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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Feb 07. 2022

두바이에서 무산담까지

두바이에서 출발하는 아라비아 반도 육로 여행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지구본이 하나 있었다. 내 머리통보다 조금 더 크던 그것은 보통의 지구본이 그러하듯 살짝 기울어져 있었고 마치 진짜 지구처럼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을 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실제로 나와 내 가족과 나아가서는 지금의 인류가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그 둥근 물건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나는 그것을 종종 살펴보곤 했다.


아빠가 말씀하시길 지구본에 푸른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바다요 갈색이며 녹색으로 표시된 것은 육지라 했다. 내륙지방에 사는 터라 바다 볼 일이 참으로 드물었던 나의 눈에 바다는 너무 넓어서 지구본에 입혀진 푸른 빛깔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거대하던 바다와는 반대로 육지의 면적은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게다가 육지 중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은 충격적일 정도로 작아 아쉬울 지경이었는데 서울이나 바로 옆, 대전도 아닌 충청남도 공주에 살던 어린아이였던 나는, 공주는, 그리고 나의 집은 지구본에 점 하나로라도 표시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더랬다.


동생과 나는 지구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그것을 함께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질릴 즈음이면 한 명이 온 힘을 다해 손으로 지구본을 탁 쳐서 돌리고 나머지 한 명은 눈을 감은 채 빙글빙글 돌아가는 구를 향해 둘째 손가락만이 곧게 펴진 작고 통통한 손을 쭉 내밀었다. 돌아가는 지구본에 처음 가 닿을 땐 늘 손가락을 얼얼하게 만드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잠시 후 통증은 잊혔고 손가락의 저항에 부딪힌 지구본은 회전 속도를 빠르게 줄이다가 곧이어 완전히 도는 것을 멈췄다.


"스...웨...덴? 언니! 언니 스웨덴에 간대!!"


정지되어 있는 지구본 위, 내 둘째 손톱 아래에는 길쭉한 땅덩어리가 있었고 그곳엔 스웨덴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내가 이다음에 스웨덴으로 여행을 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것은 우리 자매가 정한 지구본 여행 놀이의 규칙이었다. 그 낯선 땅들에 나를 보내주마고 약속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눈을 감고 찍은 손가락 끝에서 만난 미지의 나라들은 이미 나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것처럼 생각되었고 그것들의 이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몹시도 설렜다. 언젠가는 그곳에 꼭 가게 될 거야. 언젠가는 꼭.


하도 지구본 여행을 많이 해 안 가게 될 나라보다 언젠가는 꼭 가게 될 나라들이 많았으니 한 번쯤은 오만도 내 손가락 끝에 걸린 적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곳엘 지난 주말에 다녀왔다.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오만까지는 자동차로도 오갈 수 있는 데다 아랍에미리트 하타 국경을 넘어 무스카트(Muscat) 쪽으로 다녀왔던 번째 여행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기에 그로부터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오만 국경을 넘게 것이었다.

 

정식 이름은 오만 술탄국(sultanate of oman)인 이곳은 아라비아 반도 동쪽 끝에 있는 나라로 국토의 80프로가량이 바위산과 사막으로 이루어졌다 했다. 바로 옆 나라인 아랍에미리트처럼 석유 덕분에 부를 누리게 된 산유국이지만 알고 보면 최근에 급부상한 아랍에미리트와는 달리 이미 19세기에 유럽과 인도양 지역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아프리카에도 영토를 가지며 전성기를 누리던 해양 제국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석유로 큰돈을 거머쥐게 된 이후에도 그것을 활용해 온 나라를 현대화시키는 대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는 것을 택했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오만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무스카트에서도 하늘 높이 솟아오른 현대식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병풍처럼 서있는 산자락 아래, 마치 엄마 무릎에 폭 앉아 있는 어린아이처럼 건물들이 안겨 있는 모양새인데 그 규모가 크면 대도시요 규모가 작으면 산골이나 어촌마을인 식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무산담(Musandam)이었다. 아라비아 반도 가장 끝에 있는 무산담 반도는 오만의 다른 영토와는 뚝 떨어져 오로지 아랍에미리트 땅으로만 둘러싸인 신기한 지역이다. 우리가 탄 배를 따라 수 킬로미터를 헤엄치며 점프를 하던 돌고래들, 원래는 흰색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제는 회색이 된 정겨운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현지인들, 햇볕에 잘 구워진 마디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달린 커다란 손을 우리를 향해 흔들던 이들, 산자락 아래 공원에서 맨발로 축구공을 차며 염소들과 함께 뛰어다니던 아이들, 그리고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던 바닷가의 노을까지.


무산담엘 다녀오는 길, 우리 가족은 벌써부터 번째 오만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축제가 마침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진행된다네. 일 년에 딱 한번 진행되는 축제라던데!?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국경을 넘자고 하면 울 낭군이 너무 놀라려나? 그런 신나는 생각을 하며 지금 난, 무산담에서의 추억을 곱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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