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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May 19. 2022

너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어

이탈리아 여행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여행을 앞두고 습관처럼 하는 이 있다. 방문할 장소를 배경으로 쓰였거나 그 지역(또는 나라)에 연고가 있는 이가 쓴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책에서 그려진 곳을 찾아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나와 타인의 시선 차이를 느껴 보는 재미가 있고 후자의 경우 그 지역 사람들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도를 높인 상황에서 그네 삶의 터전을 둘러본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여행에 앞두고도 우리 가족은 몇 권의 책을 골라 잡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필수 코스가 될 것이므로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예술 작품들에 영감을 준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한번 짚어보기 위해 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었고 베네치아에 갈 예정이라는 이유로 시오노 나나미가 쓴  『바다의 도시 이야기』읽었다. 울 낭군도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책들을 몇 권 골라 읽는 눈치였다.


여행이,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가장 어린 여행 메이트인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며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등, 이번 여행에서 만나게 될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기만 했던 그들의 이름이 박힌 위인전을 뽑아 틈틈이 읽는가 하면 무서운 장면들이 자꾸만 나와 읽고 싶지 않다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손으로 들춰보기도 했다. 그걸 본 내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마음으로 어린이용으로 출간된 『베니스의 상인』이며 『오델로』도서관에서 빌려와 슬쩍 내밀어 보기도 했었다. 셰익스피어까지는 나의 과한 욕심이었다는 것이 머지않아 드러났지만 말이다. 여하튼 요는, 우리 가족이 책으로 마음을 무장하고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으며 덕분에 여행은 몇 배나 더 풍요로웠다는 것.


하지만 복병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행이. 조금쯤 예상하긴 했지만 아무리 예습을 하고 갔다 하더라 미술관이며 박물관에서 대 여섯 시간씩을 보내는 게 만 일곱 살 꼬마에겐 과한 일이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는 이미 다녀와 본 곳들이라 다시 안 가도 그만이지만 너한테도 이 멋진 그림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핑계는 있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정작 흥분한 것은 나와 울 낭군. 여행이는, 이후에 약속된, 바깥에서 뛰어노는 시간을 위해 그림이며 조각 감상의 시간 동안 인내에 인내를 거듭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 부부가 번갈아 가며 아이에게 작품 설명을 해주고 못 걷겠다고 할 때면 24킬로그램짜리 아이를 번갈아 안고 업고 다니면서 중간중간 간식 시간까지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 갔던 날이면 여행이의 일기에 꼭 이런 내용이 들어가곤 했다.


"오늘도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OOO미술관은 힘들었다."


오늘, 하굣길 여행이의 가방을 열어 보니 종이가 한 장 들어있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미술전시를 보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길 여행이에게 하니 아이가 묻는다. 자긴 미술관 가는 거 너무 지겨운데 그거 꼭 가야 하는 거냐고. 야심 차게 미술관이며 박물관을 이탈리아 여행루트에 넣었건만 결과적으로는 여행이 마음 속에 있었을 미술에 대한 흥미의 싹을 엄마, 아빠가 싹둑 잘라버린 것은 아닌가. 아이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가만 보자. 가방 안쪽에 저건 또 뭐지? 꺼내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책. 매주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올 수 있는데 여행이가 이번 주에 빌린 가방 가장 안쪽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무얼 선택했을까 궁금해 냉큼 꺼내 보니 이럴 수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뭐지 이건?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탈리아에서 미술관에 데리고 갔던 게 잘한 일이었다는 건가? 그런데 미술 전시에 가기 싫다는 건 또 어떤 의미지?


이제 몇 달 후면 여행이라는 생명체를 낳아 키운 지 꽉 채운 8년이 된다. 매일 지켜봤어도 나는 아직 내 아이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여행이의 책가방을 보고 잠시 이건가 저건가 헷갈리는 저녁,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여행이와 함께 미술관이며 박물관에 가는 것을 포기하긴 힘들 것 같다. 단 다음번엔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 흥분이 돼도 다섯 시간까지는 안 있을게. 지난 여행에선 미안했다, 여행아.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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