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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ul 07. 2021

대학원생의 눈물

 한 대학교의 '공학실험동'이라는 건물에서 일한 적 있다. 말 그대로 공대 소속의 연구실이 모여있는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하루는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가 칸 안에서 한 여자의 인기척을 들었다.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애써 숨을 죽이는 듯했지만, 그녀의 서러움은 속수무책으로 입술 밖을 비집고 나왔다. 알지, 저 기분. 정말 잘 알지. 생각하며 빠르고 격하게 양치질을 했다. 그녀의 소리가 묻힐 정도로 요란하게 수도꼭지를 틀고 입을 헹구다가, 후다닥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잠시나마라도 마음껏 울라는 나의 응원 같은 거였는데 전달이 되었을런지. 한 시간 뒤쯤 다시 화장실을 갔는데 여전히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없는 오지랖이라도 끌어모아서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클리셰로 쓰일 만큼 익숙한 장면이다. 보통은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이 힘든 마음을 변기에 앉아서 쏟아내곤 한다. 이 상황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대학원생은 얼핏 보면 학생 같지만 실제로는 학생과 사회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언제 날 수 있을지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환승역에 대기 중인 여행자와 같다. 연구실의 규모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냥 ‘배우는 사람’의 입장만으로는 대학원을 졸업할 수 없다. 그 아무리 2년짜리 석사과정이라도 어느 정도 주도적으로 연구를 해야 하고, 연구실 구성원들과 매일 부대끼며 나름의 사회생활도 해야 한다. 처음 연구실에 들어갈 때 나는 교수님께 공손하게만 행동하면 되는 줄로 알았다. 여느 학교 선생님들께 그래 왔듯이 말이다. 그러나 매주 교수님과 미팅을 하며 진행 사항을 보고 드리고, 선배들이 하는 행동들을 배우다 보니 어느새 다, 나, 까 말투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작은 집단에서도 나름의 사회생활이라는 걸 많이도 흡수했다. 매일 12시간씩 함께 지내니 흡수하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일이다.

 연구가 생각처럼 진행이 되지 않을 땐 갑갑함과 막막함에 운 적도 참 많다. 본인의 실적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원생들도 있지만 실적이라는 걸 생각할 수 있는 단계라면 그나마 상황이 낫다. 어떤 대학원생은 혹여나 졸업도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나온 학생 시절에 그래 왔듯 학문에 정진하면 대학원 생활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공부와는 다른 개념의 미션들이 너무도 많았다. 이 모든 미션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도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대학원은 이처럼 상상 이상으로 복합적인 곳인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채 시작하여 사정없이 휩쓸기 일쑤다.


 학위가 참 흔해진 세상이다. 돈만 투자하면 학위를 딸 수 있다는 말들도 종종 듣는다. 나 역시 석사 학위를 딱히 자랑스러워해 본 적 없다. 학위가 나의 연봉을 올려주지도 않았을뿐더러, 당시엔 온 영혼을 다해서 했던 그 연구들이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한 가지 자랑스러운 게 있다. 사회생활보다 힘들면서도 보상이랄 것조차 없는 그 3년을 잘 버텨냈다는 사실. 그때 흘린 눈물과 마신 술만 모아도 바다를 이룰 테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결국 끝까지 해낸 나는 졸업을 했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못할 일이다. 그저 그때의 내가 대견할 뿐.


 그날 화장실 칸에서 그녀가 왜 울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나는 이후에도 종종 화장실에서 여학생들의 우는 소리를 마주했다. 그럴 때마다 다가가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지금 대단한 일을 하고 있고, 대단한 시간을 버티고 있다고.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대학원생들을 존경한다고 말이다. 지금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 시절은 많이 흐릿해졌다. 석사라는 태그를 달았지만 현재 나는 조금 볼품없는 전공자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을 마주할 때면 왠지 모를 용기를 얻게 된다. 나는 그 시절을 지난 사람이니까. 그들 덕에 아득해진 자부심을 한번 더 힘차게 끌어와본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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