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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보는 방식》 2교 일기

by 온정

2교를 마감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3교 교정지를 받기 전에 쓰지 않으면 영영 내 메모장에만 남아있을 것이므로... 2교 일기를 써보려 노트북을 켰다.


무진장 바빴던 요즘.

체력도 멘탈도 약한 나는 겨우겨우 멘탈 붙잡으며 하루하루 버텼다.


얼마 전 마누스 대표님을 만나, 대표님의 친척분(남편분의 이모님)께서 운영하시는 스시집에 갔었다.

맛있게 먹고 나오던 길.

이모님께서 대표님에게 이야기하셨다.

"잘 좀 먹고 다녀. 일을 힘으로 해야지. 깡으로 하지 말고."

(대표님도 나도 조금 마른 편.)


걱정과 애정이 담긴 그 말씀이 깊이 파고들었다. 이모님의 목소리까지 고스란히 남아 내 속에 자꾸만 울렸다.

깡으로 하지 말고. 깡으로 하지 말고...

맞아, 일을 힘으로 하려면 잘 먹어야지. 그날 스스로 다짐했다. (나에게 해주신 말씀도 아닌데....ㅋㅋㅋㅋ)


하지만 너무 바쁘고 신경 쓸 게 많아지니 밥이 안 넘어갔다.

평소 끼니를 절대 거르지 않는 내가 두유에 빵 한 조각 겨우 꾸역꾸역 삼켰다.

며칠 그렇게 맘고생 몸고생하다가, 이제야 한숨 돌린다. 거짓말처럼 밥부터 술술 잘 넘어간다. 먹으니 한결 살 것 같다.


지금은 3교(아마도 최종교...)를 위한 에너지 장전의 시간이다.

잘 먹어둬야지. 힘으로 일해야지. 깡 말고.




* 교정교열 단계

1차 퇴고 - 목차 배열 후 2차 퇴고 - 1교 - 2교 - 3교



1.

대표님께서 2교 교정지에 긴 편지를 적어주셨다. 너무 감동이고 소중해서... 인쇄하여 벽에 붙여두었다. 글 쓰면서 작아지는 순간마다 대표님의 편지를 읽으며 용기를 내보려 한다.

당장 여기저기 소문내고 싶지만, 책이 출간된 이후에 공개할 생각이다.

<사물을 보는 방식> 원고를 보며 느끼신 점을 유려한 문장과 적확한 표현으로 적어주셨기에, 독자분들도 이 편지를 함께 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

이전에도 썼지만, 교정지를 여러 번 읽는 동안 한 가지 수단으로만 읽지 않는다.

종이로도 인쇄하고, 아이패드로도 보고, 컴퓨터로도 본다. 어디에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글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

종이에서는 괜찮아보이던 문장이 아이패드에서는 이상해보이기도 한다. 진짜 괜찮은 문장인지 아닌지 여기저기서 비교한다.

그중에서 선호하는 도구를 꼽자면 종이와 아이패드. 둘 다 펜 들고 수기로 고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읽기에는 종이가 훨씬 편하지만, 여러 번 인쇄하기에는 부담스럽다. 교정지를 아이패드로 보고 나면 눈이 너무 시리고 아프지만, 장점이 더 많아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



3.

그러니까... 저런 방식으로 2교에서도 수기로 고친 부분이 제법 많았었다.

이번 원고는 1교 전에 퇴고 작업 한 단계를 더 거쳤기에 체감은 거의 3교였다.

3교라면 거의 고칠 게 없어야하는데...

막상 교정지에 파란 펜으로 죽 그은 문장이나 고쳐 쓴 표현이 생각보다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수기로 고친 걸 한글 파일로 적용한 뒤, 아이패드로 확인했을 때 일어났다.

고심해서 고친 문장이 오히려 어색하고 이상한 것이다.

결국 고친 문장을 다시 지우고, 기존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작업을 몇 번이나 했다.

