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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Sep 05. 2019

상처는 연필로 쓰세요

내 마음속 깊은 아픔과 마주하다

 얼마 전 일이었다.
퇴근길에 운전을 하던 도중, 갑자기 팔다리가 저려오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눈 앞이 하얘지고 온전히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창문을 열어 들숨, 날숨 깊게 심호흡을 하고, 신호가 걸리면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겨우 마음을 달랬다. 불안감과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목적지가 가까이 있었는 사실다.

아뿔싸, 머리를 땅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방금 이거 뭐였지.....?'
무슨 일이 지나간 것인지, 또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명 뜬금없이 불쑥 찾아온 일 아니었다. 최근 나의 내면은 극도의 불안감을 내뿜고 있었고, 그 검은 그림자는 이미 몸 구석구석에 퍼져 나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면에서 마음을 챙겨달라고 절규해도 외면하기 바빴던 나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여온 것들이 터져 나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 또 이지경까지 왔구나....'


매번 자기 자신에 의해 혹사당하는 내가 가여웠다.  이런 상황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마구 방망이질했다. 충격과 후회가 밀려오던 그 순간, 머릿속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어렸을 적 상처부터 근 20년 간의 모든 아픈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수무책으로 과거를 훑으며,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괴로움을 느꼈다.

을 겪고 난 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 수학 공식 풀듯 해답이 있을 리 없었다. 고민하는 그 순간에도 현재와 과거의 상처가 겹쳐지며 나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무렵, 나는 우연히 영화 '인셉션'과 '마담 프스트의 비밀 정원'을 보게 되었다. 둘 다 전반적으로 조금 난해한 영화였지만, 그 내면에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되돌아보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었다. 내 상황에 빗대어봤을 때 그 영화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뚜렷했다.


"현재까지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가 본인의 상처와 제대로 맞서야 한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생각겠지만 그 상처는 당신의 무의식 속에 계속 잠재되어있다.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고 외면할수록 그 상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용기를 내어 내가 외면하고 있던 상처들을 확실마주해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내가 '인셉션'의 주인공처럼 나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담 프스트의 비밀 정원'의 주인공처럼 마법 허브차의 힘을 빌려 과거 여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잠겨있는 상처를 구체화할만한 나의 기술은 그저 '쓰는 것'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수첩을 열고 나의 상처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내면의 방찾아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나의 내면이 깨가 축 쳐진 채,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볼멘소리로 쏘아붙였다.

"왜 이제야 온 거야? 꼭 내가 이 지경까지 돼야만 나를 찾아올 거야? 그렇게 비상 신호까지 보내야만 나를 돌봐줄 거냐고.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수첩에 열심히 글자를 채워갈수록 나는 깨달았다. 외부 환경의 영향도 많긴 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상처는 내가 나 자신에게 쏜 화살로 인해 생다는 것을.


"너, 이 때도 이랬잖아. 그때도 쉬지 않고 나를 계속 몰아붙여서 힘들게 했잖아. 가끔은 나를 챙겨줘야지. 모르는 척 외면만 하고 있으면 언젠가 크게 터진다는 거, 왜 몇 번을 겪고서도 몰라?"


나를 원망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려왔다. 오랜만에 제대로 마주한 나의 내면이 너무 안쓰럽고, 이전의 기억들이 아파서 한참을 울었다. 분명, 다 잊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은 것이 아내가 외면한 것뿐이었다. 그저 단발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견디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무엇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자만이었다. 쓰면 쓸수록 더 많은 상처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간이 많았다면 하루 종일 써도 끝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엄격한 나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고 만신창이가 된 내 안의 자아를 온전히 느꼈다. 대체 나는 나에게 얼마나 채찍질을 해온 것일까. 나의 내면은, 도움을 요청해도 모르는 척해버리는 마음의 주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나 자신에게 많이 미안했다. 자신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죗값을 치르며, 그제야 반성을 하고 있는 나였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고 했던가. 상처 역시 연필로 써서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글로써 나를 돌아본 것은 꽤 큰 도움이 되었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던 두리뭉실한 아픔들이 연필 끝에서 렷해졌다.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과도한 책임감으로 나 자신을 압박해왔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아.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대체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어. 나는 계속해서 열심히 살아야 돼.'


하지만 이번 기회에 돌아보게 된 나는, 남들 이상으로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고 또 매 번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항상 타인의 인정에만 목매던 나였지만,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생 많았어. 난 잘 해왔어. 그러니 이제 조금은 내려놓아도 돼."

난 잠시라도,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서 기로 결심했다.



오늘의 일상,

영화를 보다가 문득.


커버 사진/ 필름카메라 MINOLTA X-300으로 찍다.
매거진의 이전글 없으면 큰일 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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