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 차, 그간 어머님께 퇴사 소식을 전한 게 벌써 세 번째의 일이었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직장인으로서의 내 행보는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전화기를 들고 자꾸만 목소리를 삼키는 내게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당신은 온실 속에서만 살아서 세상을 몰랐다고.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게 괜히 억울하다고. 뒤이어, "온정아. 그러니까 일에 너무 집착해가면서 살 필요 없어.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이것저것 경험해보면서 즐겁게 살아 봐."라고 덧붙이셨다.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도 있지만 어머님이 하신 말씀은 비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평생 아버님과 꽃 농사를 지어온 어머님에게는 말 그대로 온실이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다. 시댁에는 그 흔한 TV도 없다. 후텁한 온실을 가득 채우는 라디오 소리, 함께 일하는 사람들, 동네 주민들, 가족들. 그 작은 우주 안에서 어머님과 아버님은 부지런히도 꽃들을 가꾸셨다.
온실 속에서 농사만 지으며 사셨다지만 내가 알기로 두 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해오셨다. 아버님은 건축, 전기, 목공예 분야까지 공부하셨고, 어머님은 한국어 교육을 배우시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자식들에게는 캄캄한 밤길의 손전등 역할을 해주는 부모였다.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 명확한 경로를 강요하지 않고 그저 그들이 가는 길을 묵묵히 밝히고, 옆에서 함께해주었다. 나는 그들의 삶이 충분히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돌아보니 지나온 세월이 못내 아쉬우셨던 어머님과 아버님. 요즘 두 분은 제2의 인생을 살만한 보금자리를 얻기 위해 전국을 바삐 돌아다니신다. 아무런 연고도, 지인도 없는 지역들이 이사 후보에 떡 하니 올라와있다. 뼈대가 튼튼한 고택을 사서 직접 리모델링도 하고, 별채도 지어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실 계획이라고 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그들의 삶에도 이렇게 후회의 그림자는 드리워진다.무슨 선택을 하여 어떤 길을 걷든 놓친 것에 대한 후회는 뒤따라오게 마련일 것이다. 이번에 나는 최선이라 여겼던 선택이 눈앞에서 무참히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한 뼘 더 자랐다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의 벽 앞에 선 나에게 어머님은 말씀하신다. 젊을 때 더 고생하라는 말 대신, 젊을 때 더욱 젊음을 누리라고. 젊을 때 더 넓은 세상을 만끽하라고 말이다. 여전히 허공을 떠돌듯 막막한 기분이지만 한 가지만큼은 알 것 같다. 지나온 아쉬움들을 모두 어깨 위에 지고 가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이 순간이 또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계속해서 다시 시작하느라 제2의 인생, 제3의 인생, 더 나아가 제 n의 인생이 되더라도. 어머님과 아버님이 후회를 뒤로한 채 새로운 집을 지으려는 것처럼, 앞으로 새로 이룰 일들에 집중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