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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Nov 13. 2019

현실 남매가 뭐예요?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관계, 두 번째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관계' 첫 번째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엔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쏟아지지만, 막상 본인의 형제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형제'라는 것은 당연히 옆에 있는 존재이거나, 매번 싸우느라 지쳐버렸거나, 혹은 애초에 무심하게 느끼기 딱 좋은 위치에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우애 좋은 남매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찾기 어렵다. 오히려 '현실 남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는 현실 남매에 대한 우스갯소리들이 종종 떠도는데, 그 이유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어린 남매 싸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그 둘이 서로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 목격한 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엄마는 이제 정말 지친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제발 좀 고만해라 얘들아! 내가 낳은 자식 둘이서 치고받고 싸우는 거 그만 좀 보고 싶다!!"
아, 이런 게 현실 남매였지.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의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유년시절 세 살 터울의 오빠와 나는 우애가 참 좋았다. 얼추 기억나는 이 있는데, 내가 세네 살 즈음이었나. 오빠는 엄마에게 50원씩 용돈을 받아서는 구슬 모으듯 소중히 모았다. 그리고는 내 생일날 직접 슈퍼마켓에 가서 그 돈으 배트맨바를 사 왔다. 인 손도 작으면서, 그래도 나름 오빠라고 손수 아이스크림고 한입씩 먹여주었다. 손이 아이스크림 범벅이 될 때까지 꿋꿋이 막대를 들고 있던 그 모습을 기억해보면 참으로 귀여울 따름이다.

 내가 6살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과천에 살았고, 그 근처에 위치한 서울랜드에서는 밤 9시마다 레이저쇼를 했다. 우리는 매일 밤 시계를 쳐다보다가 8시 59분이 되면 손을 잡고 함께 베란다로 뛰쳐나갔다.
"이야, 시작했다!!!"
까만 밤하늘 위로 쭉쭉 뻗으며 춤을 추는 연두색 빛줄기는, 우리 집 근처까지 힘차게 닿았다. 우린 그렇게 집에서 매일 공짜 공연을 보며 추억을 쌓았다. 비록 아파트에 가려서 레이저의 꼭지 부분밖에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제목에 '현실 남매가 뭐예요?'라고 한껏 잘난 척을 해놓았지만, 사실 어떤 가족이든 365일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와 오빠도 현실 남매였던 적이 있었으니, 바로 마성의 사춘기 시절이었다. 그 당시 오빠와 나의 성향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다. 어렸을 적 오빠와 사이좋은 것이 큰 자랑거리였던 나로서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그의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오빠의 질풍노도는 확실히 질 나쁜 종류는 아니었다. 예컨대 시험 기간인데 내신 공부는 하지 않고 오히려 학교가 일찍 끝나서 좋다며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든지(응? 책...?), 힙합에 푹 빠져서는 용돈을 죄다 투엑스라지 사이즈는 될 법한 옷을 사는 데에 써버린다든지, 또 그놈의 힙합 음악을 온종일 최대 볼륨으로 틀어놓는 바람에 식구들을 모두 소음공해에 시달리게 만든다든지, 근처에 망한 비디오 가게에서 매일 비디오나 DVD 따위를 사 와서 집에 쌓아놓는다든지, 고등학생 때는 갑자기 무역인지 사업인지를 해보겠다며 아빠에게 돈을 투자해달라고 한다든지(오빠는 그때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열심히 읽고 아빠를 설득해보았으나 실패다.) 하는, 나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분들이었다.
오빠에 비하면 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나름 사교적이라 친구가 많은 편이었고, 성실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그저 흔한 학생들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오빠에게 조금 독특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행동들은 우리 식구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 당시 오빠는 아주 게을러서, 자주 늦잠을 자고 종종 지각을 했다. 아마 그에게는 학교 생활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때문에 부모님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그날도 늦잠을 자느라 지각하게 생긴 오빠를 겨우 깨워서, 아빠 차를 타고 학교에 가고 있었다. 평소 동안(童顔)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젊디 젊은 아빠의 뒷모습에서, 난 흰머리를 발견했다. 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흰머리들이 검정 머리카락 사이로 빼꼼 고개를 들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 다 더해도, 그때처럼 갑자기 늙어버린 아빠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주먹을 꽉 쥔 채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에도 옆자리에 앉아있는 오빠는 세상모른 채 쿨쿨 자고 있더랬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오빠를 많이 미워하기 시작한 것이.



