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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Nov 06. 2019

넘치던 열정은 모두 어디로 떠났나

 요즘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자꾸 글감이나 문장들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이내 벌떡 일어나곤 한다. 무슨 한석봉도 아니고. 깜깜한 방 안에서 수첩을 열어 보이지도 않는 글자들을 마구잡이로 써 내려간다. 이렇게 나는 종일 글 쓸 생각만 하고 산다. 무언가에 이런 열정을 가진 것이 대체 얼마만이더라? 서재에 세워놓은 먼지 쌓인 기타를 보다가, 케케묵은 나의 옛 열정을 떠올렸다.

 난 열정 빼면 시체인 사람이었다. 워낙 뛰어난 것 없는 초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타고난 것 하나쯤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건지. 그저 죽어라 노력하는 길만이 남들의 평균 정도를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중학생 시절 나는 음악에 푹 빠져있었다. 특히 밴드 음악, 즉 록 음악에 심취해있었다. 그즈음 밴드 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며 밴드에 조금씩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음악은 공부로 지쳐버린 내게 유일한 돌파구 같은 존재였다.

처음엔 그저 합주에 따라가서 구경하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점점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원래  줄 알았던 피아노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결국 기타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때의 내 열정은 가히 대단했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손가락이 찢어져서 피가 났다. 계속 연습했다. 굳은살이 생겼다. 계속 연습했다. 굳은살 안쪽이 또 찢어졌다. 그래도 계속 연습했다. 글로 쓰니 참 쉽게 쓰이지만 정말 눈물 나게 아팠다. 그렇게 물집 안에 물집 안에 그 물집 안에 물집이 잡혀서, 결국에는 샤프로 찌르면 깊숙이 들어가서는 하루 종일 나오지 않을 정도로 굳은살이 단단하게 배겼다. 물론 찌를 때 아플 리 없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역시나 간단했다. 실력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그저 그 과정 자체가 뿌듯하고 즐거웠다.
내가 다니던 기타 학원의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에 대해 알고 계셨다. 하지만 레슨시간에 내게 연습한 것을 쳐보라고 하실 때면, 실력은 딱 코딱지만큼만 늘어있었다. 나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선생님은 완벽하지 않은데도 다음 진도로 넘어가곤 했다. 다른 학생들의 경우 진도를 늦춰가며 연습을 시키셨지만, 나는 더 이상 연습을 시키기도 미안기 때문이리라. 그때, 선생님은 실용음악과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도 했다. 너희들이 이 친구만큼만 연습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다고.
난 정말로, 딱 그런 사람이었다. 열정 없으면 시체인 사람.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택도 없었다. 실력도 없고, 용기도 없고, 패기도 없었다. 그렇게 결국 발전하지 못하는 취미 정도로 남긴 채 시간은 지나갔다.

공부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2학년이  나는 이공계열을 진로로 선택했다. 그 당시 수학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들 회피하는, 수학 공식을 증명하는 일을 즐거워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역시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수학을 잘한다는 의미는 50분의 시간에 맞추어 약 30개의 수학 문제를 잘 푼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증명을 하는 일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수학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낮은 점수를 받았다. 60점 수준의 점수를 맞고 펑펑 운 기억도 있다. 무려 수학인데 60점 정도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수학 선생님들께 인정받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니까,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우리 반의 수학 선생님은 무섭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모나리자, 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녀는 매일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카리스마 있는 말투로 수업을 지휘하셨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든 선생님이 수업을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모두가 잘 알 것이다. 모나리자 선생님은 수학을 정말 끝내주게 잘 가르치셨다. 다들 선생님이 무섭다는 둥, 어떻다는 둥 얘기하곤 했지만 나만큼은 수업시간마다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예뻐하셨다. 워낙 강단있고 공사가 뚜렷한 분이라 대놓고 예뻐하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분명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수업은 항상 조를 결성해서 앉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시험 점수가 높은 사람이 각 조의 조장이 되곤 했었다. 역시나 중간고사를 제대로 망친 나는 조원이 될 요량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모나리자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는 말씀하시는 것이다.
“온정이는 시험 점수와는 별개로 조장 자리에 앉아라.”
나는 민망해하며, 과연 내 볼품없는 점수로 이 자리에 앉아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곧 알아챘다. 같은 반의 모든 학생이 그녀의 말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나의 열정만은 인정해주었던 것이다.

떠올려보면, 난 항상 이런 사람이었다. 열정 하나만은 누구보다도 넘치는 사람.

 이 이후로도 내 열정을 보일만한 기회는 몇 번이고 찾아왔다. 대학 공부라든지, 대학원 연구라든지, 직장 생활이라든지 하는 것들. 난 여전히 부족한 나 자신을 보충하기 위해 매사에 열심히 임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기타를 치던 나의 순수한 열정과, 수학을 좋아하던 그런 불타는 열정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그저, 살아남기만을 위해 열정을 쓰는 일에 대해 나는 지쳐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결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돌아본 나에게 열정이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열정 빼면 시체라더니. 정말 시체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편하기도 했다. 순수한 열정 없이도 인생은 잘만 흘러가는데 뭐,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딘가가 뻥 뚫린 것처럼 조금 허전할 뿐. 그저 그렇게 지나갈 뿐 …..
어른, 아니. 성인이 된 이후로 한참을 그렇게 지냈다. 그렇게 내게서 뜨거운 열정은 떠나버렸다. 차가운 현실에 부딪혀 식어버린, 그저 미지근한 열정만이 남아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그 열정은 어느 순간 다시금 나에게 찾아왔다. ‘글'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는 말이다. 요즘 나는 글을 쓰며, 오랜만에 옛날 그때의 그 순수한 열정을 느낀다. 결과를 바라지 않아도 그저 하는 행위만으로도 열정이 쏟아져 나오는 것. 오래간만에 찾아온 열정이 많이 어색하다가도, 참 반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진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참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영원히 나버린 줄 알았건만, 다시 날 찾아와 준 열정에 대한 이 감사한 마음을, 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한번 소중히 잘 간직보련다.



오늘의 일상,

먼지 쌓인 기타를 보다가 문득.


커버 사진/ 해질녘의 갈대를 담았습니다. 필름 카메라 MINOLTA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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