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생긴 습관

by 온정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혹시 오늘 하루, 하늘을 몇 번이나 올려다보셨나요?"

나는 유독 하늘 보는 일을 좋아한다. 매일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의 정수리 위에 펼쳐져있는 당연한 존재 같지만, 막상 당연하게 ‘즐기는’ 존재는 아니다. 직장-집-직장-집 패턴이나 학교-학원-집 패턴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아무리 당연하게 존재한다 한들 굳이 위를 쳐다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하늘이 '선물'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내가 직접 찾아가야만 손에 쥘 수 있는 선물.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거의 매일 받을 수 있는 -'거의'라고 표현한 이유는 미세먼지가 심할 때의 누런 하늘을 제외한 것이다- 그런 선물.

자연이 나에게 이토록 특별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많은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그렇듯, 학창 시절에는 하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지만 이미 나는 하늘을 보는 법을 까먹은 듯했다. 하늘 아래 살고 있기에 매일 자연스레 하늘을 보게 되지만, 정작 내가 하늘을 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진 않았다. 매일 땅을 밟으며 걸어도 ‘내가 땅을 밟으면서 걷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화학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였다. 나는 그때의 고된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아침 9시. 철컥, 차가운 쇠문의 손잡이를 당겨서 연다. 주유소에서 차창을 연 듯 석유 비스무리한 냄새가 콧구멍을 훅 찔러온다. 까맣고 거칠거칠한 실험대와 그 위에 서있는 하얀 선반들. 실험대 위엔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어제 밤늦게까지 실험하다가 놓고 간 삼각플라스크, 스포이드, 메스실린더 등이 널브러져 있다. 선반은 과연 흰색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먼지가 수북하다. 휴지로 대충 쓰윽, 닦아낸 뒤 한켠에 걸린 흰 실험복을 걸쳐 입는다. 휴, 실험복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온갖 화학물질들이 다 튀는 바람에 얼룩덜룩한 이 실험복은, 항상 처음 구입할 때만 하얀 모습이다.

오늘도 실험을 시작해볼까나. 파란색 라텍스 글러브를 손에 끼고는 고 문헌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 훑어본다. 그러다 계산기를 두들기며 중얼거린다.
"A는 5g, B는 10g... 아, 이거 12시간짜리네? 오늘도 늦게까지 해야겠구먼."
그렇게 또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대학원생은 노예와 다름이 없다. 등록금과 맞바꾼 노동력은 달력의 빨간 숫자와도 관계없이 무한히 제공된다. 자고로 실험이라는 것은 제 뜻대로 잘 이루어지면 실험이 아닌지라서. 아무리 논문에 나온 고대로 진행해도 결과는 다르게 나오는 무심한 놈이 바로 실험인지라서. 그렇기에 노예처럼 열심히 연구해도 항상 교수님 앞에선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교수님, 이 논문도 참고하고 저 논문도 참고해보았는데 다음 단계로 진행이 안됩니다. 다음 주엔 이런 방식으로 진행해서 꼭 성공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매주 금요일 진행되는 미팅 시간마다 나는 쪼그라든다. 차라리 모기 소리가 내 목소리보다 클 터. 미팅이 끝난 뒤 터덜터덜, 다시 그 차가운 쇠문의 손잡이를 연다. 그 안에서 풍겨오는 실험실의 공기가 참으로 역겹다.

‘이 굴레는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논문은 고사하고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취직은 또 어쩌지.’ 온갖 비관적인 말들을 다 떠올리며 다시 실험을 시작한다. 그런데 실험이란 게 참 신기한 존재라서, 종종 연구자의 마음이 반영되곤 한다. 검은 마음을 가지고 진행한 실험은 플라스크 안에까지 그 오염 물질이 전달된다. 그래서일까. 정성을 쏟은 실험과 정성을 쏟지 않은 실험의 결과가 달라지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억지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그 ‘검은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첫 번째로 나의 정신 건강이 우려되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실험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저 차가운 쇠문을 열면 몇 발자국 앞에 베란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힘이 들 때면 그 앞에 나가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세상의 그 어떤 위로보다도 나의 마음을 더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곤 했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나는 지금도 매일 의식적으로 하늘 위를 쳐다본다. 힘든 상황에서 생긴 습관이지만, 자연에서 해답을 찾은 나 자신이 참 기특하다. 어디선가,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사치는 ‘고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통 현대인들은 고요함을 즐길 여력이 없으며 가만히 있는 법을 잘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가만히 서서 구름이 흘러가는 대로 눈길을 쫓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이면 구름이 좀 더 서둘러서 지나가곤 한다. 그럴 때면, 콧속으로 상쾌한 공기가 가속도를 내며 꽂혀 들어온다. 동시에 눈동자는 후다닥 도망가는 구름을 쫓느라 바빠서, 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던 것들이 잠시나마 도망간다. 많은 시간도, 노력도, 돈도 필요하지 않은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습관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해졌을 때는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그 파아란 친구가, 누렇고 창백한 모습을 하고는 나에게 생기를 불어주지 못했을 때. 내가 유일하게 맘껏 누릴 수 있었던 ‘하늘’이라는 권리조차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권리가 되었을 때.

그때 내 마음은 회의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기에. 우울에 짓눌려 아파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노랗지 않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면 온 마음 다해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도 그 자리에서 내 선물이 되어주어 고마워.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

서영은 노래/ 혼자가 아닌 나




커버 사진/ 사랑스러운 구름.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이제 또 슬슬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 슬픕니다 :( 오늘도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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