오빠에게는 본인 나름의 세계가 있었다.

"이 길로 가면 돼요."
"왜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가라는 대로 가면 돼요.", 와 같은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이 그에게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도 오빠는 학원에 보내 놓으면, 가는 길에 자꾸 개미니 식물이니를 관찰하느라 종종 지각을 했었다고 한다. 정해진 목적지에, 그저 가라는 대로 앞만 보며 걸어가는 길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조금 엉뚱하긴 해도 항상 자신만의 꿈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우리 집에서, 오빠는 내신 점수가 낮아서 미운 아들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아서, 자꾸 허황된 꿈만 꾸어서, 성실하지 않아서 미운 아들이었다. 그런 오빠 밑에서 자라며 내신 압박을 받느라 힘든 나날을 보낸 나였기에, 나에게는 미운 오빠였다. 부모님의 돈을 쓰더라도 본인이 하고 싶은걸 고집하는, 그저 미운 오빠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빠는 꿋꿋하게 본인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길을 잃더라도 꼭 본인의 발로 나아갔다. 아무리 헤맬지언정, 그리고 식구들에게 아무리 상처를 받을지언정, 타인이 정해주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언제부턴가는 미국 유학을 가겠다며 방에 미국 대학교 사진들을 뽑아서 붙여놓지를 않나. 유학을 위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와중에도, 따로 한글 맞춤법 공부를 해서 날 가르치질 않나. (그때 '효과' 발음이 '효꽈'가 아닌 '효과'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거기다 설레임 아이스크림을 글자 그대로 읽었다가, '설레임'이 아니라 '설렘'이 표준어라고 혼난 적도 있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장르와 분야를 불문하는 온갖 책들을 쌓아놓고 읽지를 않나. 그쯤 되니, 나와는 너무다른 오빠가 대단하다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빠의 그릇은 정말 컸을지도 모른다. 독특한 것이 아니라, 그저 틀에 박아놓은 작은 그릇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하지만 우리 식구들은 그에 비해 너무 정형적인 사람들이었다. 하다못해 주변을 돌아봐도 유학생 한 명 없었기에, 우린 오빠의 유학 가고 싶다는 말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또 한참 동안 식구들과 외로운 싸움을 했다.

결국 오빠는 스무 살이 넘어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혼자 유학을 떠났다. 그가 처절하게 외로운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 식구들은 비용 문제로 한 번도 그를 보러 미국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그토록 게을렀던 오빠가 학교 생활을 정말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미심쩍어하기도 했다. 분명 성적을 잘 받았다는데, 이게 정말 사실일까? 라면서 말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경제학에서 수학으로, 또 컴퓨터 공학으로 전공을 세 개씩이나 해나가며 본인의 길을 열심히 찾아갔다. 쓰다 보니 참말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오빠와 워낙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 미운 마음은 조금씩 애틋함으로 바뀌어갔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그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엄마는 나와 술을 마실 때마다 그 괴로움에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다가 오빠가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취직을 했을 때쯤에야, 드디어 내게 미국 갈 기회가 생겼다. 그가 떠난 후 한 7년 만이었던가. 우리 식구로서는 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오빠를 만난 그 순간부터, 떨어져 지낸 지난날들의 의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사회성이 없던 오빠는 어디로 가고, 열차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를 않나. 그 게으른 오빠는 어디로 가고, 집에 가보니 옷장에 옷들이 각 잡혀 걸려있지를 않나.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질 않나. 심지어 먹는 것도 까다롭게 잘 챙겨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아니, 이렇게 사는데 성적이 그렇게 잘 나올 수밖에 없지! 그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본인 대신에 매 순간 성실하게 살아온 동생을 인정해주었다. 그리고는 본인 때문에 희생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그 길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그동안 잘못한 거라고, 여기서의 오빠는 정말 빛이 난다고. 너무나도 꿋꿋하고 멋지게 잘 살고 있다고. 이제 우리는 오빠를 무조건 믿어야만 한다고.

