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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 매사의 정답이라는 아빠의 말

그를 이해하는 과정

by 온정

오랜만에 친정집에 갔더니, 아빠는 여느 때와 같이 내 뒷목과 어깨를 잡아보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잔소리.

"너, 또 또 여기 뭉쳤다. 아빠가 운동하랬지!!!"


아빠는 무언가에 한번 꽂히고 나면 "무조건 그게 답이야!"라고 외치시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꽂혀계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운동'이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살아온 평생 동안, 우리 식구들은 툭하면 운동에 대한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아빠는 어떤 일에든 '운동이 답'이라는 조언을 덧붙이시곤 했다. 내가 성격이 예민한 것도 운동을 안 해서, 내가 소화를 못 시키는 것도 운동을 안 해서, 내가 아픈 것도 운동을 안 해서, 내가 우울한 것도, 잠을 잘 못 자는 것도, 피곤한 것도 모두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다.

가끔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빤 몸살에 걸려 앓아누운 엄마에게도 가끔 "그게 다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야!"라고 호통을 치셨다. 눈물이 유독 많은 내가 울고 있을 때면 "그게 다 근력이 없어서 마음이 약해지는 거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화학 약품에 취약해서 연구가 힘들다고 고백했을 때도, 아빠는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하셨다. 운동이 좋은 건 모두들 아는 사실이라지만, 아빠는 왜 이렇게까지 운동에서 모든 문제의 답을 찾으려 하실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아빠는 사업을 하시다 부도가 났다. 결국에는 몸져누워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 시절 아빠의 몸무게는, 고작, 55킬로였다. 하루하루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는 괴로운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빠의 성격을 쏙 빼닮았기에, 그 시간들이 얼마나 힘드셨을지는 조금이나마 짐작이 간다.

좌절로 가득했던 그때 아빠는 국선도, 즉 단전호흡이라는 운동을 만났다. 나도 어렸을 적 단전호흡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데, 운동과 명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이다. 아빠는 그 운동을 시작하면서 몸도 마음도 조금씩 건강해지셨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안방에서 음악을 틀어놓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난다. 피리 부는 소리로 시작하는 구수한 단전호흡의 음악은 아직까지도 내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엄마는 가끔 그때를 회상하며 말씀하신다.
"아빠는 단전호흡이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 쑤욱 들어간 볼이, 그 삐쩍 마른 팔, 다리가. 지켜보기만 해도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몰라."

학창 시절 튼실한 다리가 콤플렉스였던 나는 아빠의 마른 다리를 보며 말하곤 했었다.
"아빠! 내 다리가 아빠 닮았으면 진짜 예뻤을 텐데. 난 아빠의 정말 많은걸 닮았는데, 왜 하필 다리만 안 닮았을까."
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빠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하시곤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리가 튼튼한 게 얼마나 큰 복인지 우리 딸이 몰라서 하는 말이야. 몸을 받쳐주는 다리가 튼튼해야 평생 건강할 수 있는 거야. 너, 조금만 나이 들어봐라. 그 다리에 감사하게 될걸?"
그 당시 콤플렉스로 무장해버린 나는 아빠의 대답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딸을 위로해주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려서 항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곤 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를 찰싹찰싹 때리고 싶다. 마른 다리는 아빠의 콤플렉스였는데. 이 속없는 것. 그리고 아빠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튼튼한 다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난 뼈저리게 깨닫고 있으니까.

그렇게 아빠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단전호흡을 하셨고, 결국에는 사범 자격증까지 따셨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으시자 이번엔 헬스장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셨다. 말라서 콤플렉스였던 아빠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다부진 몸으로 변해갔다.

그리하여 지금도 아빠는 헬스를 꾸준히 다니고 계신다. 친정집에 찾아갈 때면 가끔 아빠가 몸살에 걸렸다며 앓는 소리를 하시는데, 원인이 무엇인고, 하면 언제나 '격한 운동'이다. 또 그의 다리를 보면 항상 거뭇거뭇한 멍이 들어 있곤 하다. 그것도 역시나 운동을 하다가 다치신 것이다. 그 멍들이 괜히 아빠의 훈장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는 그렇게 매번 근육통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계신다.

