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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un 27. 2022

유기견 치고 예쁘네요?

몇 달이 지났음에도 그날의 짧은 대화가 자꾸 떠오른다.


시계를 보기 위해 휴대폰 화면을 켰다. 옆에 앉아있던 그 여자는 내 휴대폰 배경화면의 달콩이를 흘긋 보고는 품종이 뭐냐고 물었다. 믹스견이라고 했더니 어떤 품종끼리 믹스되었냐고 다시 한번 묻길래, "유기견이라서 뭐가 섞였는지 알 길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어머. 유기견 치고 되게 예쁘게 생겼네요? 저도 강아지 살까 말까 고민 많이 했었는데."


유기견이면 못생겨야 마땅하다는 뜻인가. 게다가 강아지를 '산다'니. 명 악의가 담긴 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천진한 말투와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기분이 조금 언짢아졌고,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어색하게 웃으며 "하하하 그런가요?"라고 답한 뒤 한참 후회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유기견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런 부가 설명 없이 그 상황을 넘겨버린 나 자신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유기견도 다양한 강아지 중 한 마리일 뿐인데. 유기견을 한데 묶어서 "어떻다"고 치부해버리는 시선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날의 대화를 곱씹을 때마다 고민하게 었다.

품종이 뭐냐는 질문부터, 믹스견이라고 답하면 어떤 품종이 믹스된 거냐고 되묻는 질문까지. 달콩이를 키우는 2년 동안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부터 지인들까지 숱하게 물어보던 말이다. 자, 이제 달콩이가 믹스견이고 유기견인 걸 상대방이 알게 됐다. 그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꺼내려나. 나는 약간 긴장하게 된다. 대화가 불편하게 흘러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달콩이의 엄마가 된 이후로 반려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미숙한지, 얼마나 갈 길이 먼지 몸소 느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강아지를 '산다'라고 생각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걸 들으며 불편해하는 내가 오히려 예민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나 역시 유기견이나 번식장, 펫샵의 실체에 대해 무지했을 때는 별다를 게 없었을 것이므로 그 사람들을 탓할 자격은 없다(게다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다만 아직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라도 더 얹는 것이 달콩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체를 '몰라서' 강아지를 '산다'. 만일 "유기견 치고 예쁘다", "강아지를 살까 말까 고민했다"는 말을 들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구구절절 그녀에게 설명할 것이다.


"펫샵에 전시되어 있는 품종견들이 예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펫샵의 강아지들은 대부분 번식장에서 와요. 품종견끼리 교배해서 출산을 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 강아지들은 경매장에 내놓아지죠. 예쁘면 예쁠수록 더 비싸게 팔려서 펫샵으로 넘어가요. 미모가 덜 하거나 몸이 아픈 아이들은 상품성이 떨어지니 버려지거나 인터넷 같은 곳에서 저렴하게 팔려요. 뭐, 그래도 낮은 확률을 뚫은 아기 강아지들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그 아기 강아지들을 낳는 부모견들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번식장에서는 모견과 부견을 철창에 함께 가둬둔 채 발정제나 자궁수축제를 맞추고, 끊임없이 강제 임신을 시켜요. 모견은 평생 동안 교배와 출산을 반복하고, 출산 능력을 잃어버릴 때쯤 버려져요. 버려지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이른 나이에 별이 될 수밖에 없어요. 열악한 뜬장에서 기본적인 관리도 받지 못한 채 사니까요. 뜬장이 뭐냐면, 말 그대로 '떠있는 철장'이에요. 강아지의 배설물이 철장의 틈 사이로 떨어질 수 있도록 만든 거죠. 인간의 입장에서는 배설물을 하나하나 치우지 않아도 돼서 편할 테지만, 번식장 강아지들은 평생을 살아가는 곳에서 바닥에 발 하나 편하게 디디지 못해요. 강아지를 사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펫샵에서 강아지가 팔리면 팔릴수록 모견은 계속해서 강아지를 낳아야 하니까요.


그러니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면, 우선은 천 번 만 번 고민해보아도 부족하고요. 그럼에도 나는 꼭 강아지를 키워야겠다고 판단한다면, 제발 사지 말고 유기견을 입양하세요. 팔리는 강아지만큼 버려지는 강아지도 많아요. 번식장에서 모견이 기계처럼 아기 강아지들을 낳는 동안, 가족을 기다리다가 결국 입양되지 못하고 안락사당하는 유기견 역시 차고 넘칩니다. 봉사하는 정신으로 유기견을 입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유기견이 워낙 많기 때문에 선택권 역시 많아요. '포인핸드'라는 유기견 공고 앱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얼마나 다양한 모습의 강아지들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지요."





번외로, 달콩이가 유기견이라고 말하면 "그 용기가 대단하다"거나 "좋은 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유기견을 입양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나는 난이도가 낮은 선에서 나의 가족을 찾았다. 보호소에서 오래 지냈거나, 학대를 당한 트라우마가 있거나, 번식장의 모견이거나, 아픈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 못했다.

유기견이 낳은 새끼인 달콩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조되었다.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왔고 구조되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 봤자 태어난 지 3개월(추정) 쯤 되었을 때 우리 집으로 들어와 가족이 되었다. 달콩이가 길에서 지낸 몇 개월의 기억을 어떻게 지니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3개월은 짧은 시간이다. 거의 처음부터 시작한 거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구조 기록을 뒤져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달콩이의 형제들은 입양에 성공했으나 모견은 입양자가 없어서 결국 안락사되었다고 한다. 달콩이는 달콩이의 자매와 함께 공고에 올라왔기에 모견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주로 나이가 있는 유기견은 인기가 없고, 그 유기견이 낳은 새끼들은 비교적 쉽게 입양을 간다. 이것 역시 흔한 케이스다. 나부터도 새끼 강아지인 달콩이를 택했지만 달콩이의 모견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그러니 누군가 우리 부부에게 "선행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낯이 뜨거워진다. 그럼에도 자꾸만 달콩이가 유기견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유기견을 입양하는 게 무조건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벽을 허물고 싶어서이다. 태어나지 얼마 안 된 유기견을 입양하더라도 펫샵에서 강아지를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다. 안락사될 지도 모르는 강아지를 한 마리라도 구하는 일이니까. 또한 우리가 소비하지 않아야만 번식장이 사라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유기견 입양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구조 당시의 달콩
아기 달콩
어엿한 성견이 된 달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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