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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Sep 11. 2019

퇴사 후 따듯한 차 한잔

 슬슬 가을이 오려는지, 그날따라 하늘이 무척 예뻤다. 파스텔톤의 하늘에 두리둥실 떠다니는 하얀 구름은 또 얼마나 몽글몽글 귀엽지.  하늘 아래, 리의 차는 심히 자유로를 달리고 있다.


사실 나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 마음이 불편했다. 이 날은, 시부모님께 나의 퇴사 계획을 말씀드리는 날이었다. '이해해주실 거야...'라고 생각은 했지만 가끔 어르신들의 마음은 짐작할 수 없기에, 좀처럼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시댁"

듣기만 해도 왠지 불편하고, 어려  같은 그 이름.


하지만, 성한 담쟁이넝쿨이 지붕까지 엮인 시댁에 도착하여 시부모님과 포옹을 하는 순간이면, 나는 왠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어머님의 취향에 따라 가꿔놓으신 정원에는 계절마다 다른 색깔의 꽃이 피고, 작은 텃밭에는 온갖 식재료들이 심어져 있어 싱싱한 유기농 채소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레를 무서워하는 내가 머뭇머뭇하고 있을 때면, 어머님과 남편은 2인 1조가 되어 나뭇가지로 벌레들을 내쫓고 완두콩을 따서 식탁에 올려기도 한다.


집 앞, 아버님께서 손수 만드신 나무 평상에 가만히 앉아, 바로 앞에 넓게 펼쳐 초록색 논바람 따라 을 추 곳.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면 보호색을 한 개구리가 개굴개굴 며 숨어있 곳. 꽃이 많아서 벌들이 식하러 놀러 오는 곳.  수 있는 최대한으로 숨을 들이쉬면 정겨운 시골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드는 곳. 시골에 있는 나의 시댁이다.



어머님, 아버님, 남편과 넷이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홍삼꿀차를 마셨다. 어머님께서 직접 열 번 이상 찌고 말리고를 반복 정성 들여 만드신 삼이다. 그 따듯한 차를 호호 불어 한 모금 마셨. 에서 모락모락 용기가 피어올랐다.


"아버님, 어머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렵게 꺼낸 첫마디에, 모두의 눈이 나의 꿈틀거리는 입으로 향했다. 찰나의 고요함 속에 약간긴장감이 맴돌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시부모님께서는 차분하게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리고는, 내 두 손을 아주셨다.


"잘 생각했다, 온정아. 건강이 최우선이야. 어쩜, 몇십 년 동안 농사일을 해온 나보다 손이 더 거칠어? 온정아. 이 손이 나보다 부드러워질 때까지, 좀 쉬어. 이 길만 길인 것은 아니잖아. 길을 가다 보면 오솔길도 가보고, 골목길도 가보고, 여기저기 새는 맛도 있어야지. 너가 배우고 싶은 것도 배워보고, 하고 싶은 것도 좀 해봐. 그동안 정말로 고생 많았어."


내 마음속 묵직한 근심이 소화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따듯했다. 리고 감사했다. 대화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는 홍삼차를 후룩, 들이켰다.


유난히 집돌아가기 아쉬운 날이었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시댁을 나서는데, 후련한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 아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온몸을 감싸 안아주는 바람을 맞으며, 피부로 닿는 시골 공기를 느꼈다. 하늘엔 깨알 같은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우리를 배웅 나온 어머님, 아버님과 께 별구경을 했다. 언제나 마무리는 포옹. 그 따듯한 온기를 다시 한번 느꼈다.


"아버님, 어머님. 계속 시골에 사실 거죠? 저, 여기가 너무 좋아요. 금방 또 놀러 올게요."


시댁이 시골에 있어 참, 좋다. 도시 생활 지 때, 시골이 그리울 때 불쑥 찾아갈 수 있는 이 있어 좋다. 아지는 을 마주할 수 있는 이 곳이, 겨운 이 곳이, 참 좋다.



오늘의 일상,

시댁에서 홍삼차를 마시다 문득.


커버사진/ 담쟁이넝쿨이 무성해지기 전, 남편이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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