는 종종 입술을 퉁퉁하게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짧은 다리로 앞장서 나가면서 꼬리를 팔랑팔랑 흔드는 달콩이를 지켜보다 보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가다가 나비라도 만나는 날이면 디즈니 만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달콩이는 풀숲에서 나비를 향해 깡총깡총 뛰고, 나비는 8자를 그리며 도망갈 듯 말 듯 달콩이 주변을 맴돌다가 이내 높은 하늘로 날아갔다. 매일 같이 새를 마주하는데도 나뭇가지 위에서 새소리가 들리면 달콩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새를 빤히 쳐다보았다. 작은 키로 그 높은 곳을 가만히 응시하는 달콩이의 모습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백수 신분에다 코로나의 여파로 밖을 거의 나가지 않던 나에게는 달콩이를 위한 산책이 곧 나를 위한 산책이었다.
  달콩이와 함께하는 산책은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산책을 하면 할수록, 훈련을 시키면 시킬수록 달콩이가 억지로 줄을 잡아당기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이대로 참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냥 이로울 줄 알았던 산책마저도 나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난관을 선사하고야 말았다.
   
  입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달콩이는 밖에서 배변을 할 줄 몰랐다. 집에 있는 패드에만 배변을 할 줄 알았기에 밖에 나가면 배변을 참았다. 한 번은 달콩이랑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나간 적이 있는데, 집에 돌아가기까지 계속 배변을 참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서 혼났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달콩이는 산책을 하다가 다른 강아지를 만났고 그 친구가 시원하게 모래 위에 소변보는 것을 목격했다. 안 그래도 친구를 만나 너무 신이 나있던 차에 결국 달콩이도 그 근처에서 소변을 보고야 말았다.


 ‘보고야 말았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실외 배변 견주들은 모두 이해할 거라 믿는다. 실외 배변을 시작한 달콩이는 갑자기 집 아무 곳에서나 쉬를 하기 시작했다. 매일 바닥을 닦고 카펫을 빨며 나는 당황스럽기도, 또 화가 나기도 했다. 영문은 모르고 똑같이 매일 산책을 나갔더니 언제부턴가 달콩이는 밖에서만 배변을 하게 되었다.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소변을 참는 완벽한 실외배변견이 되어버린 것이다.

 실외에서만 배변을 하는 것은 개의 본능이라고 한다. 보호자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을 더럽히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특한 습성이 아닐 수 없으나 소변을 계속 참다 보면 방광염에 걸릴 위험이 있다. 게다가 하필 달콩이가 실외 배변을 시작한 시기는 장마철이었는데, 우비를 입히면 얼어버려서 걷지도 못했다. 실외 배변이 좋다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나는 소변을 참는 달콩이를 보고 있자면 위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달콩이를 데리고 하루에 세 번씩 산책을 나가면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실내에서도 편하게 배변을 할 수 있을지 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다. 잔디 배변판도 사보고, 집에서 배변을 해야만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나가는 척하다가 다시 집에 들어오는 등 여러 훈련을 병행해보았다. 강아지계의 대통령인 강형욱 훈련사도 실외 배변을 실내 배변으로 바꾸는 훈련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산책을 한 번이라도 더 나가 달라는 당부뿐이다. 본능에 의한 행동이기에 그만큼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달콩이 역시 날이 갈수록 소변을 참는 시간이 늘어났다. 결국 중성화 수술 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배변을 하러 밖에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별 진전 없이 두세 달이 흘렀고 가장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내가 갑작스레 백수 신분에서 벗어나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직장에 다니면 산책은 많아야 하루 두 번뿐. 달콩이는 혼자 있는 10시간 내내 배변을 참아야 한다. 그 사실은 나의 마음을 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 달만, 딱 한 달만 산책을 나가지 않기로 했다. 매번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나가곤 했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꾹 참아볼 생각이었다. 그나마 달콩이는 실외 배변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원래 집에서 배변을 잘 가렸던 강아지였기에 희망은 있었다. 그렇다 해도 하루 종일 혼자 있는데 산책마저 나가지 못하는 건 달콩이에게 고문과도 같았다. 그래서 달콩이를 주 3일 강아지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달콩이는 강아지 친구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기에 친구들과 노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될 거라 믿었다. 어떤 유치원을 보낼지 수소문하던 끝에 나의 출근길 중간쯤 위치해있는 곳을 발견하여 달콩이를 한 번 데리고 가보았다. 그 날 달콩이는 지치지도 않고 친구들과 몇 시간을 내리 놀다가, 다른 친구의 소변이 묻은 패드에서 결국 소변을 보았다.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내가 출근을 한지, 그리고 달콩이가 유치원에 다닌지 이제  달이 되었다. 한 달 동안 산책을 나가지 않아도 막상 달콩이는 집콕 생활에 잘 적응했다. 오히려 달콩이를 지켜보는 내가 종괴로웠다. 강아지에게는 냄새 맡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바깥공기를 선사해주지 못한다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달콩이는 유치원에서 골목대장이라도 된 양 친구들과 하루 종일 격렬히 놀다가, 집에 오면 뻗어서 코를 골기 바빴다. 게다가 많이 뛰어다니는 만큼 물도 많이 마시니 실내에서도 배변 활동을 꽤 원활하게 하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달콩이와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달콩이는 왠지 밖에서 배변하는 것이 오히려 조심스러워진 듯 보였다. 그대로 산책 횟수를 차차 늘려가자 이제는 밖에서도, 안에서도 나름 편하게 배변을 하고 있다. 집에서 24시간 이상 소변을 참던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오늘도 패드에 쉬야를 하고 신나게 뛰어오는 달콩이에게 간식을 건넨다. 이 보상을 언제까지 해줘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말고, 달콩이가 평생 동안 하루 종일 소변을 참으며 살 뻔했다는 생각이 들면 아찔해진다.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워, 달콩아. 간식은 잘 챙겨줄 테니 앞으로도 쉬야하고 싶을 때 맘껏 해.”
 
 강아지의 배변 훈련은 한 번 성공하고 나면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콩이는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 벌써 여러 번 배변 습관을 바꾸었다. 그래서 나는 달콩이가 또다시 실내에서만, 혹은 실외에서만 하게 될까 봐 여전히 마음을 졸인다. 계속해서 변화를 관찰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그 균형을 맞추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아지를 키우며 당연하게 되는 일없음을 또 한 번 이렇게 실감한다.




잘 따라와줘서 고마워, 달콩♡

달콩이의 사진들은 달콩이 인스타그램에서 보실 수 있어요 ♡

매거진의 이전글 분리불안, 어쩌다 생긴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