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본인의 열정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어느 정도의 환경이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열정과 의지가 강한 편인 나.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환경’을 바꾸지 못해서 지속하지 못한 일들도 많다. 반면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B급 환경이라도 만들고 나니 오히려 A급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기억도 많다.
스무 살이 된 나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지만 카메라가 없었다. 그 당시의 휴대폰 카메라는 지금처럼 좋지도 않았고, 디지털카메라는 애매하게 비쌌다. 더군다나 DSLR이 대유행을 했고, 꽤 많은 지인들이 그 까맣고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다녔다. 나 역시 사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만 카메라에 100만 원을 투자할 용기가 없었더랬다.
‘아직 카메라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100만 원짜리 카메라를 손에 쥔들 그 가치가 있을까?’
일단 사고 나서 돈이 아까운 만큼 열심히 배우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마침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있긴 했지만, 새로 시작하는 일에 과감히 투자하지 못하는 나의 성향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그저 중고 거래 사이트를 자주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최선이었던 그때. 운명처럼 발견한 것이 바로 필름 카메라였다.
MINOLTA X-300, 11만 원. 상태 A급. 서울 종로에서 직거래 원합니다.
아, 이보다 매력적인 제안은 없었다. 비록 DSLR 살 능력은 안되지만 11만 원짜리 카메라를 살 능력은 되었다. 또 이런 형태의 필름 카메라를 디지털의 ‘D’를 빼고 SLR(일안 반사식 카메라)이라 칭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 그러니까 이것이 DSLR의 조상님이라는 뜻이군. 내가 찾던 게 바로 이거다.”
필름 카메라라면 초등학생 때 수학여행을 가면서 써봤던 코닥 일회용 카메라가 전부였다. 하지만 11만 원이라는 가격 앞에서 나는 갑자기 과감해지고 무모해졌다. 무작정 판매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종로로 나가서 그 아이를 손에 안았다. 11만 원짜리 전시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블랙과 실버 색상으로 이루어진 외형. 보일 듯 말 듯 포인트로 박혀있는 빨간색, 노란색 숫자들. 적당히 각진 직사각형 모양. 앞으로 툭 튀어나온 동그란 렌즈. 왼손으로 카메라를 받쳐 들고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셔터 위에 올려놓으니 나 자신이 근사해 보였다. 또 필름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은 괜스레 특별했다. 디지털의 화면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내 사랑 미놀타 X-300/ Sony a5100으로 찍다.
하지만 나는 조리개니, 셔터스피드니, ISO니 하는 수동 카메라의 작동 방법을 전혀 몰랐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필름 끼우는 방법도 몰랐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가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혹시나 필름이 빛에 노출되어 망가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방 불도 모두 꺼놓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첫 필름을 감았다.
셔터를 누르기 전 필름 레버를 감는 ‘따다닥’ 소리가 나의 나의 마음을 콩콩콩 두드렸다. 차알-칵. 어두운 실내라서 사진이 셔터가 닫힌 뒤 아주 느리게 열렸는데, 그만큼 그 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차알-칵. 그렇게 첫 사진을 찍었다. 아직도 선명하다. 초록색 나무가 꽂혀있던 큼직한 화분.
처음 사진을 현상해보니 결과는 비참했다. 거의 모든 피사체가 영혼만 남긴 채 흔들려있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필름을 맡겨놓고 사진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설렜다. DSLR을 샀더라면 절대 느낄 수 없었을 소중한 감정이다. 그 MINOLTA X-300은 여전히 나의 좋은 친구로 남아있다. 내 손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잘 작동한다. 아직도 필름 사진을 잘 찍진 못하지만, 내가 남기고자 하는 피사체를 감성적으로 기록하는 용도로 잘 쓰고 있다.
스무 살의 내가 필름 카메라를 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여전히 조리개나 셔터스피드 같은 개념은 모르고 살았을 것 같다. 또, 무거운 DSLR은 자주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금액에 맞춰 만들어낸 B급 환경이 나에겐 A급 열정을 만들어준 셈이다.
비단 카메라뿐만이 아니다. 난 어려서부터 글 쓰는 일을 좋아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어도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손편지 쓰는 일을 즐겼다. 글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지만, 두서없이 일기를 쓰는 정도가 한계였다.
그러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글을 써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글쓰기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가능하니 이 얼마나 좋은 취미인가. 하지만 막상 공책을 펴고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썼다, 고쳤다를 많이 하다 보니 공책이 지저분해졌다. 고치려고 지우는 과정에서 다음 쓸 문장을 잊어먹곤 했다. 그다음엔 지우개로 지우지 않고 글 위에 찍찍 그어보았다. 왠지 앞 문장과 뒷 문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취준생 때 이력서를 쓰기 위해 샀던 노트북을 3년 만에 꺼냈다. 무려 36만 원에 샀던 싸구려 노트북이라, 켜고 끄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배터리는 30분도 못 가서 무조건 전원을 연결한 채 써야 했다. 그래도 글만 쓸 거니까 괜찮을 거야, 생각했다. 하지만 싸구려 디스플레이는 30분만 쳐다보아도 눈이 시려왔다. 1시간을 넘기고 나면 눈물이 났다. 하아, 이건 아닌데. 그렇다고 노트북을 새로 구입하긴 부담스럽고.... 고민하던 차에 남편의 낡은 태블릿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5년 전 구입했던 소니 태블릿이었다. 당시 그 이가 큰 맘먹고 샀던,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세월은 무시를 못하는지 배터리가 90% 이상 차있어도 전원이 나가고, 잘 멈추었다. 하지만 문득, 그 태블릿으로 글을 쓴다면 적어도 ‘눈이 아파서 눈물이 흐르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탁에 남편은 태블릿에 내 계정을 따로 생성해주었다. 그 계정에는 오로지 글에 관련된 앱만 설치했다. 오래 써도 편안한 눈, 글쓰기에 최적화된 키보드, 가벼운 무게. 무조건 보조배터리 수액을 꽂아줘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글만 쓰는 나에게는 최고의 장비였다. 글 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자 나는 드디어 첫 장편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미뤄왔던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글을 공개할 수 있는 환경까지 갖추자 나는 글쓰기에 더욱 전념하게 되었다.
한창 신혼여행기를 쓸 적에 소니 태블릿/ 필름 카메라 MINOLTA X-300으로 찍다.
‘브런치’가 주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없었다면, 이렇게 꾸준하게 글을 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낡은 소니 태블릿이 없었다면, 난 여전히 글 쓰는 일을 미루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친오빠가 아이패드를 물려준 덕에 현재는 나름 A급 환경이 형성되었지만, 난 여전히 종종 소니 태블릿을 찾는다. 그리고 그 태블릿을 켤 때마다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라고 인사하곤 한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최소 50% 정도는 도구의 덕을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무리 열정이 대단한들 어느 정도의 환경은 갖춰져야 한다는 것. 그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의 사랑스러운 필름 카메라를 볼 때마다, 또 낡은 소니 태블릿을 볼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