앞서 말했듯 오빠를 많이 미워했던 날이 있었다. 당시엔 그가 진정 한심해 보이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어렸을 적 손을 잡고 다니던 그 우애 좋은 남매로 다시 돌아갔다. 글로 다 담긴 어렵지만, 사실 그 미운 감정을 내려놓는 데에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감정의 골이 깊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에 대한 미움이 완벽히 사라졌다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어떻게든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과거들을 덮을 정도로 오빠는 내게 많은 자극을 주고 있었으니까. 그에게 알게 모르게 배운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으니까. 지난 감정을 계속해서 고집하다가는, 오빠가 건네는 그 소중한 들을 다 놓쳐버릴 것이 뻔했으니까.

별나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제 내 인생에 있어 선생님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잔소리를 하면 나는 짜증부터 곤 했다. 아니, 부모님도 아니고, 뭔 오빠가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 그는 여전히 나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책 많이 읽어라, 영어공부 열심히 해라, 이어폰 귀 망니 쓰지 말아라 등등. 그의 잔소리는 꽤나 유난스럽지만, 이제 한편으로는 조금 반갑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성장할수록, 조금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그에게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자라면서 그처럼 독특해져서인지 혹은 그가 이전보다 덜 독특해진 것인지 혹은 그 중간 지점쯤에서 만나게 된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이제 우리의 대화 속에는 항상 '서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다는 사실이다. 데면데면했을 시절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또 배우고 있다.


그렇게 오빠와 나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학문적인 부분에서는 그가 한 수 위, 아니 천 수는 더 위에 있기에 내가 항상 배우곤 하지만, 나에게도 나름 그의 손에 쥐어 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들이 있다. 가령 부모님을 더 잘 이해하는 법이라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잘 인내하는 법이라든지, 연애를 할 때 여자의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지,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린 그렇게, 계속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 나: 오빠, 나 요즘 글 쓴다?
- 오빠: 오, 대단한데! 잘하고 있구만. 무슨 글 써? 나도 얼마 전에 글 써봤었는데, 어휴. 보통 일이 아니더라.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는 바람에 그만뒀어. 그나저나 난 요즘 그림 배우고 있어.
- 나: 그냥 이것저것 쓰구 있어. 먼 훗날, 언젠가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웬 그림? 나도 보여줘!

- 오빠: 메신저로 보내줄게. 요즘 엄마, 아빠는 잘 지내셔?

- 나: 아, 전에 오빠가 짜증 냈다고 엄마가 섭섭해하시더라. 오빠, 엄마랑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거잖아.

- 오빠: 음. 맞아, 그렇긴 한데....

.

.

.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린 통화만 하면 한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곤 한다. 그와의 대화는 항상 고무적이라서, 끊고 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게 만든다. 참 바람직한 남매 관계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오빠와 나를 현실 남매가 아닌 '비현실 남매'라고 정의 내려본다.



 몇 주가 지나면 그가 한국으로 놀러 온다. 나는 도화지에 큼직하게 그의 이름을 쓰고는, 공항으로 마중 나갈 예정이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완전히 비밀로다가 말이다. 감동받을 오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신이 난다.



오늘의 일상,

다투고 있는 꼬마 남매를 마주치고는 문득.

커버 사진/ 저 세상 패션을 하고 있는, 어릴 적 비현실 남매.
얼마나 우애가 좋았는지는, 꼭 잡은 두 손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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