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뒤 어렵사리 결정했다.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유기견 중에서 우리의 가족을 찾아보기로.
나는 유기동물 입양 앱인 '포인핸드'를 샅샅이 뒤지고, 인스타그램에서 #유기견입양 #사지말고입양하세요 를 검색하며 가족이 될 아이를 탐색했다. (여러 구조 단체들이 인스타그램에 강아지의 사진과 함께 입양 공고를 올린다. 개인적으로 접근성 면에서는 더 좋았다.)
'어떤 반려견을 입양하고 싶다'라고 구체적으로 정해둔 건 없었다. 공고를 뒤져보다가 마음이 가는 강아지가 나타나면 입양 신청을 할 생각이었다. 남편과 나는 강아지의 크기에 따라 어떻게 이름을 지을지도 미리 정해놓았다. 작은 강아지면 심콩이, 중형견 정도 되면 달콩이, 그보다 크다면 심쿵이로 짓자고. 그만큼 열린 마음으로 가족을 찾았지만 나도 모르게 눈이 한 번씩 더 가는 강아지가 몇 있었다. 바로 점박이 얼룩이 있는 믹스견들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시츄를 키웠었는데, 구구콘처럼 흰 털과 갈색 털이 함께 섞여있는 게 좋았다. 그 시츄를 워낙 예뻐했었기에 다음 반려견도 그런 모습이기를 조금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다 얼굴과 몸통에 검은색 점박이가 있는 아기 강아지의 입양 공고를 발견하게 되었고, 함께 구조된 다른 형제들은 모두 입양을 갔지만 그 친구만 아직 입양을 못 간 상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고민 끝에 입양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나의 간절한 마음이 잘 전달될까, 밤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입양 신청서를 보낸 뒤 구조 단체로부터 연락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이력서를 제출하고 서류 전형을 통과하길 기다리는 취업 준비생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서류를 통과해야만 전화 면담을 할 수 있으니 비슷한 절차였다. 평소 무음으로 해놓던 휴대폰을 진동으로 켜 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전화를 기다렸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구조 단체의 봉사자님께서 대략적인 전화 면담 일정을 잡아주셨다. 신청서를 작성하면서부터 '이 단체, 보통이 아니구나'라는 걸 직감했기에, 면담 날까지 나는 더욱 긴장했다.신청서에는 반려견을 입양하고 싶은 이유와 반려견이나 유기견에 대한 인식, 그리고 반려견을 입양할 환경(집, 경제적 능력, 식구의 수 등)까지 구체적으로 묻고 있었다. 유기견 입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신했던 나도 막상 신청서를 쓰면서 답변에 어려움을 겪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전화 면담은 쉽지 않았다. 압박 면접을 하듯, 구석구석 단 하나의 요소도 놓치지 않는 봉사자님의 질문에 어찌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지금 홍시(가명)는 아기 강아지라서 작지만, 부견을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클지 몰라요."
"네, 알고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큰 강아지도 입양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파트 사시잖아요. 아파트에서 대형견 키우는 거,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세요?"
봉사자님은 본인이 진도 믹스견을 키우는데, 그냥 가만히 산책을 다니다가도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큰 개를 왜 여기서 키우냐고. 사람 무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그에 맞서 싸워야 할 일도 많다고 했다. 봉사자님은 그런 상황까지도 견뎌낼 수 있냐고 나에게 물으셨다. 당시 홍시는 2킬로그램 정도의 작은 강아지였기에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나가던 사람과 싸움이라니... 무서운 예시에 나의 대답은 점점 소심해졌다.
이어서 봉사자님은 반려견의 크기뿐만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의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하셨다. 반려견이 짖는 문제 때문에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반려견을 위해 이사를 갈 의향이 있는지 물으셨고, 신혼부부 중에 아이가 생기면 강아지를 파양 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신혼부부는 우선순위에서 제외된다고도 이야기하셨다. 처음에는 "괜찮아요.", "그런 부분은 다 고려해두고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포기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시는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껏 풀이 죽은 채로 면담은 끝나갔다. 압박 면접을 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처음에는 난감한 질문들을 호기롭게 받아치다가 점점 피로해지고, 자신감을 잃게 되고, 그러다 끝날 때쯤에는 침묵이 흐른다. 그쯤 뇌리에 스치는 예감. 아, 나 탈락이구나.
