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전 퇴사를 한 뒤, 난 동종업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는 전혀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는 중이다. 앞으로 잘 될 거라는 확신은 아직 없다. 그렇기에 종종 불안함이 찾아온다.
이런 내 상황을 표현해보자면, 동물의 왕국에서 끝내 살아남지 못한 패배자랄까. 아, 참고로 나 자신을 패배자라고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중요한 건 ‘동물의 왕국’이라는 배경이다. 흙먼지 날리는 세렝게티 초원에 여우 한 마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매일 물어뜯고, 뜯기고, 그 안에서 하루라도, 또 1년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격렬한 술래잡기를 해야만 하는 곳. 내가 살기 위해 약자를 공격해야만 하고, 동시에 강자는 무서운 속도로 내 꽁무니를 쫓아오고 있는 긴박한 곳. 유사한 종의 동물들과는 누가 더 잘났나 겨뤄야 하는 곳. 내 털에 얼마나 윤기가 좔좔 흐르는지, 내 털이 얼마나 풍성한지 뽐내기 위해 매일같이 털을 골라야 하는 곳. 이는 생존과 연관된 문제이며 본능인 셈이니, 이 순리를 거스른다면 살아남기 쉽지 않을 터. 여우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왜....?'라는 물음에 봉착해버렸다. 왜 굳이 치열한 세렝게티 초원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난 사냥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저 타고난 본능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는 이유로 진정 평생 사냥만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분명히 눈을 돌려보면 적어도 여기보다는 나에게 더 맞는 장소가 있을 텐데.
모두들 자신만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 그렇기에 잠시나마 스톱을 외쳐버린 나는 계속해서 불안하다. 원래 내가 떠돌던 세렝게티 초원이 아닌, 다른 안식처를 찾아 떠나는 일이 두렵기만 하다. 그래도 그 불안을 애써 떨쳐내고 꼭 나만의 보금자리를 찾으리라. 더 이상 내 능력 밖의 일을 하느라 망가지지 않으리라.
김연수 작가님은 <청춘의 문장>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김연수 작가님은 글을 쓸 때, 가장 사람답게 산다고 했다. 또 글을 쓸 때, 한없이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왜?’라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은 지금까지 충분히 했다.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을 찾을 차례이다. 내가 순간의 불안함에 떠밀려 다시 세렝게티 초원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며. 절대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의 항복은 정당하다!’고 크게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