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영화 <타이타닉>에 푹 빠진 나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타이타닉 비디오를 틀어대곤 했다. 대사를 모두 외울 지경이 되었고, 마지막에 쉰 목소리로 "Come back!"을 외치는 로즈를 볼 때면 어김없이 오열했다. 워낙 명작인 건 사실이다만 본 걸 또 보고 또 보고... 하면서도 매번 눈물을 터트리는 게 엄마 눈엔 신기했나 보다. 시간이 지나 첫 에세이를 출간한 나를 보며 엄마는 말씀하셨다.
"너 허구한 날 타이타닉 보면서 울고 그랬을 때, 감수성이 유별나다는 건 알았는데. 그때 그런 쪽으로 잘 키워줬으면 좋았을걸. 좀 후회돼."
나의 감수성은 언제나 과하다 싶을 정도로 풍부했다. 타이타닉은 그저 평범한 일례 중 하나일 뿐. 내 감정선을 건드리는 모든 것들에 빨려 들어갈 듯 몰입했다. 자주 울었고, 자지러질 듯 웃었다. 드라마나 영화, 미술작품, 음악 등을 접하다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면 가슴 한구석을 꼬옥 부여잡곤 했다.
너무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허구, 또는 타인의 이야기에도 내 감정은 쉽게 소모되기 일쑤였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조각배처럼 바다나 날씨의 변화에 따라 격하게 흔들렸다. 덕분에 당연히도 마음이 자주 아팠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아낌없이 썼으니까. 멀미가 날 때까지 울고 웃었으니까.
그렇게 삼십 대가 된 나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을까? 글쎄. 사실 언제부턴가는 나 자신이 흔들리지 않게 부여잡는 일이 많아졌다.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하더라도 내 심장을 떼어 나눠주진 않도록. 노골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 드라마는 최대한 피하도록. 대신 나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을 가까이하게끔. 이전엔 눈물을 찾으러 다녔다면 지금은 눈물을 마르게 두는 편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 보아도 이타적인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범주에 위치해있다. 확실히... 확실히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살다 살다 내가 감수성이 메말랐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 오다니.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확실한 건 예전보다는 좀 더 나 자신을 챙기게 된다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눈에는 사랑 빼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 감정에 파묻히면 판단이 흐려진다. 조금 더 이성적으로 살며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덜 울고 덜 아프려고 한다.
잃어버린 감수성이 그리워질 때쯤, 너무 흑백 모드로 사는 거 아닌가 싶을 때쯤에는, 타이타닉을 다시 찾아 맘껏 눈물 쏟아볼까. 그럼 어느 정도는 다시 충전이 되지 않을까.땅속에서 오래도록 숙성시킨 장독대처럼, 나의 감수성도 어딘가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으면.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꺼낼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