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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8. 2020

내 생애 가장 더러운 일주일

우리에게는 씻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씻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원래부터 몸을 씻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씻는 것이 인간의 권리로서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지난 2004년의 일이었다.



우리 자매는 폴란드 친구의 초대로 2004년 말부터 2005년 초까지를 폴란드 남부에서 보냈다. 그곳에 위치한 친구의 고향집에서 친구의 가족들과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우리는 폴란드와 체코 국경 근처 보보쇼프(Boboszów)로 스키여행을 떠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유럽 다른 나라들로 유학을 떠난 내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 모국에서 모여 파티나 여행을 하며 회포를 푼다 했다. 이런 의미 깊은 여행에 우리 자매가 초대받은 것이었다.



우리는 보보쇼프의 한 농가에 머물렀다. 그곳은 일행 중 한 명의 별장이었는데 국경 건너 체코의 돌니립카(Dolní Lipka)에 스키를 타러 갈 때면 숙소로 이용하는 곳이라 했다. 스무 명 가량이던 우리 일행은 앞으로의 일주일을 기대하며 신이 날대로 났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다음 순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물을 뜨러 나갔던 아이가 오만상을 찌푸린 채 들어오더니 흥분한 말투로 무언가 말했고 다들 웅성웅성하더니 집주인을 포함한 몇몇이 집 안팎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집안 모든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화장실의 물도 내려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혹시나 해서 정원에 있는 우물에 가봤는데."라고 집주인 아이가 말했다. 아! 우물이 있었구나! 영화에서처럼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려 사용하면 되겠구나, 다행이야라고 생각한 순간, 말이 이어졌다.


"그 속에 죽은 고양이가 있어서 우물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


뭣이라?

이 생을 넘어 전생에 내가 무슨 죄지은 게 있는지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신속하게 규칙을 정하고 팀을 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생수를 사 오는 팀, 복구를 위해 수도를 검사하는 팀, 뒤뜰에 임시 화장실로 사용할 구덩이를 파는 팀. 화장실 팀에 배정된 나는 내 키만한 곡괭이를 들고나가 다른 아이들과 번갈아 가며 얼어붙은 땅을 기약 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힘은 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난데없이 닥친 유쾌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불만을 터뜨리고 싸우는 대신 "이렇게 되었지만 우린 놀러 온 것이니 재미있게 놀자!"라고 말하며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분배해 착착 진행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감사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모자를 쓰고 있으니 다행히 아주 많이 더러워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차 몇 대에 나누어 탄 우리들은 매일 아침 국경 넘어 체코로 가 스키를 타고 오후가 되면 땀에 전 채 다시 폴란드로 돌아와 그때부터 파티를 시작했다. 낮의 땀에 밤의 땀이 더해지고 다음 날이면 그 위에 새로운 아침의 땀과 밤의 땀이 더해지는 식이었다. 몹시 즐거웠지만 우리들의 꼬락서니는 점점 사람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깨끗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 걸까? 점점 더러워져가는 우리는 점점 더 신나게 놀고 있었다.


루베우스 해그리드. 독일인 순례자의 깨끗한 버전


안 씻은 지 5일째 되는 날 저녁, 밖에 나갔던 아이들이 냄새가 몹시 고약한 아저씨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독일인이라는 그는 걸어서 유럽을 순례 중이라 했는데 머리 스타일이며 꾀죄죄하게 낡은 옷까지 딱 해리포터의 해그리드 같았다. 우리와 보드카 몇 잔을 기울이다가 하룻밤 지내고 가라는 초대를 거절하고 폴란드의 겨울밤 속으로 다시 걸어 나가는 그를 본 순간 왜인지는 몰라도 '내일 반드시 샤워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솟았다. 같은 마음임을 확인한 우리 자매는 오랜만에 상쾌한 마음으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씻겠다는 결심을 했더니 마치 벌써 씻은 것만 같았다.


다들 이 상황을 견디고 있는데 유난 떨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우리 자매는 다음 날 아침에도 여느 날처럼 일행들과 함께 체코로 향했다. 그리곤 스키장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다른 아이들이 스키를 타러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근처에 있는 호텔로 달려갔다. 너무 더러워 보이면 안 되므로 모자를 꾹 눌러쓴 채 잠깐 샤워만 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두세 군데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동네여서 이번에까지 거절당하면 샤워는 물 건너간다. 그리하여 '샤워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태도로 찾아간 마지막 호텔에서 우리는 기적적으로 예스라는 대답을 얻어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수도꼭지 잡고 울 뻔했다.


그날 저녁 살펴보니 몰라보게 깨끗해진 사람은 우리 자매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구나 싶어 웃기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물 한 방을 안 나오는 허허벌판 위 농가에서 스무 명의 아이들과 생수통의 물을 나누어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작은 컵 한 잔에 든 물을 아껴가며 이빨을 닦고 엉덩이가 떨어져 나갈 듯한 추위 속에서 볼일을 해결해가며 보냈던 일주일의 기억. 대부분의 일들이 뒤돌아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이 기억은 특히나 더 (더럽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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