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의 계절이 돌아왔다. 어렸을 적 나는 ‘귤 킬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귤 애호가였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항상 겁을 주시곤 했다. “너, 그렇게 귤 많이 먹다간 얼굴도 노래지고 손도 노래지고 발도 노래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했다. “괜찮아요! 귤이 너무 맛있는 걸 어떡해요. 그냥 노오란 사람 할래요.”
엄마가 귤을 한 박스씩 사 오시는 날이면, 나는 기뻐 날뛰며 그 박스 안의 귤을 계속해서 까먹었다. 귤의 노란색 껍질을 까면 그 안에 주황색 속살이 드러나고, 그 귤을 반, 또 4분의 1, 또 8분의 1로 나누어 입에 쏙 넣으면, 내 치아에 반투명한 막이 닿는 순간 그 안에 들어있는 물방울 모양의 알갱이들이 입 속에서 팡! 팡! 터지며 귤 과즙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맛이 얼마나일품이던지.
귤은 따듯하게 먹으면 더 맛있다는 말에 나는 이불 밑에 귤들을 숨겨두기도 했다. 닭이 알 품듯이 귤을 열심히 품다가, “이 정도면 됐을까? 아직인가? 더 참아야 하나?”라는 말들을 쫑알거리며 귤 까먹을 타이밍만 노리곤 했다. 내가 일분이 멀다 하고 이불을 들춰서 확인하는 바람에, 아마 귤은 따듯해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오빠는먹성이 워낙 좋아서 귤을 까면 한 입에 다 집어넣곤 했는데, 난 제발 좀 아껴먹으라며 눈물을 터트린 적도 있었다. 나의 귤 사랑은 정말이지 유별났다.
그토록 귤을 좋아했던 나는, 언제부턴가 귤을 먹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먹지 못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이후, 난 스트레스성으로 소화 기관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밥을 양껏 먹고 나면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그렇게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자연스럽게 점점 한 끼에 먹는 양이 줄어들었다. 그때는 그저 적게 먹으면, 배만 부르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로 알았다. 급식 시간에 식판에 밥을 받아서 먹고 퇴식구로 남은 밥을 버리러 갈 때면, 지나가던 친구들이 물어보기도 했다.
“이제 밥 받는 거야?”
그 정도로 나는 밥을 적게 먹었다. 그리고는 배가 부르지 않은 초콜릿으로 연명하기 시작했다. 초콜릿이 위장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전혀 알 턱이 없었다. 포만감이 적으면서도정신을 번쩍 일깨워주는 데에는 초콜릿만한 것이 없었기에 나는 밥보다도 초콜릿을 많이 먹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그래도 이가 썩는 것 외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다. 초콜릿으로 허기를 해결하는 일은 계속되었고, 스트레스 역시 끊이질 않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매운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밥은 간장 종지에 담길 만큼만 먹었다. 아빠 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정도의 양이었다. 날 보는 엄마의 속은 매일같이 타들어만 갔고, 내 속은 매일같이 약해져만 갔다. 소화가 안 되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식습관을 조금씩 바꾸긴 했지만 분명 절실한 모습은 아니었다. 살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 잠도 못 잘 정도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때 즈음, 내시경 결과에서 식도까지 위산이 역류한 흔적이 보일 때 즈음에야, 그제야 나는 심각성을 깨닫고 위를 돌보기 시작했다. 지난날들을 후회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음식, 커피나 초콜릿, 밀가루, 그리고 신 음식 피하셔야 합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이 말을 들어야만 했다. 말씀하신 대부분의 음식이 나의 주식인데, 이제 도대체 뭘 먹고살라는 건가. 사실 다른 음식들은 가끔가다가 한 번씩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큼한 음식은 특히나 내게 치명적이었다. 욕심에 귤을 하나 집어 먹었다가 며칠 동안 고생한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토록 좋아하던 귤을 한 알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매운 음식이나 빵, 초콜릿 등을 참는 것도 무척힘든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귤’의 계절이 다가올 때면 나는 한껏 서러워졌다. 귤조차도 먹을 수 없는 인생이라니. 귤 킬러가 평생 귤을 먹지 못한다면 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나? 내가 귤만 보면 속상해하자 우리 식구들도 내 앞에서 귤을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 엄마가 귤 한 박스를 사 오는 일은 아예 없어졌다.
그렇게 인생에서 귤을 포기한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난 여전히 스트레스를 잘 받지만, 그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는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또 위를 잘 관리한 덕분에, 불치병처럼 진전이 없었던 소화기능도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기 시작했다. 1년 전부터는 드디어 귤을 한 알씩 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귤을 먹고도 위산이 올라오지 않다니, 정말이지 감격스러웠다. 나는 귤을 소중하게 간직해두었다가 꼭 먹고 싶은 순간에만 까서 먹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남편과 장을 보러 갔는데 귤이 눈에 들어왔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귤 더미 앞에 서서 우리는 한참을 고민했다. “이걸 사다 두면 썩기 전에 우리가 다 먹을 수 있을까? 오빠. 너무너무 사고 싶은데, 나 알잖아. 귤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거.” 남편은 대답했다. “내가 다 먹을 수 있어. 그러니까 일단 사자.” 그렇게 우리 집에는 귤 한 박스가 떡하니 자리 잡게 되었다. 무려 귤 한 박스라니. 귤 박스를 집에서 본 게 대체 언제더라.
나는 박스에 담긴 귤을 한가득 손에 쥐고서는 쟁반에 담았다. 그리고 귤을 열심히 까먹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고 먹기 시작한 귤은 순식간에 귤껍질 산더미로 변신했다. 신기했던 것은, 그만큼 귤을 먹고도 위산이 역류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귤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한껏 행복해졌다. 고작 귤 따위에,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졌다. 한 알 한알 귤을 까먹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얼마나 신이 났으면 엄마에게 연락해서 자랑도 했다.
"엄마! 나 이제 귤 먹을 수 있어!"
"어머, 이게 웬일이니! 우리 귤 킬러가 이제 다시 귤을 먹는다고?!"
엄마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대화이다. 아니, 사실 과거의 내가 들었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대화이다.
인간은 참 어리석어서, 없어보아야만 그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생애 처음 다리가 다쳤을 때 그제야 다리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라섹 수술을 하고 며칠 동안 눈을 아끼다 보니 눈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위염을 앓고 당연하게 먹던 음식들을 먹지 못하게 되면서 위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잃어보기 전에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그럴 수만 있다면 고작 귤 하나를 못 먹어서 슬퍼하고 후회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