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역경들이 나를 위로하네

by 온정


“아무리 그래도 군대보단 나아.”

대학생 때 참 많이 듣던 말이다.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복학생들은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주문처럼 저 문장을 외곤 했다. 학교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봐야 군대보단 낫다는 말. 그 주문의 효과가 꽤나 좋은지, 대부분의 복학생들은 1학년 때와는 다르게 학점이 대폭 상승하기도 하고 눈에 띄게 철이 들기도 했다.
군 면제자로 태어나 군대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조차 못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외는 주문의 맥락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아마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해본 사람이 한라산을 오르더라도 비슷한 주문을 외울 것이다.
“한라산을 오르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어. 난 한 때 에베레스트도 올라갔던 사람인 걸!!”

나 역시 마찬가지로 큰 산을 넘은 위대한 과거의 내가, 새로운 산을 오르는 현재의 나를 위로하곤 한다.

중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과거의 역경이 현재를 위로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겪은 시련이래 봤자 친구들과 다투거나, 60점짜리 시험지를 받고 울거나, 오빠랑 장난치다가 문 사이에 발이 끼거나, 계주 때 꼴등을 하고 창피해하던 수준이었을 테니. ‘내가 왕년에 친구들한테 배신을 크게 당해봐서, 이제는 인간관계가 별로 안 힘들어!’라든지, ‘초등학생 때 60점도 맞아봤는데, 모의고사 70점이 뭐 대수냐!’ 따위로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내공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 때는 그냥 계속 아팠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새롭고 큼직한 시련들이 업데이트되었고, 그 휘몰아치는 바람들을 아무런 방패 없이 맞아야 했다. 때문에 나는 종종 넘어졌다. 자서는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시련의 최고점은 고등학생 3년 내내 찍었다. 하루하루 지낼수록, 내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과거의 나는 아직 없었지만, 부모님의 위대한 사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래서 그때 내 삶의 의미는 그저 내가 아닌 부모님이었다. 내가 없으면 부모님이 살지 못하니까, 어찌 됐든 난 살아가야 해. 그런 종류의 책임감을 삶의 이유로 두곤 했다.


그렇게 겨우 고등학생의 삶을 견뎌냈다. 그리고 나니 드디어 내게도 '위대한 과거의 나'라는 존재가 생겼더랬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나는 종종 말했다. “대학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고등학생 시절에 비할 만 못하지. 난 죽어도 그 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맹세코 단 한순간도 고등학생 시절을 그리워해 본 적 없다. 아마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높은 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그래도 대학생활은 견딜 만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를 끌고 와서 현재의 나를 위로했다.

물론 큰 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원 생활을 하며 나는 온갖 최악의 상황들을 겪었다. 그 덕에 또다시 좌절했다.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그토록 암울한 시점에서 또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할 법도 했지만, 다행히도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고등학생 때 너무 처절하게 고뇌한 덕에 성인이 된 후에는 해답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삶은 삶이지 뭐. 이미 세상에 태어난 이상 뭐하러 이유를 찾겠어? 그냥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거지.’
그러니까,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우울하고 괴롭고 짜증 나더라도 삶의 이유 같은 건 파고들지 않게 된 셈이다. 그 덕에 매일 울고 무너지고 망가지고 지지고 볶아도 결국에는 버텨가며 살아갈 수 있었다. 삶에 대한 의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이토록 명백하게 컸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큰 산은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시련은 끝없이 닥쳐오고, 그것을 마주하는 나의 방식은 여전히 어설프기만 하다. 예상치 못한 폭풍을 만나 주저앉을 때의 모습은 고등학생 때와 별반 다를 게 없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는 방식은 큰 산을 하나씩 정복할 때마다 조금씩 성숙해져가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이 그때보다는 낫잖아.’,
‘그때 그런 상황도 참고 버텼잖아. 지금 이 상황도 결국은 다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아마 이런 것들이 세월이 주는 연륜이 아닐까. 백 살의 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시련은 언제나 괴롭고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큰 산을 넘었던 과거의 나를 소환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견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나는 또 한 번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껏 괴로워질 때 쯤 문득 내가 견뎌낸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자, 최고치로 올라갔던 나의 괴로움이 빠르게 하향곡선을 탔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고, 또 그 힘든 일을 이겨낸 나 자신을 떠올림으로써, 현재의 힘든 나 자신을 위로하는 일.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오직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확실한 위로법임은 틀림없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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