나는 봉사자님께서 "저희 쪽에서 협의해보고 결과 나오면 연락드릴게요."라고 이야기하시거나 탈락 의사를 표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통화 내내 공격적으로 질문을 하시던 봉사자님께서 마지막으로 던지신 말씀은 반전이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서라도 홍시를 입양하고 싶으시면, 그 정도로 간절하시면 다시 연락 주세요."
봉사자님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탈락시키려고 날 공격하신 게 아니었네. 한번 더 생각할 기회를 주신 거네. 그런데 나, 아까 답변을 여러 번 망설였잖아. 홍시가 정말 대형견으로 큰다면 나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길거리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었을 때 맞서 싸울 자신이 있나? 나 자신에게 묻고 또다시 물어보았다. 마음의 준비를 오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을 입양하는 데에 이 정도 각오는 필요한 거구나. 나는 내가 성급했음을 인정하고 봉사자님께 문자를 보냈다.
"봉사자님과의 대화를 통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홍시가 좋은 곳에 입양 가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홍시를 놓아주었다. 그 뒤에도 홍시가 눈에 아른거려 미칠 것 같았지만, 왠지 그 구조 단체에 내 두려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떳떳하지 못했다.
봉사자님과 통화했을 당시 기분이 상했던 건 사실이다. 나는 입양 신청을 하기 전 개인이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소에 봉사도 다녔고, 입양에 필요한 돈도 통장에 모아두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입양 의사를 표했는데, 그렇게까지 하셔야 될 일인가...?' 생각했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유기견을 입양하려는 다른 사람들도 종종 느끼는 듯했다. 네이버 카페에서 '좋은 일 하겠다는 데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요? 이런 절차 때문에 입양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불쌍한 유기견만 더 늘어나는 거 아닌가요?'와 같은 내용의 글을 접한 적 있다. 나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한 반려견의 가족으로서 그 봉사자님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구조 단체 입장에서는 '앞으로 20년 가까이 함께해야 할 가족이 이 정도 노력조차 감수하지 못한다면 반려견을 다시 파양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입양되었다가 다시 파양 되는 유기견이 많다고 한다. 한 번으로도 힘들 상처를 두 번, 세 번 입는 반려동물들은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나는 달콩이의 입양 공고를 발견했고, 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입양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때는 뭐랄까, 홍시 입양 신청 때보다 조금 더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게다가 구조와 입양을 주관하시는 분이 입양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부지런히 하셨고, 그러다 내 계정에 있었던 유기견 봉사 사진을 보신 모양이었다. 우리 부부를 좋게 봐주신 데다가 신청서에 적은 나의 간절함도 알아주신 덕에 달콩이 입양을 승인해주셨다.
덕분에 달콩이 입양은 홍시 때보다 더 떳떳하게 진행되었다. 달콩이가 얼마나 클 지 모르는데 괜찮으시냐는 질문에도 나는 그렇다고, 각오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입양할 때 달콩이는 3킬로였지만 몇 달 사이 무럭무럭 자라서 11킬로의 강아지가 되었다. 소형견이 흔한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 크기도 제법 큰 편이라, 달콩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조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놓고 '크다'라고 이야기하거나 달콩이를 보고 기겁하는 것도 예삿일이다. 보호자 눈에는 그저 작고 귀여운 아기 똥강아지인 것을. 그럴 때면 진도 믹스를 키우며 길가는 사람들과 자주 싸운다던 그 봉사자님을, 그런 속상함마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여러 차례 묻던 봉사자님의 말을 떠올린다.
펫샵에 가서 강아지를 '사기' 위해서는 마음의 결정과 돈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유기견을 입양하는 절차는 이처럼 더욱 복잡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를 거치며 한 번 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이 반려동물을 입양하여 평생 책임질 수 있는가.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 10년이 넘도록 함께할 '가족'을 찾는 데 그 정도의 다짐과 노력은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