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에세이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글 쓸 때는 이공계 출신이라는 걸 오히려 숨기려 했던 날이 많았다. 왜, 이과생들끼리는 서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상한 농담 따먹기를 종종 하지 않는가. 글에 이과스러운 감성을 넣었다간 혹여나 그렇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아는 사람만 웃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루하기만 한 이야기. 하지만 이번에 처음 SF 소설을 써보며, 또 두 번째 에세이를 집필하며 이과 출신 작가라는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더 애정해보기로 했다. 나 자신을 더 이상 '실패한 화학 연구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과학 이야기도 일상 속에 잘 녹여서 쓸 수 있는 작가, 그래서 부족한 와중에도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가진 작가라는 자부심을 가져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