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는 공부를 잘해야 나 자신이 쓸모 있는 인간처럼 여겨졌다. 공부를 하지 않는 나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임에 틀림없었다.
또 졸업을 하고 나니 돈을 벌어야만 나 자신이 쓸모 있는 인간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졸업 후 취직이 안되던 몇 달 동안 나 자신은 마치 쓸모없는 인간과도 같았다.
취직 후 돈을 버니 드디어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기분이었지만, 그 생활이 너무 힘든 나머지 '쓸 수 없는 인간'이 될 지경에 다다랐다. 취직, 퇴사, 이직, 또 퇴사......
퇴사를 할 때면 나는 쓸모 있는 인간에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그와 동시에 쓸 수 없는 인간에서 쓸 수 있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 퇴사는 무엇을 느낄 새도 없이 이직으로 끝이 났지만, 두 번째 퇴사를 한 뒤엔 그나마 쓸모 있으면서도 쓸 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하루 건강하면서도 생산적인 일들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현재, 퇴사 3개월째.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래서, 넌 지금 쓸모 있는 인간이니?”
“글쎄.... “
다시 원점이다.
평생 3개월 이상 쉬어본 기억이 없다. 하물며 가장 길었던 초등학교 겨울방학조차도3개월보단 짧았다. 평생 3개월 이상 하고 싶은 일만 해본 기억이 없다. 대학생 때 겨우 한 학기 휴학을 했을 때도, 나는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영어공부를 했더랬다. 그런 내가 지금 3개월 동안 쉬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면서 말이다. 쓸모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저 하고 싶은 일만 해본건 난생처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3개월가량을 지내고 나니 이제 또 나의 쓸모를 찾게 된다. 그것도 꼭 ‘돈’이라는 잣대에만 나를 속박시키며. 자꾸만 나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안타깝게도 ‘쓸모없다’는 생각에는 강한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한 번 시작하면 자꾸만 그 속을 파고든다. 결국 어둠 속을 탐하다가 깊이 가라앉게 된다.
그 무기력의 바다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두 팔을 힘껏 저으며 허우적허우적 헤엄쳐본다. ‘아니야. 난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야...!’ 머리를 도리도리 세차게 저어도 보고.내가 쓸모 있는 이유를 노트에 적어보기도 하고.샤워기 아래 얼굴을 치켜들고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세게 맞아도 보고.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꼴깍거리며 버둥대다 보면, 그래도 결국 나의 쓸모는 내 안에서 발견한다. 그렇게 오늘도 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다. 이 글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부터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인 거고, 또 동시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라고,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그래도내 고민을 담은 글 한 편 썼으니, 이제 됐다. 난 쓸모 있는 사람이야. 당장 돈은 못 벌지언정....”
마음이 칠흑일 때. 어둠 속에서 깊이 가라앉아버려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럴 때, 조금 더 차분하게 기다려보기. 그리고 조금씩 선명해지는 내 마음을 읽어보기. 이렇게 또 좌절의 한 고비를 넘긴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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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월부터 다시 직장인이 될 예정이었는데, 상황이 좀 틀어지는 바람에 아직도 백수 상태예요. 요즘 제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그 고민과 방황에 대해 안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글을 쓸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러니 글 마무리는 항상 희망으로!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