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상처

by 온정

어린 시절 단짝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했던 적이 있다. 내가 던지는 시답잖은 농담에도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어주던, 학교가 끝나면 교대로 서로의 집을 데려다주던, 학원 쉬는 시간에 같이 컵라면을 사 먹던,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게 없었던 소녀들. 그랬던 친구들이 한순간에 내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도 괴로웠지만, 내가 그들을 너무나도 사랑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게 대체 언제 적 일이더냐. 그날 이후로 월드컵이 다섯 번이나 열렸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종종 그 친구들을 생각했지만, 성인이 된 뒤엔 고작 1년에 한 번꼴로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더랬다.

‘철없던 그 시절. 나도 많이 어렸었지.’

그 소녀들이 무엇 때문에 날 배신했는지까지도 대략 이해가 될 법한 세월이 지났다. 배신의 상처보다는, 오히려 사이좋았던 시절의 우정이 나의 기억 속에 더욱 진하게 자리 잡은 듯했다.


며칠 전, 이런저런 잡생각에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든 밤이었다. 엉뚱하게도 꿈속에서 그 친구들 중 한 명을 만났다. 차라리 배신을 당하기 전 돈독한 장면이 연출되었다면 좋았으련만. 친구는 날 아프게 했던 그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나타나서는, 아주 차가운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여러 사람들 틈에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기 싸움을 벌였다. 그 친구 앞에서 매번 쪼그라들어있었던 나 자신이 후회스럽기라도 했는지, 꿈에서만큼은 나도 그 친구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비웃고, 공격하고, 또 애써 상처받지 않은 척을 했다.

하지만 그 일을 겪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결국 공황 발작을 일으켰다. 울부짖다가, 이내 숨이 쉬어지지 않아 헐떡거리니 그 소리를 듣고 부모님이 내 방으로 달려오셨다. 그 과정이 얼마나 괴로웠던지. 분명 꿈이었는데도 내 입에서는 실제로 끙끙 소리가 새어 나왔다.

꿈에서 깨고 난 뒤에도 나는 괜히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원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꿈’일 뿐이지만, 그렇다 해도 도무지 이 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하는 생각들이 꿈에 종종 반영되는 편이다. 가령 일 걱정을 하다 잠이 들면 밤새 일하는 꿈을 꾸곤 하고, 시험 기간에는 공부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렇기에 최근 떠올려본 적도 없는 이 친구의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여파가 가시지 않아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꿈이 그 시절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끌어낸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다만 최근 스트레스가 많아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진행 중인 일들이 혹시 틀어질까 봐 갖고 있던 불안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는 듯한 압박감 따위가 나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기에. 아마 뇌의 회로 깊숙한 어딘가에서 유사한 감정을 인지하고는, 그때 그 시절 그 친구를 이끌어낸 것은 아닐까, 하고.

어쩌면 상처란 완벽히 치유할 수는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그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간다는 뜻일지도. 그러니까, 갈수록 찾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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