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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7. 2020

당근이 아떠요

추억 속 뉴욕의 장난감 가게들


얼마 전 여행이와 둘이 마주 앉아
더 이상 갖고 놀지 않을 장난감을 추리고 그것들을 사진으로 찍고
함께 판매 가격을 정한 후
당근마켓에 올렸다.


다행히 물건은 이틀 만에 다 팔렸고 난생처음 물건을 팔아 '진짜 돈'을 번 여행이는 마지막 장난감이 팔리자 기쁨에 겨워 만세를 불렀다.

여행이는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갖고 싶다고 노래 노래 부르던 새 장난감을 샀다. 몇 달 동안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막상 처분하려고 하면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장난감으로 둔갑하는 게 사실인데 그걸 극복하고 판매할 물건을 추리고 판매 문구며 가격을 정하고 나아가 임신했다는 구매자를 위해 직접 배송까지 하는 등 여러 모로 애를 쓴 우리 집 꼬마를 위해 나는 여행이원하는 장난감을 사기 위해 추가로 필요했던 삼천 원을 쾌척했다.

모든 것이 과거에 비해 흔해진 시대다.


특별히 부유한 집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겠지만, 과거, 소풍날이나 졸업식 등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던 음식들도 이제는 원한다면 매일 먹을 수 있고 고민 끝에 산 물건 하나를 아껴가며 오래오래 쓰는 일도 궁상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나는 여행이에게 사달라는 말만 하면 새 장난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벌인 일이었는데 그로 인해 얻은 것은 우리가 투자한 것보다 훨씬 컸다.


일단 여행이 입에서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라는 말이 나왔고(아그야, 엄마, 아빠 회사에서 일하느라 힘들었다) 제 노력으로 마련한 돈으로 산 장난감이라 그런지 살 때도 그리고 산 이후에도 얼마나 아끼며 잘 갖고 노는지 모른다.


사실 예전부터도 뭘 막무가내로 사달라고 조른 적은 없긴 했지만 당근마켓 이후론 무언가를 사달라고 할 때 제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돈이라는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다.


좋았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장난감 하나 사는 걸 이렇게나 힘든 일로 만들어버리긴 했지만 사실 난, 세상 모든 장난감을 다 갖고 싶다는 여행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결혼을 하고 7년 차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장난감이 좋고 장난감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뉴욕(New York)에 가면
꼭 들르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장난감 매장,
파오 슈왈츠(F.A.O Schwarz)였다.




독일 이민자인 프레드릭 어거스트 오토 슈왈츠에 의해 1862년 메릴랜드 볼티모어에 문을 열었다 후에 뉴욕으로 자리를 옮긴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장난감 가게란다. 사실 토이저러스 뉴욕 매장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파오 슈왈츠의 분위기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다.





북적이는 맨해튼 5번가에 있던 파오 슈왈츠 매장에 들어서면 피터팬의 네버랜드와 같은 환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내 돈 주고 사지는 못할 것 같은, 그리고 산다 해도 우리 집이 성이 아니고서야 장난감님 들어가시면 우리 가족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만 같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비싼 장난감들이 즐비한 그곳. 톰 행크스 주연의 《빅(Big)》에 등장하는 발로 밟는 피아노나 매년 크리스마스를 고대하게 만들었던 《나 홀로 집에(Home Alone)》에 등장했던 어마어마한 공간을 직접 만나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몇 년 전,
어린이들은 물론 나 같은 어른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주던
맨해튼 5번가 파오 슈왈츠 매장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토이저러스도 파산...흑.


미국을 떠나기 전 여행이를 힙시트에 앉힌 채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그곳들에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다시 함께 방문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록펠러센터에 파오 슈왈츠가 재오픈했다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 매장이 제발 우리 가족이 뉴욕에 다시 가게 되는 날까지 운영되고 있기만을 빈다.




그나저나 여행아, 거기에서 뭐 하나라도 사려면 돈 필요한 거 알지? 자자, 당근마켓에 내놓을 안 쓰는 장난감들을 또 추려보자!


-2013년 9월, 미국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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