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마시고 싶어서 쓰는 글.
술 냄새 주의.
너와의 관계는 참, 쉽지 않아.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아도 쉽지가 않아.
스무 살 만난 너는,
나에게 있어 승모근 마사지 같은 존재였어.
긴장과 정신력으로 똘똘 뭉쳐서 꼿꼿하던 나의 근육들도, 너를 만나면 흐물흐물 풀려버리곤 했지.
침대에 누우면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들던 나의 뇌도, 너를 만난 날이면 스르륵. 미련 없이 퇴근하곤 했지.
그게 참. 중독성 있더라고.
아이러니하게도,
난 너와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어서 일부러 더 긴장하기까지 이르렀어. 완전히 풀어진 상태로 널 마주하다 보면 내가 금방 쓰러져버렸거든.
어찌 됐든 너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참 좋았어.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잘 몰랐던 나.
슬픔을 감당하는 법을 잘 몰랐던 나.
맘 편히 고삐 푸는 법을 잘 몰랐던 나.
그 방법을 알려준 게 바로 너였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너 참 위험한 존재더라.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하는 존재더라구.
근데 그걸 처음부터 어찌 알겠어.
그저 나에게 도움이 되니까. 나에게는 돌파구 같은 존재니까. 아무래도 너무 생각 없이 너에게 들이댔나 봐.
힘들어도 널 찾고, 행복해도 널 찾고, 심심해도 널 찾고, 속상해도 널 찾고, 기뻐도 널 찾고, 아파도 널 찾고, 배고파도 널 찾고, 아무 이유가 없어도 널 찾곤 했으니까.
스물넷, 그즈음.
난 대학원에 다니며 참 많이 울었어.
나도 모르게 눈에서 또륵또륵 떨어져 대는 눈물이 정말이지 지겨웠어.
너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지.
원래 너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존재였는데,
너에게 의존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단 둘이만 있고 싶어 지더라.
너는 아무 말없이 날 위로하니깐.
나 역시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니깐.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너를 찾게 되었어.
부모님은 내가 너와 어울리는 걸 무진장 싫어하셨어. 그래서 나는 너를 가방에 넣고는 몰래몰래 방으로 데려가곤 했지.
아. 너는 마주하기 전에 꼭 요란한 소리를 내곤 하거든. '타악! 딸깍, 치이이이익-' 같은 소리.
그 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나가면 부모님께 들켜버리니까, 난 그와 동시에 음악 볼륨을 한껏 올리곤 했지.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너랑 놀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어.
물론, 너무 자주 만나나?라는 걱정도 하긴 했지. 너와 만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걸 걱정하기에 내겐 다른 걱정거리가 너무 많았던 거야.
그러다가 말이야.
너와 조금 거리를 둬야겠구나,라고 결심하게 되었어. 내가 너한테 아주 잡아먹히고 있구나, 깨닫게 되었거든.
어느 평범한 주말.
난 하루 종일 집에서 쉬고 있었어. 그런데 저녁 즈음되니까 또다시 네 생각이 나는 거야. 분명 평일에 몇 번이고 널 만났는데 말이야.
“잠깐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냐는 엄마의 물음에 대충 얼버무리고는 편의점으로 향했어.
'네 캔 만원' 앞에 서서는 초록색, 은색, 초코색, 노란색 등의 캔을 집었다 내려놨다, 고심해서 널 골랐지. 난 언제나 그렇게 네 개의 너를 데려오곤 했거든.
검은 봉다리에 몸을 숨긴 묵직한 너를 들고 신나게 집으로 향하던 길.
어이쿠야.
나는 발목을 접지르며 넘어지고 말았어.
바닥에 내팽개쳐진 봉지에서 데구르르 삐져나오는 너를 보며,
왜 그리도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을까.
바닥에 뒹구는 너를 주섬주섬 주워서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어. 발목이 부었더라고. 그 덕에 한참 동안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어.
그 이후로 너와 떨어지려고 노력은 했다만,
이미 너무 가까워져 버린 우리라서 쉽지가 않더라.
그러던 어느 날.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힘들었던 어떤 날.
널 찾으려 편의점에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참고 집으로 들어왔어.
그런데 12시가 지나고 새벽이 찾아왔는데도 네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거야. 부모님이 주무시니 나갔다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잠을 청해보았지만 역시나 실패했지 뭐.
결국 나는 주방을 뒤지기 시작했어.
엄마가 요리할 때 쓰려고 장만해둔 초록색 병이 하나 눈에 보이더라. 냉장고에 있는 멸치볶음을 꺼내서는, 방으로 들어갔어.
멸치볶음 한입.
너 한잔.
멸치볶음 한입.
너 한잔.
참.......
쓰더라.
너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워낙 많긴 했다만.
그렇게 센 형태를 한 너와 단 둘이 있었던 것은 처음이었거든.
내 모습이 어찌나 딱하던지.
또 넌 어찌나 씁쓸하던지.
나는,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어.
아무리 네가 좋아도. 제발 이렇게까지는 하지 말자고.
날 즐겁게 만들어주던 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한심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더라.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내 몸이 널 미워하더라.
그동안 너와 무분별하게 가깝게 지냈던 것이,
내 몸의 입장에서는 지독히도 싫었나 봐.
너에게는, 순간의 달콤함을 주고는 다음날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하는 능력이 있거든.
처음에는 오전에만 아프다가 말곤 했었어.
그래서 오후가 되면 다시 널 떠올리곤 했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통의 시간도 늘어나더라.
결국 널 만나고 나면 다음날 밤까지 머리가 아파서 잠을 못 자는 상태까지 다다랐어.
아, 덤으로 위장까지 아파졌지 뭐야. 다 너 때문에.
몸이 이제는 지쳤다는 거야. 제발 그만 좀 하쟤. 그래서 너랑 조금만 놀다 와도 장기들이 며칠이고 시위를 하곤 하더라고.
너와 멀어지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발목을, 혼자 마주하던 초록색 병을,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나의 장기들을 떠올렸어. 다행히도 효과가 좀 있더라.
몇 년이 지나 내 건강은 꽤 좋아졌지만
여전히 너를 마주하고 나면 꽤 오래 앓게 돼.
아마 이전에 갈 데 까지 가버린 탓에, 정말이지 질려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난 여전히 네가 좋아.
날 힘들게 하긴 했어도 한 번도 널 원망한 적은 없어.
마음이 힘든 시간들을 견디게 해 주었으니까.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너와 종종 만나고 싶어.
하지만 내 몸이 허락해주지를 않으니 그저 참는 수밖에.
모든 관계라는 게 말이야.
약간의 거리가 있어야 서로에게 더 유익하더라.
너무 가까워져 버리면 서로에게 독이 되어버리더라구.
그러니,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해지고 싶을 때.
인생이 너무 팍팍할 때.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무언가를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을 때.
그럴 때만 너를 찾을게.
그럼 우리 더 반갑게 만날 수 있을 거야.
내 말 맞지?
고마워. 항상.
애정을 담아,
온정.
(쓸데없이 아련한)
술에게 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