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어보기로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

by 온정

직장인의 길 대신 작가의 길을 걸어보겠다고 결정한 지 이제 겨우 2주가 넘었다. 평생 작가로 먹고 살아보겠다는 패기 넘치는 선택까지는 아니었지만, 당장 굴러들러온 취직의 기회를 날렸기에 제법 큰 결정이었다.

온전히 날 위한 선택이었다. 후회하지 않았다. 글 쓰느라 워낙 바쁘고도 행복해서 후회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나답지 않은(내 나름대로는 이기적인) 선택을 했더니 후유증을 크게 앓았다.


직장에 가지 않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 뒤 3일 연속으로 꿈을 꾸었다. 누군가가 꿈에 나타나 나에게 핀잔을 주거나 나무랐다. 당연히 직장을 선택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뭔 글쓰기냐고.

가벼운 꿈일 뿐이니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신경을 많이 썼더니 안그래도 심했던 불안 증세가 더욱더 심해졌다. 매일 잠도 거의 못잤다. 정기적으로 치료받고 있던 정신의학과에 가서 선생님께 최근 증상을 말씀드렸다. 높게 치솟은 불안의 불꽃을 진화시보자며, 생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저녁 약 하나를 늘주셨다. 공황이 왔을 때 비상약으로 먹은 적이 있던 터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 밤에 푹 잘 수 있겠다. 잠만 잘 자도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다음날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하면 불안 증상도 나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약을 먹은 그날 밤에도 잠이 안 왔다. 게다가 겨우 선잠에 들면 몇 시간 내내 요상한 꿈들을 연달아서 꾸었다. 현실의 걱정들이 반영되어있는 판타지 같은 배경의 꿈, 옛날의 트라우마가 생생하게 재현된 꿈 등등. 새벽 일찍 눈이 떠졌는데 모든 꿈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꿈이라기보다는 거의 환각에 가깝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어떤 꿈에서는 남편이 나타나서 시계가 고장 나서 바꿔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 바꾼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돈을 못 벌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울었다. 통장을 조회해보니 10만 원이 있길래 5만 원을 인출해서 그에게 쥐어주었다. 분명히 나의 무의식이 만든 환상이었다.

이틀 째 저녁 약을 먹고도 온갖 악몽을 꾸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나를 괴롭히며 쏘아붙였다. 끙끙 신음 소리를 내면서 자다가 마지막에는 울면서 깨어났다. 눈을 뜬 뒤에도 한참 동안 숨이 차서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 나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깬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날 위한 선택을 했는데도 왜 나는 아프지? 가족 모두가 날 응원해주고 있는데, 왜 나는 혼자만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거야? 왜 나는 뭘 해도 이 모양이야? 왜 다 해준대도 이 꼴이냐고.”

남편이 괜찮다고, 괜찮다고,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토닥여주었다. 정신을 차린 뒤 내가 먹은 약의 부작용을 검색했다. 흔한 부작용, 일반적인 부작용을 지나 ‘드문 부작용’에 나의 증상이 있었다. 환각, 그리고 비정상적인 꿈. 심지어 깨어있을 때 이명까지 들렸는데, 그 모든 게 약의 부작용이었던 것 같다. 병원에 전화해서 이상한 꿈을 꾼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약은 오늘부터 바로 빼라고 안내해주셨다.

약을 빼고 난 다음날까지도 똑같이 악몽을 꾸었지만 그다음 날부터는 괜찮아졌다. 2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다행히 나는 일상을 되찾았다. 자려고 누우면 딱 한 시간 정도 뒤척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조금 피곤해도 하루를 부지런하게 잘 보낸다. 내가 살던 본래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과도기에서 나는 이렇게 또 성장통을 앓았다. 최근 몇 년간 얼마나 많은 선택과 과도기를 거쳤는데, 여전히 이렇게 한 뼘 더 자라는 것조차 아프다. 대체 언제까지 아이일런지. 언제쯤 성장판이 닫힐런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 또 지나갔으니 되었다. 이번에도 잘 견뎌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소설을 마감하고, 에세이를 마감하고, 또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 위한 선택에 더 이상 죄의식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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