(이 무슨 헛고생인가...?싶지만 그래도 고치는 순간에는 고친 게 나을 거라 판단했다.)


2교 교정지 가장 첫 페이지에 대표님께 아래와 같은 코멘트를 적었다.


사실 교정지에 수기로 고치고, 이 한글 파일에 적용까지 했다가, 다시 읽어보니 기존 표현이 나아서 처음으로 돌아간 경우가 무척 많았습니다. 2교까지 온 만큼, 치명적인 문제가 아닌 경우 기존 느낌을 믿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큼, 고친 표현 중에서도 ‘고치는 게 맞는 건가...’ 확신이 들지 않는 부분도 몇 있었습니다. 혹 기존 표현이 낫다고 생각하시면 따로 메모 없이 기존 표현으로 두셔도 괜찮습니다.


같은 이유로, 고칠 경우 최대한 설명을 적어두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고치려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안 고쳐도 괜찮을 것 같다, 고치는 게 낫겠다 판단하기 더 쉬우실 것 같고요.



퇴고 지옥에 빠졌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 댓글 달기.



4.

원래 책 작업을 할 때마다 남편이 원고를 한 번 봐준다. 그동안 남편의 예리한 눈썰미로 결정적인 도움을 준 적이 많았다.

<너를 돌보며 어른이 된다> 작업 때는, 아마 2교쯤이었나, 치명적인 오탈자를 찾아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나의 모든 책에 큰 역할을 해 주었다.


하지만 요즘 남편이 너무 바빴기에 차마 읽어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도 2교가 되어서야 그가 짬을 내어 원고를 읽어주었다. (다는 못 읽었지만 반 정도 읽었다.)

외할머니 이야기를 쓴 꼭지를 보고 "이 글이 너무 급 마무리되는 느낌이라 좀 아쉬워."라는 의견을 주길래, "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라고 일단 대답을 하고는, '이제 와서 많은 부분을 추가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데...'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무슨 의견이든 처음 듣고 나면 청개구리 같은 고집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런 마음을 경계하고 타인의 의견을 여러 번 곱씹어 봐야 한다.

그리하여...

늦은 밤, 혼자 원고를 다시 보고 있자니 남편에게 어찌나 고맙던지.

'왜 그걸 생각을 못 했지?' 싶을 정도로 글이 정말 갑작스레 마무리되어 있었다. 여운이 남아야 할 글인데 뚝 끊겨버리는 느낌.

차근차근 내용을 덧붙여서 결국 한 문단을 추가했다.

힘이 쭉 빠지는 결말은 쓰기 싫은데, 가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써버린다.


어쨌든 이번에도 한 건 해 준 남편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



5.

'~들' 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나는 문법을 영어로 배웠다. (많이들 그렇게 배웠을 것.) 영어를 좋아했고 문법 공부를 제법 열심히 했으니 더 뇌리에 깊이 박혔다.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여전히 번역체를 자주 쓴다.

관사 a/the 를 쓰는 습관은 단어 앞에 '그'를 붙이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역시 '~s'를 쓰는 습관이 단어 뒤에 '들'을 붙이는 습관으로 이어졌고.


특히 이번 원고에서 유독 '~들'을 많이 썼다.

약간 글이 설명문(?) 같은 성격을 띠는 경우가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교정 과정에서 야금야금 '들'을 삭제했지만 미련을 못 버리고 남겨둔 '들'이 더 많았다.


그때, 대표님이 교정 과정에서 어떤 '들'은 띄어 써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

들3

「의존 명사」

((명사 뒤에 쓰여))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나열할 때, 그 열거한 사물 모두를 가리키거나,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


예문1) 책상 위에 놓인 공책, 신문, 지갑 들을 가방에 넣다.

예문 2) 과일에는 사과, 배, 감 들이 있다.



호오...!

