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를 때가 가장 도전하기 쉽다

by 온정

엄마는 타고난 글쟁이다. 글을 쓰실 때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하실 때도 항상 그녀만의 다채롭고 창의적인 표현력을 자랑하시곤 한다. 엄마와 대화를 하다 보면, ‘우와. 어떻게 그런 표현을 떠올리셨을까.’ 라며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엄마는 그 글솜씨를 문자 메시지나 편지 정도에만 뽐낸다. 글을 제대로 써보시라는 나의 제안에도 “엄만 못써.”라는 말만 반복하신다.

“엄마가 평소에 하는 말들이랑 문자들만 다 모아놓았어도 이미 책 한 권은 나왔겠다.”
봄날의 꽃가루처럼 허공으로 흩어져버리는 엄마의 주옥같은 표현들이 아까워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런 나의 말에 엄마는 대답하셨다.

“본격적으로 ‘써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뭘 쓰려고 하면 막상 아무것도 못쓰겠어. 엄마는 그냥 일상에서 큰 부담 없이 쓸 때가 가장 즐거워. 감자를 캘 때면 땅 위로 올라온 줄기를 잡고 쑤욱 뽑잖아. 그러면 줄기 근처의 큰 감자들은 쉽게 나오는데, 알토란처럼 땅에 깊게 파묻혀있는 작은 감자들이 있단 말이야. 그런 애들은 캐기가 더 어려워. 엄마는 그냥 쉽게 나오는 큰 감자만 캐고 싶지, 굳이 애써서 아래에 있는 감자들까지 억지로 캐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뭔가 제대로 써보자고 힘들게 깊숙한 곳을 캐는 일이 별로 안 내켜.”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도중에도 이렇게나 적절한 비유를 끼워 넣으시는 엄마. 즉석에서 술술 나오는 이 표현들이, 아마 줄기 근처에 달린 큰 감자들이겠지.

“맞아요, 엄마. 내키지 않는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엄마. 근데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엄마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더 어려워진 게 아닐까 싶어.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분야를 깊게 알면 알 수록 더 도전하기가 어려워지는 거.”



어떤 시골 마을 안에 꽤 크고 근사한 우물 하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여자가 그 우물 안에 반지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20년을 살아온 A 씨는, 그 안에 차있는 물의 높이가 족히 10미터는 된다고 알고 있다. 또 6년 전에는 멋모르고 그 안에 빠졌다가 겨우 구조되는 박 씨의 모습도 본 적이 있다. 하물며 한겨울에 양동이를 내려 물을 마셔보면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갑다. 그는 이 우물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반면, 이 근처 마을로 이사온지 이제 겨우 6개월이 지난 B 씨. 그는 이 우물의 깊이도 모를뿐더러 겨울의 우물물이 얼마나 차가운 지도 잘 모른다.

A 씨와 B 씨 모두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지만, A 씨는 절대 그 우물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B 씨는 우물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별로 없기에, ‘목표물’, 그러니까 그녀가 아끼는 반지를 손에 쥘 생각만으로 한껏 무모해진다.



결국 우물 안에 뛰어든 B 씨가 그저 수면에서만 허우적대다가 포기했을지, 물이 깊어도 의지를 가지고 바닥까지 내려가서 반지를 찾았을지, 혹은 막상 본인의 수영실력에 비해 물이 깊지 않아서, 쉽게 반지를 찾고 원하는 바를 성취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우물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물에 대해 A 씨보다 잘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바닥에 가라앉은 반지가 ‘책 출판’이라면, 글에 대해 잘 아는 ‘A 씨’는 우리 엄마일 것이다. 그리고 글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에 무모해질 수 있는 ‘B 씨’는 바로 나다.

도전을 두려워하는 내가 200군데의 출판사에 패기 있게 투고를 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그 결과가 어떻든 “우물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만족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내가 아직 풋내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몸담아온 일로 인정받지 못할 때는 속이 상할 수밖에 없다. 석사를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복사&붙여 넣기로 받았던 수많은 탈락 문장들은 나의 자존심 위에 먼지처럼 쌓여버렸다. 하지만 근 한 달 동안 받았던 수십 개의 거절 메일들은 나를 그토록 아프게 만들지 않았다. 아는 것 없이 뛰어들었음에도 쉽게 반지를 찾는 행운은 드물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나에게 남은 선택권은 하나뿐이다. 목표를 향한 의지를 가지고, 깊이 가라앉은 반지를 찾으려 계속해서 바닥으로 손을 뻗는 것. 수면에서 그저 허우적대다가 포기하는 일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이러한 '풋내기의 무모함'을 최대한 이용해보려고 한다. 세월이 지나고 도전이 두려워지기 전까지. 혹은 도전이 귀찮아지기 전까지 말이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매일 하늘을 올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