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면 난 조금 강한 사람이 된다.

나만의 무기

by 온정

대학원생 때였다. 깊숙한 곳, 목구멍과 가까운 어딘가에 사랑니가 용을 쓰고 올라오고 있었다. 삐죽 튀어나온 치아가 볼을 건드려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결국 급한 대로 학교 앞 치과를 찾아갔다.

먼저 엑스레이를 찍은 뒤, 진료받을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이윽고 선생님이 오셔서는 엑스레이 사진을 눈 앞 모니터에 띄워주셨다. 나는 의자에 반쯤 누워서 또렷한 내 하관의 뼈대들을 응시했다. 사랑니가 났다는 사실이야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이어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주셨다.

“저, 여기 좀 보실래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나의 ‘턱’이었다.

“여기 아랫니들이 쭉 있고, 그 밑에 신경이 줄처럼 길게 지나가고 있는 거 보이시죠? 이 아랫니와 신경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요.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로 가깝지가 않거든요. 이 치아들이 아래로 더 내려가면 신경을 건드려서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혹시 평소에 이를 꽉 무는 습관이 있으신가요?”

사랑니를 뽑으러 왔을 뿐인데, 뜬금없이 무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선생님을 나는 끔뻑거리며 쳐다보았다.
“어.... 그래요...? 저, 잘 모르겠어요....”
당황한 나머지 평소 내 습관이 어떤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어버버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덧붙이셨다.
“지금은 괜찮지만, 만약 거리가 더 가까워지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지금은 일단 알아만 두세요. 평소 이 꽉 안 물게 조심하시고요.”

스케일링을 받고 사랑니 뽑을 날짜를 예약한 뒤 치과를 나왔다. 실험실로 향하는 길에 이를 꽉 깨물어보았다. 왠지 그 느낌이 익숙했다. 그런데 내가 정확히 언제 이를 꽉 깨무는 건지, 얼마나 심하게 깨물길래 그 지경이 된 건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실험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나의 습관은 훤히 드러났다.

논문을 보며 집중할 때, 실험이 안 풀릴 때, 약한 팔뚝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화가 나지만 꾹꾹 참을 때, 선배가 나를 괴롭힐 때, 빠른 시간 내에 일을 끝내야 할 때 등등. 그러니까, 잘 살펴보니 나는 거의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맞다. 나 이런 사람이었지.’

나는 약한 사람이었다. 집중력도, 지능도, 체력도, 성질도, 마음도, 순발력도. 모든 것이 약했다. 하지만 그 나약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을 누구보다 싫어했다. 나를 질질 끌고 가는 온갖 힘들에 저항하기 위해, 나는 항상 이를 악물었다. 이는 아무리 꽉 물어도 타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이를 악물며 참고, 견디고, 버텼다.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 여러 방면으로 타고난 약질임에도 남들 몫은 하면서 사는, 지금의 내가 있었다.



치과 선생님의 경고를 들은 뒤부터는 치아에 긴장을 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미 나에게 이를 악무는 일은 마치, 수영 전 필수로 해야 하는 준비 운동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혹은 풍파를 버티기 위해 다지는 코어 근육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매번 나에게 닥쳐오는 시련들을 물리치기 위해 나는 여전히 이를 악, 문다. 그럴 때면 난 조금이나마 강한 사람이 된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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