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대인기피증

착한아이 콤플렉스 - 2편

by 온정

초등학생 때부터 회장감은 아니었지만 부회장이나 부반장은 줄곧 해왔다. 친구가 많아서 고민한 적은 있으나 친구가 없어서 고민해본 기억은 없다. 전형적인 사교형 인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놀고 지지고 볶고 절교도 해보고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를 반복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대가 되어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학과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과대표도 맡아서 했다. 웬만한 선후배는 다 알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항상 주변을 챙기느라 바빴다. 그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일이 너무 힘든 나머지 사람들을 못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고 ‘변했다’며 섭섭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내 몫을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나둘 인맥은 정리되었다. 정말 뻔하디 뻔한 클리셰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즘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해도 너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극과 극으로 변할 수 있는지?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별로 없던 나. 달력이 약속들로 빽빽하던 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매번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던 나. ‘땡칠이의 생일입니다.’ 문구가 뜨면 선물을 준비하기 바빴던 나. 지금은 그저, 집 밖이 위험한 집순이가 되었다. 집에만 처박혀서 글 쓰는 일이 최고의 행복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매년 12월 31일마다 휴대폰에 코 박고 쓰던 새해 메시지마저, 올해는 답장만 겨우 보낸 채 지나가버렸다. 만나자는 친구들의 말에도 요리조리 대답만 피해 다니는 이상한 상황. 난 언제 이렇게까지 변해버린 걸까. 지극히 사교적인 자세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자세로.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에서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으로.

“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남아있어서 그런 거예요.”
정신의학과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 선생님, 저 하나도 안착해요. 사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요. 제가 어렸을 때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제가 많이 이기적으로 변했거든요. 부모님께 반항도 좀 심하게 하고. 막 소리를 지르기도 했구요. 그리고 옛날에는 친구들한테 맞추려는 노력도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저랑 맞지 않는 친구들은 만나지도 않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저와 잘 맞는 최소한의 친구들만 만나려고 하는 건데도.... 그게 너무 힘들어요.”

"그러니까, 바로 그거예요. 어렸을 적부터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에, 가족을 만나든 친구들을 만나든 본인도 모르게 상대에게 맞춰주려는 성향이 있었을 거예요. 상대를 챙겨주어야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을거구요. 본인은 그게 워낙 자연스러워져서 잘 모르겠지만, 사실 마음은 그걸 힘들게 느끼는 거죠. 이제는 그만 하고 싶은데 어떻게 그만 하는 건지 방법은 또 모르겠고. 지금 그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행동이 극단적으로 튀어나오는 거예요. 반항을 한다든지, 상대방을 아예 안 만나버린다든지 하면서요. 하지만 어떻게든 터트리고 있다는 것이 큰 발전이에요. 잘하고 있어요. 아마 이 과도기가 지나면 좀 더 부드럽게 다듬어질 거예요."

몇 달 전, 나는 공모전 준비로 한 달간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 여유가 생기자 그동안 밀렸던 약속들이 들이닥쳤다. 몇 주 동안 약속이 빽빽했다. 그 일정들을 반쯤 소화했을 때쯤이었다. 분명 나는 이 시간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캘린더를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버렸다. 적어도 하루 이틀은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하고 계속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많이 버거웠나 보다. 이제는 이렇게 많은 만남을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옛날에는 매일같이 밖으로 나가던 나인데. 눈물까지 날 정도로 힘겨워하는 나 자신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내게 찾아온 변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러고 나니 좋은 컨디션으로 그 순간을 즐기고, 또 그 관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에는 웬만하면 나 자신과 마주하려 한다. 이런 과도기가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는, 사교적이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뭐, 사실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나 자신과 함께하는 법을 많이 익혔기에.



이미 난 나쁜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착한 아이에서 벗어나는 법은 나쁜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속에 뿌리 박혀있는 착한 아이를 잘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안의 착한 아이가 왜 그리 지쳤는지, 좀 더 이해해보고 잘 달래 보려 한다. 결국 지금 내게 집 밖이 위험한 이유는, 아직 나 자신과의 대화가 부족해서라는. 나의 결론이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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