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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8. 2020

꼬마 사람, 교통안전을 지켜줘!

베를린 암펠만 이야기


베를린(Berlin)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자정 즈음 프랑크푸르트 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던 열차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느릿느릿 모습을 나타낸 탓이었다.


그 밤에 나처럼 베를린행 열차를 기다리던 이를 만나 불평도 해보고 베를린에 대한 기대도 나누고 지난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하느라 심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지만 베를린으로 이주해 테크노 음악 만드는 일을 한다는 그와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기차가 도착하자마자 헤어져 각자 뒤늦은 잠을 청했다.






베를린에서 지내는 며칠 내내 놀라울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여기가 독일 북부인지 스페인 남부인지 헷갈릴 정도로 햇살이 따스했다.


베를리너들과, 잠시라도 베를리너가 되고 싶었던 나 같은 방문자들이 그 햇살 아래로 쏟아져 나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세계의 디자인 허브로 성장하고 있다는 베를린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관심 있었던 브랜드에 연락을 취해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만남을 갖기도 하고 친구의 소개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화가와 조각가, 사진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며 소위 예술하는 사람들이 왜 이 도시로 모여드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암펠만(Ampelmann)은
베를린에 다녀온 지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도시를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다.



암펠만의 아버지, 칼 페글라우


독일이 아직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있을 당시 동독의 교통인지심리학자, 칼 페글라우(Karl Peglau)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받게 된다.


아이들이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니 이를 해결할 방법을 제안하시오.


고민을 하던 학자는 교통신호가 눈길을 끌만큼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신호등을 잘 쳐다보지 않고 결과적으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귀엽게 생긴 캐릭터 두 개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은
슈테어(Steher/ 서있는 사람)와 게어(Geher/ 걸어가는 사람).
함께는 암펠만(Ampelmann/
신호등 사람)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의 예상대로 이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아이들의 수가 줄었고 암펠만은 티브이 교통안전 만화의 주인공 자리까지 꿰차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독일 통일 이후 대부분의 구동독발 디자인이 철거되면서 암펠만도 영원히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다행히 구서독 출신의 디자이너, 마르쿠스 헥하우젠(Markus Heckhausen)이 이를 막기 위해 나섰다. 그는 『꼬마 암펠만 아저씨에 관한 책(Das Buch vom Ampelmännchen)』을 발간했고 이 책 덕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했던 암펠만은 1999년, 극적으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디자인 상품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베를린을 방문하는 동안 암펠만 본사와 샵, 그리고 암펠만 레스토랑을 방문해 이 귀여운 꼬마 신호등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잊고 싶은 과거로부터의 유물이라고 무조건 없애버리지 않고
지켜낼 것은 지켜내는 암펠만의 이야기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작지만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베를린의 대표 캐릭터, 암펠만. 우리의 암펠만은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부러운 이름이다.


-2008년 7월, 독일 베를린-


◇ 여행팁 ◇

● 암펠만 숍(AMPELMANN shop in the Hackescher Markt)
주소: Hackesche Höfe, Rosenthaler Str. 40-41, 10178 Berlin, Germany

● 암펠만 공식 웹페이지
https://www.ampelmann.d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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