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반려견 달콩이와 함께 강원도 양양으로 여행을 떠났다. 네 시간 걸려 도착한 남애항에서 우린 주린 배를 채울 궁리부터 했다. 가방에도 들어가지 않는 10kg 무게의 달콩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쉽지 않았다. 밥도 포장해서 차에서 먹든, 더운 해변에서 돗자리를 깔고 먹든 해야만 했다.
한 생선구이 백반집 앞에 일단 주차를 했다. ‘47년… 사랑과 정성 가득 엄마의 손맛!’이라는 문구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의 사진이 인쇄된 큼직한 현수막이 붙어있어 맛집 냄새가 물씬 풍겼다. 식당 앞에서 쭈뼛거리던 우리는 문을 열고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저희가 강아지가 있어서요. 혹시 음식 포장이 될까요? 할머니는 곧 브레끼 타임(브레이크 타임)이라 손님이 한 팀밖에 없다고 하시며, 기다려보라 하시더니 손님들에게 물으셨다.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와도 괜찮겠냐고. 기꺼이 오케이를 외치신 두 분 덕에 우리는 달콩이와 함께 식당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손님께도, 할머니께도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드리며 자리에 앉았다. 방바닥에 얌전히 앉아있는 달콩이를 할머니는 유독 예뻐하셨다. 이런 밥상을 포장해서 가면 맛이 없어요. 비니루로 다 싸버리면 그게 무슨 맛이 있겠어? 그리고 강아지도 가족이잖아. 같이 있어야지. 저 손님들이 허락해주신 덕에 아주 잘 됐어. 편하게 있어요.
강아지도 가족이라는 말에 마음이 한껏 찡해졌다. 이윽고 할머니는 정성스레 준비하신 음식들을 상 위에 차려주셨다. 바삭하게 튀긴 생선 네 마리, 큼직한 두부조림, 나물, 쌈 채소, 밑반찬들… 생각 이상으로 푸짐한 한 상에 깜짝 놀랐다. 어휴, 이걸 포장했으면 낭비되는 플라스틱이 대체 몇 개야. 게다가 이 맛을 식당 밖에서 어떻게 재연하겠어. 정말 다행이다, 너무 감사하다. 우리는 첫술을 뜨기도 전에 밥상 앞에서 감사 기도라도 드리듯 중얼거렸다.
손맛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밥상이었다. 조글조글한 할머니의 손, 그 손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손맛. 배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빵빵하게 채워주는 그런 맛이었다. 정신없이 젓가락과 숟가락을 놀리는 우리의 밥상에서 한 칸 정도 떨어져 앉으신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유. 강아지가 어쩜 이렇게 착하고 예쁠까? 우리도 강아지를 키워요. 원래 콩쥐랑 팥쥐 두 마리였는데, 콩쥐는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죽어버렸어... 콩쥐랑 팥쥐 전에 또 한 마리를 오래 키웠었거든? 그 친구 죽었을 때는 며칠 동안 식당도 닫고 온 가족이 다 슬퍼했었다니깐. 그럴 때면 정말 다시는 못 키우겠다 싶어. 혹시 식당 앞에 고양이 봤어요? 우리 막내아들이 말이야. 짐승을 너무 좋아해서 길고양이들한테도 매일 먹을 거 챙겨주느라 바빠. 우리 집 강아지 죽었을 때도 막내아들은 매일같이 울고 난리를 치고…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몰라요. 사람이 정이 너무 많고 마음이 참 따듯해.
우리 아들이 고등학생 때 전교 회장을 했었거든? 언제부터였나. 나한테 도시락을 세 개씩이나 싸 달라는 거야 글쎄. 뭔 마른 애가 도시락을 그리 많이 싸 달라하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1교시가 끝나면 이상하게 금방 배가 고프고, 2교시가 끝나면 또 거짓말처럼 배가 고프다 하데. 우리 아들 배고프다는데 어쩌겠어. 매일 도시락을 세 개씩 싸줬지. 그런데 아들이 졸업할 때가 되니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 나한테 무슨 우수 어머니상을 준다고 하더라고. 그게 뭐냐고 선생님께 물었더니 어떻게 매일 도시락을 세 개씩 싸주셨냐고, 대단하시다고 얘기하시는 거야. 알고 보니 아들이 그 도시락을 항상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나누어줬대. 그래놓고 막상 지는 점심시간마다 친구들한테 반찬 한 젓가락씩 달라고 해서 그걸 모아서 먹은 거야. 어휴, 못살아. 어쨌든 내가 아들 덕에 그때 어머니상을 다 받아봤어요. 하하하...
달콩이는 잠자코 엎드려서 잠을 잤다. 할머니는 강아지와 막내아들 이야기로 시작하여 한참 동안 자식들 자랑을 하셨다. 그간 어르신들의 자식 자랑은 숱하게 들어왔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리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듣기 좋은 자랑이었다. 아드님의 넘치는 정의 근본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은 밥상에 코 박고 부지런히 숟가락을 떴다. 그 숟가락 위로 할머니의 이야기가 밑반찬처럼, 천연 조미료처럼 얹어졌다. 할머니의 세월이 더해진 음식에서는 더욱더 깊은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