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착한 청개구리가 되었나

착한아이 콤플렉스-1편

by 온정

성인이 된 뒤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해온 질문이 있다.

첫째, 나는 왜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는가.
둘째, 나는 왜 그리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까.
셋째, 나는 왜 타인의 감정을 내 감정보다 중요시할까.
넷째, 나는 왜 타인....

나는 어쩌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게 되었을까. 이 글은 온전히 그 원인을 따라가며 고뇌한 흔적이다.



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어렸을 적 상처부터 근 20년 간의 모든 아픈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처는 연필로 쓰세요>

몇 달 전 나는 꽤 심한 불안장애를 겪었다. 그리고 위 글에서 썼듯, 지난 상처들이 떠올라 한껏 괴로워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받은 상처들은 그렇다 치자. 문제는 내가 과거에 타인에게 주었던 상처들까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죄책감.
그 생각들은 죄책감이라는 형태로 다가와 나를 더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사실 처음 경험하는 일은 아니었다. 나에게 마음의 감기가 찾아올 때마다 지난 일에 대한 죄책감은 뒤따라오곤 했다.

불안 장애 치료하러 정신의학과에 가니, 두 장의 설문지를 손에 쥐어주셨다. 지금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간이 검사지였다. 항목들에 체크를 하던 중, 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보게 되었다. "최근 종종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 죄책감도 강박의 증상 중 하나였구나. 이게 나만 겪는 이상한 현상은 아니었군.



난 조금 이른 초등학생 시절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멋모르고 날뛰던 내게 부모님은 강력한 회초리를 주시곤 했다. 특히 인성의 문제라고 판단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혼을 내셨다.

한 번은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의 모든 학생들에게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제출하라고 하셨다. 누군가가 익명으로 선생님께 안 좋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나 뭐라나. 그런데 하필 내 비밀번호는 비속어였다. 당시 내 입이 험하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비밀번호'였으니까.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이며, 아무도 알면 안 되는 번호였으니까.

우물쭈물하며 제출한 비밀번호를 본 담임선생님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셨다. 학교가 끝난 뒤 집에 오니 엄마가 싸늘한 얼굴로 날 기다리고 계셨다. 설마, 선생님이 내 비밀을 알리신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 설마가 맞았다. 아니, 내가 메일을 보낸 범인도 아니고. 내 비밀번호 때문에 혼나야 한다고?

"너, 엄마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아니? 어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니?"

"엄마, 비밀번호잖아요. 비밀이잖아요, 말 그대로...."

난 그날도 결국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죄송하다며 사죄했다. 억울했지만 별 수 없었다. 그 당시의 부모님은 누구보다 보수적이고 엄하셨기에. 난 감히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나름 잘 나가는 아이,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아이. 집에서는 착한 딸, 하지만 밖에서는 조금 못된 아이. 난 그런 아이로 지냈다. 하지만 비밀번호 사건을 시작으로 나의 이중생활은 점점 엄마에게 들통나기 시작했다.

그즈음의 나는 같은 반의 한 친구 G를 싫어했다. 다른 친구들도 한 마음이었으며, 그런 분위기는 점점 G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나중에 몇 번이고 반대의 상황을 겪어보며 그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깨달았으나, 사실 그때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잘 몰랐다. 그렇게 난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리고 평소 G의 어머니와 연락을 하던 엄마는 그 소식을 접하셨다. 그 날, 엄마는 바깥에서 나뭇가지를 꺾어오셔서는 내 다리에 피멍이 들 때까지 회초리를 때리셨다. 그때는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 내가 이렇게 키웠니? 응? 남한테 그렇게 쉽게 상처 주면서 살라고 했어??!"