대표님의 말을 듣고 나니, 몇 달 전 책을 읽다가 '들'을 어디서는 띄어 쓰고 어디서는 안 띄어 썼길래 순간 오탈자인가 궁금해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대략 검색해보니, '등'으로 대치해보면 된다고 했었다. '수박, 바나나, 토마토 등'으로 띄어 쓰듯, '들' 역시 여러 가지를 열거한 다음에 나오는 '들'은 띄어 써야 한다는 것.


그동안 내가 미련을 가지며 삭제하지 못했던 '들'이 띄어서 쓰여지는 순간,

문장에서 '들'만 동동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고,

그제야 이 '들'을 삭제해도 문장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심지어 깔끔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띄어쓰기된 '들'과 띄어쓰기되지 않은 '들' 모두를 열심히 삭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법 남아있기는 하다. 뉘앙스를 위한 것...이라고 해두자.)



6.

그 외에 고친 표현들.


- 심지어 치료가 모두 끝난 뒤 수납하고 병원을 나서려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따라 나오셔서 괜찮냐고 물었다.

-> 심지어 치료가 모두 끝난 뒤 계산하고 병원을 나서려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따라 나오셔서 괜찮냐고 물었다.

: 이걸 처음 쓸 때는 병원에 붙어있는 '수납/ 접수' 팻말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수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쭉 읽다가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수납: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아 거두어들임> 이었다. 돈을 지불하는 내가 쓰는 표현이 아닌 것.


- 어렸을 적, 친한 언니와 동네 놀이터의 흙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모래를 쌓아 올리며 놀고 있었다.

-> 어렸을 적, 친한 언니와 동네 놀이터에 철퍼덕 앉아서 모래를 쌓아 올리며 놀고 있었다.

: '흙'바닥, '모래'가 상충되어 삭제했다. 처음의 의도: 요즘 놀이터는 흙바닥이 별로 없어서, 흙바닥의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래바닥’이라고 고치니 또 중복되어 결국 삭제.


- 몇 년 동안 물고 뜯어서 솜이 터지고 너덜너덜해진 걸 남편이 여러 번 기워줬다.

-> 몇 년 동안 물고 뜯어서 솜이 터져 나오고 너덜너덜해진 걸 남편이 여러 번 기워줬다.

: 엄밀히 말하면 솜이 터진 것이 아니고 천이 터진 것. 그러나 굳이 '천이 터져 솜이 삐져나오고’라고 수정하기는 싫었다. ‘솜이 터져 나오고’ 정도로 타협.



7.

대표님이 가끔 이야기하실 때가 있다.

다른 책에서 오탈자를 발견하면 오히려 반가울 때가 있다고.

다 사람이 하는 작업이고, 그러니 실수할 수밖에 없는 법이고, 자신이 그 상황을 너무 잘 이해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오히려 공감, 위안이 된다고.


나도 책을 몇 권 썼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을 보다가 오탈자를 발견하면 화(?)가 조금 났었다.

돈을 지불하여 책을 구매한 '독자'로서,

이런 걸 실수하는 건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다 어제 책을 읽던 중 오랜만에 맞춤법 오류를 하나 발견했다.

이 책을 쓰신 작가님의 실수가 그저 귀여워보였다.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실수인걸' 생각했다.


나는 교정지를 정말 강박적으로 본다.

그럼에도 2교, 3교가 되어서야 치명적인 실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제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친다.

'이제 다 발견했을 거야. 더는 안 보여.'

그렇게 괜찮은 책이 되었다고 판단하며 최종 검토를 끝낸다. 하지만 이미 출간된 책들에도 (내가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오류가 있을 수 있다.

10교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무엇보다 10교를 한다고 해서 그런 실수를 발견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적당한 시점에 컴퓨터 화면에서 놓아주어야 한다. 원고는 인쇄되는 순간 나의 손을 떠난다.



완벽할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최선은 다해야 한다.

<사물을 보는 방식> 역시,

완벽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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