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다니고자 들어간 직장에서 한 달 만에 퇴사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자포자기 상태였다.열심히 미래를 계획해봤자 어차피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일단 취직에 목매지 말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글 쓰고 세 끼 식사를 챙겨 먹는 데에 할애했다.
그 기간 달콩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온종일 집에만 처박혀있었을 것이다. 나는 실외에서만 쉬야, 끙아를 하는 달콩이를 데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세 번씩 산책을 나가야 하는 임무를 가진 집사였다.
게다가 온종일 붙어지내다보니 달콩이의 분리불안이 다시금 심해졌다. 내가 일하러 다닐 땐 혼자서 하루 열 시간도 잘 기다려주었는데 말이다.달콩이가 혼자 있는 법을 까먹지 않도록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종종 카페로 나갔다. 달콩이는 그나마 잠이 덜 깬 아침 시간에 분리불안이 덜 하기 때문에 꼭 '아침 일찍'이어야 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달콩이를 생각해서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키곤 했다. 카페에서 세 시간가량 글을 쓰고 집에 오면 달콩이와 또 산책을 나갔다.
달콩이는 축 늘어진 나를 어떻게든 움직이게 했다. 하루 세 번, 달콩이에게 하네스와 리드줄을 채우고 그 줄을 크로스백처럼 내 몸에 맸다. 아파트 16층에서 느릿느릿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마침내 1층에 내린 뒤엔 발걸음을 재촉하는 달콩이를 따라 계단 두어 개를 지나 벽돌 바닥을 밟았다. 비록 마스크를 써야 했지만 빈틈을 뚫고 들어오는 풀내음을 맡았고,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구경했다. 귀여운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걷는 달콩이의 뒷모습을 보며 종종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고,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가겠다며 떼쓰는 달콩이를 달래다가 진이 빠지기도 했다. 사람이 적은 곳에서는 글 쓰느라 뻐근해진 어깨를 휘휘 젓기도 했고 중간중간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도 했다. 집으로 오면 더러워진 달콩이의 털을 슥슥 빗겨주곤 고새 포실하니 예뻐진 얼굴에 뽀뽀를 퍼부은 뒤 간식을 주었다.
달콩이는 강아지보다는 고양이 같은 성향이 강해서 잘 튕기고 새침하고 그 마음을 잘 알 수 없는 편인데, 그 시기에는 마치 리드줄이 서로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것만 같았다. 달콩이와 산책을 하면 할수록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있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겨울을 좋아하는 나와 추위에 강한 털북숭이 달콩. 우리는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말없이도 마음을 나누었다.
털북숭이 달콩
반년 이상 그런 일상을 보내며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힘들 때도 많았다. 밥 해 먹고 산책 나가다 보면 글 쓸 시간이 한참 부족하게 느껴졌다. 나름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음에도, 밤이 되면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달콩이와 나가는 산책이 의무처럼 느껴졌고, 점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내 몸에 이어진 리드줄에서 달콩이 역시 이 일상에 권태를 겪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매일 똑같은 동네를 걷고, 비슷한 냄새를 맡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배변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산책하고 있는 달콩이를 발견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통통 튀던 달콩이의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졌고, 냄새를 맡는 코는 미세하게 소극적으로 변했다. 산책하는 달콩이의 모습을 매일 관찰해왔기에 작은 변화도 크게 다가왔다. 지루해 보이는 달콩이의 모습에 나 역시 힘이 쭉 빠졌다. 내 딴에는 노력하고 있는데. 아무리 동네 산책이라고 해도 제법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속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해결책이 떠올랐다는 사실.
달콩이는 강아지 친구들을 무척 좋아한다.달콩이에게 사람과 강아지 중에 골라보라고 한다면 무조건 강아지를 고를 것이다. 내가 돈을 벌 때에는 달콩이를 주 2-3회씩 유치원에 보내서 친구들과 맘껏 뛰놀게 했다. 하지만 졸지에 백수가 되면서 유치원 지출부터 줄였고, 그걸 산책으로 커버하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더랬다. 하지만 산책 권태기가 시작된 뒤로 친구들과 실컷 놀지 못하는 달콩이에게 점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남편에게 내가 모아둔 용돈으로라도 달콩이 유치원을 한 달만 보내보자고 제안했다. 남편 역시 좋은 생각이라며, 이런 돈은 아끼지 말자고 맞장구를 쳤다.
기존에 보내던 유치원은 작은 실내 유치원이었는데, 이번엔 천연 잔디 운동장이 넓게 깔린 유치원을 택했다. 배변도 제 때 제 때 편하게 하고 가벼운 몸으로 뛰놀 수 있도록. 집에서 조금 먼 곳이라 고민했지만 다행히 픽업 서비스도 해주신다고 했다.
등원 첫 주부터 유치원에서 보내준 달콩이의 영상을 보며 남편과 나는 뿌듯한 웃음을 금치 못했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달콩이는 신나게 놀았다. 그 짧은 다리로 어찌나 빠르게 뛰던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치타 같았다. 강아지 친구들의 냄새를 맡고, 서로의 입 주변과 목덜미를 앙앙 무는 척하면서 놀고, 같이 흙바닥에 뒹굴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낯을 많이 가리는 달콩이가 유치원 선생님을 만나면 엄마, 아빠를 반기듯 꼬리 치며 낑낑거렸다. 자유로운 환경에 있으면이토록 행복해지는것을. 그동안 줄에만 묶어두고 다녔구나... 달콩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유치원에 계속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야겠어."
마주하기 싫어서 저 구석으로 밀어두던 일을,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욕구가 뿜어져 나왔다.어떻게 하면 달콩이가 즐거워할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그게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라면 돈 벌어야지.
결국 지금 나는 다시 돈을 번다. 돈을 벌기 시작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달콩이 유치원 역시 크게 한몫했다. 전쟁터라고 느끼던 사회로 다시 나가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단순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 오히려 예전보다 마음이 덜 힘들다. 내가 사랑하는 똥강아지 맘 편히 유치원 보내주기 위해서 나는 돈 번다.거리두기도 풀렸으니 달콩이와 함께 여행도 가고, 달콩이의 낡은 물건들도 바꿔주고 장난감도 사주려고 돈 번다.보이지 않는 '일의 의미'를 좇아가려 할 때보다 훨 낫다.
달콩이는 나를 움직이게 한다. 다시 일터로 나가게 해 주었고, 매일 어떻게든 동네 한 바퀴산책하게 만든다. 게다가 공황발작 때문에 한동안 운전대를 못 잡던 내가 달콩이 유치원 등원을 위해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른 출근 시간에는 유치원 픽업 서비스가 안 되기 때문.) 덕분에 지금은 운전 공포증을 많이 이겨냈다. 정신의학과 선생님께서 내가 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으실 때마다, "저희 강아지 덕이에요."라고 자랑하고픈 걸 꾹 참고 있다. 그리고 에세이 출간 후 좀처럼 글을 못 쓰던 나는 오늘 이렇게 달콩이에 대한 글을 썼다. 날 쳐다보는 눈망울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이 생명체에 대해 뭐라도 쓰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내 앞에서 하품하고 있는 달콩이 데리고 밤 산책 나가야겠다. 묵직한 엉덩이가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사랑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