벌써 20년가량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내 종아리는 핏줄이 다 터져서 보라색으로 변해버렸다. 반성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초리의 흔적이 짙어질수록, 친구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결국 난 사과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은 사과 따위가 그녀의 상처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이 힘들 때면 이런 일들이 죄책감의 형태로 내게 찾아오곤 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엄마는 내가 체해서 손을 따달라고 해도 마음이 약해서 못하시는 분이다. 같은 사람인데 그 당시라고 뭐가 달랐을까. 아마도 난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으면서, 은연중에 그 마음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를 혼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아닌, '엄마는 지금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고 있다.'라는 생각 말이다.

이런 시간들을 겪은 뒤 나는 조금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초등학생 때는 떵떵거리며 살았으나, 부모님의 호된 인성 교육에 이어 친구들의 배신까지. 난 변했다. 하필이면 조금 극단적인 방향으로.



그 뒤로 난 공부하라는 흔하디 흔한 잔소리도 듣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 자신이 부스러질 정도로 공부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더 이상 잔소리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부모님이 내 건강을 걱정하여 "온정아, 공부 좀 적당히 해."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난 꼭 그 지경까지 공부했다. 왠지 "공부해라"가 아닌 "공부하지 말아라", 같은 반대의 말들에 더욱 솔깃했다. 약간의 반항심이 인 착한 도랄까. 난 심지어 "온정아, 빨래 좀 널어라" 같은 말조차도 듣기 싫어했다. 그래서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알아서 빨래를 다 널어놓곤 했다. 그러고 나면 "역시 온정이는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해. 지 오빠랑은 다르다니깐." 칭찬을 받았다. 나는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 뭐든 알아서 하고, 그에 인정받는 상황들에 중독되었다. 착한 청개구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질풍노도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온정이는 착하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으며 살았다. 학년이 끝날 때나 생일 때 롤링 페이퍼를 받아보면 온갖 착하다는 수식은 다 적혀있었다. 작은 일에도 고맙다 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달고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미안해하며 지냈다. 그 미안한 마음이 죄책감의 형태로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 마음을 형성했다. 나보다는 남에게로 향해있는 마음. 타인의 퍼즐 모양에 애써 맞춰져 있는 마음.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할 줄 몰랐다. 그 모습으로 성인이 되니 부작용은 점점 또렷하게 나타났다. 타인의 인정에 과히 집착하고 있었다. 대학생 때는 별 볼 일 없는 선배가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 적도 있다. 어휴. 지금 생각해도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창피하다. 그렇다 해서 지금은 나 자신을 인정할 줄 알게 되었느냐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오.’다.
게다가 사회에 나와보니, 착한 사람은 만만한 사람을 뜻했다. 만만한 사람이란 괴롭히기 딱 좋은 사람을 의미했다. 온갖 괴롭힘을 당하며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말겠다’고 이를 박박 갈며 20대를 보냈다. 그 덕에 내 마음은 어느 정도 나만의 퍼즐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껏 열심히 날 바꾸어보았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착한 청개구리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 ‘역시 온정이는 잘한다니깐.’, ‘온정아. 너 그렇게 열심히 하다 쓰러지겠다야.’ 따위의, 타인의 인정을 먹고사는 청개구리. 엄마는 이렇게 자란 나를 보며 종종 후회하곤 하신다. 어린 나를 너무 호되게 혼낸 탓에 내가 항상 주눅 들어 사는 것 같다고. 너무 착하게 사느라 고생하는 것 같다고. 불쌍하다고. 하지만 엄마의 호된 인성교육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멋모르고 떵떵거리던 그날들을 돌아보면 정말이지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흘리시며 딸 다리에 회초리를 들던 엄마의 마음에 감사한다. 그렇기에, 내가 착한 청개구리가 되었다 해서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짐작건대, 이놈의 답답한 청개구리 기질은 쉬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내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내 안의 자아이다. 어차피 이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그래도 좀 더 노력은 해보려 한다.

첫째, 나 자신을 인정할 것
둘째, 나 자신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지 않을 것
셋째, 나 자신을 사랑할 것
넷째, 나 자신을.....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 자신을 기준으로 삼고 살 것.”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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