이렇듯 아빠에게 운동이란 '몸의 근육'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 어두운 나날들을 보냈던 시절.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본인이 불안한 마음으로 잠 못 들던 그때의 그 아픈 나날들이 떠오르셨을 것이다. 마음의 병이 얼마나 본인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인지 잘 아셨기에, 더욱 애태우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내게 운동을 강조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빠도 마음이 아팠던 날들이 있었기에, 몸이 아팠던 날들이 있었기에. 그것을 아빠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비법은 바로 운동이었기에. 아빠는 운동을 하며 몸의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도 함께 만들 수 있었기에. 그랬기 때문에 아빠에게 운동은 매사의 정답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아빠 밑에서 자란 덕에 나와 오빠도 자연스레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빠에게 받은 소중한 자산인 셈이다. 오빠는 스무 살에 미국에 나가 혼자 살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끊임없이 운동을 한다. 타지에서 혼자 아프면 그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또 병원 한 번 가려면 엄청난 돈을 써야 하는 미국에서, 오빠는 병원비를 아끼며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나 역시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인생을 살아가며 운동에 대해 각성하는 시간들이 참 익숙하다. 요가 매트에서 다리를 찢으며 책을 읽거나, 스트레칭을 하며 티브이를 보는 습관이 그러하다.



아빠와 함께 살 적에는 사실 그의 이야기들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참 많았다. 빠는 워낙 주장이 강한 편이라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나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라는, 아주 강력본드 같은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시곤 했다. 그래서 아빠의 대답을 들을 때면, 그 첫마디가 귀에 찰싹 달라붙는 바람에 마음에 방어벽이 쳐지고 는 것이다. '역시 내 말은 안 들어주시는군.'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내가 가만히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아빠의 그 말을 듣는 동시에 "역시 아빠는 내 말을 하나도 안 들어줘! 대체 요즘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요? 무슨 말을 해도 말이 되는 게 요즘 세상이라구요!"라고 꽥 소리를 지르는 것이, 그와의 대화에서 항상 반복되는 레퍼토리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빠는 식구들이 당신의 말이면 무조건 듣지 않는다고 매번 섭섭해하시는 것이다. 분명 아빠가 먼저 나의 말을 안 들어주신 건데. 아빠는 왜 우리가 말을 안 들어줬다고 섭섭해하시는 것일까? 이런 문제는 대화할 때마다 생겨버려서, 평생 해결되지 않는 우리 식구들의 숙제 같은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빠와 떨어져 살며 멀리서 그 상황을 지켜보니 이제야 조금 알겠다. 그저, 첫마디의 고비를 잘 지나면 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아빠의 강력한 첫마디를 잘 지나친 뒤 뒤따라오는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있자면,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다. 아빠의 고단한 인생의 경험에서 나오는 진정한 조언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종종 이야기한다.

"사실 그때는 아빠가 날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아빠를 미워하기도 하고, 많이 속상해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또 아빠 말에 틀린 건 없었다? 물론 나와 다른 건 좀 있겠지만 말이야."



난 요즘 운동복을 입으신 아빠를 볼 때면, 우리 아빠는 역시 몸이 너무 좋다고. 게다가 너무 잘생겼다고. 멋있다고! 아낌없이 칭찬을 날려드린다. 그럴 때면 "에이 뭘 그래. 늙고 배 나왔구만." 라고 대답하시며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아빠를 발견할 수 있다. 아빠와 이런 대화를 할 때면, 정말이지 솜사탕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 글 쓴다는 핑계로 운동을 한참 동안 하지 못했다. 아이고, 아빠의 운동하라는 잔소리가 환청으로까지 들리려 한다. 다음 아빠와의 만남에서 한참 동안 설교를 듣지 않으려면 난 얼른 운동하러 가는 것이 좋겠다. 아빠 말에는 틀린 게 없으니까 말이다.


오늘의 일상,

아빠의 잔소리를 듣다가 문득.


커버 사진/ 운동이 매사의 정답이라 외치시는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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