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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Jan 08. 2022

두바이 엑스포 케이팝(K-Pop) 콘서트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022년 1월 7일은 참 특별한 날이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랬는데 우선, 이날은 아랍에미리트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일하는 금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십여 년 간 이 나라의 주말은 토요일과 일요일이 아닌 금요일과 토요일이었다(2006년까지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쉬었다고 한다).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해진 요즘 같은 시대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토, 일을 주말로 정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하는 마당에 자기들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일을 하다 보니 시차는 논외로 하더라도 겹치는 근무 시간이 적었을 것이고 그것엔 장점보다 단점이 컸을 터. 그래서 대세를 따라 주말을 획기적으로 토, 일요일로 바꾸기로 했는데 그러다 보니 금요일 오후 1시 15분, 이슬람교 신자들이 참여해야 하는 예배 시간이 걸리네? 그렇다면 더욱 획기적으로 금요일은 오전에만 근무하는 것으로 결정! 탕탕탕(심지어 두바이 옆 샤르자 지역은 더더더욱 획기적으로 금요일까지 포함해 주말을 3일로 만들어 버리기로 탕탕탕).


며칠 후면 우리 가족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이사를 온 지 일 년이 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이 기간 동안 지켜본 이 나라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속을 터지게 만드는, 마치 만만디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을 자주 연출하기도 하지만, 어떤 일들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큰데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판단을 내린 후 초고속으로 진행을 해버리기도 한다. 주말을 바꿔버린 것도 후자의 예가 될 수 있을 텐데 아닌 게 아니라 2021년 12월 초에 2022년 1월 1일부터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주말이라는 메시지가 발표되자 학교와 많은 회사들이 한 달 만에 이 새로운 지침에 따라 진짜로 근무요일을 촤좌좍 바꿔 버린 것이었다. 와우.


그리하여 겨울방학을 마치고 1월 2일, 일요일에 개학 예정이었던 여행이의 학교는 월요일인 1월 3일에 개학을 했고 울 낭군도 같은 날 새해 첫 출근을 했다. 이 도시에서는 학교에도 직장에도 적을 두지 않고 있는 내 입장에서야 솔직히 말해 주말이 바뀌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긴 하다.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한 주의 마지막 날에도 점심 먹고 12시 넘어 하교하던 여행이가 정오 전에 학교를 나서게 되면서 나도 아이를 일찍 데리러 가야 하고 나 혼자였다면 건너뛰거나 대충 해결했을 점심식사를 여행이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잘 챙겨 먹게 되었다는 사실 정도?


여하튼 이런 이유로 어제, 그러니까 평소 같았으면 온 가족이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려도 되었을 금요일 점심시간에 나는 하굣길 여행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습관처럼 틀어두는 라디오에서는 그날도 어김없이 온갖 주제에 대한 대화와 각종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소리들은 내 한쪽 귀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다른 쪽 귀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케이팝(K-Pop)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혔다. 뭐? 케이팝? 코리아? 외국에만 나오면 갑자기 애국자가 되어버리는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요점은 이거였다. 최근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핫하고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 와중에 케이팝 팬들을 위한 콘서트가 두바이 엑스포장에서 열리니 많은 직관 바란다.


두바이 엑스포장 한국관
한국관은 엑스포장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 중 하나다
한국관에서 바라본 엑스포장 야경


두바이 엑스포는 참가국들의 내셔널 데이(national day)를 지정해 각 나라가 자국의 문화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는데 한국의 내셔널 데이인 1월 16일에 엑스포장에 있는 큰 무대에서 케이팝 콘서트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모든 내셔널 데이를 이런 식으로 특별하게 방송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싸이며 선미와 같은 반가운 이름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기뻤다. 이어 한국의 팝 음악과 한국 문화의 팬이라는 이 나라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런데 와, 듣다 보니 격세지감이란 게 바로 이런 거로구나 싶었다. 유창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등장한 젊은 에미라티(아랍에미리트 국민) 한 분은 최근 BTS 덕분에 케이팝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사실 케이팝은 예전부터 있어 왔고 BTS는 3세대 케이팝 아티스트들이라면서 1세대인 HOT와 신화, 2세대인 빅뱅 등을 예로 들며 한국인인 나도 잘 모르는 케이팝의 역사를 줄줄이 풀어 내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내가 대한민국 밖 세상을 처음으로 직접 만났던 것은 1997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여행 또는 거주를 위해 수 차례 비행기에 올랐었지만 한국의 문화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요즘처럼 컸던 적은 없었다. 두바이의 라디오나 쇼핑몰 등에서 한국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닐 정도로 흔하고 내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쓱 나타나 한국에서 왔나요? 내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말을 조금 알아요라면서 그동안 갈고닦았을 문장들을 사용해가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한 번은 여행이와 친구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가서 아이들이 놀러 간 사이, 나 혼자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다들 핸드폰을 열심히 보고 있길래 도대체 뭘 보나 궁금해 살짝 훔쳐보았다. 그런데 웬걸! 열 중에 아홉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식으로 한국의 문화를 접한 이들이 결국 한국이라는 나라의 팬이 되고 덕분에 한국을 떠나 살아가는 나 같은 한국인들까지 알게 모르게 혜택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어찌나 고마운지!


잠시 학교 앞에 주차를 해두고 여행이를 데리고 나와 다시 시동을 켜니 그때까지도 라디오에서는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때 여행이가 너무 재미있는 아저씨라며 열광하던 싸이가 두바이 엑스포장에 온다는 사실에 아이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요즘 오미크론 때문에 두바이를 비롯한 아랍에미리트의 코로나 상황이 심상치 않다. 그래서 있었던 약속도 취소하고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피해 가며 살아가느라 한동안 엑스포장에도 발길을 안 하고 있지만 이번 콘서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셰익스피어가 들으면 무덤에서 일어나 나를 비웃을지는 몰라도 나는 참말로 심각하고 고민을 하고 있단 말이다.


두바이 엑스포 케이팝 콘서트.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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