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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28. 2022

트빌리시에서 우리는, 도서관에 갔습니다

조지아 트빌리시 <조지아 국립 의회도서관>

"$#%^$&#ㅗㅇ^%@&&*#$^&ㅇㅎdFYAD#&^H!"


모르겠다. 어쩜 이렇게 단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지? 뭐라는 거야, 도대체.


트빌리시(თბილისი, Tbilisi)의 상쾌한 가을 공기를 마시며 호텔을 나선 우리는 아침을 여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이십 여 분을 걸은 끝에 이제 막 조지아 국립 의회도서관(National Parliamentary Library of Georgia)에 도착한 참이다. 이번이 첫 방문은 아니었다. 바로 전날에도 같은 장소엘 찾아왔으니. 그런데 도서관 웹페이지에도 구글맵에도 휴일이라는 말은 없었건만 도서관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문을 밀어도 보고 당겨도 보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우릴 향해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도로 건너편에서부터 내 얼굴과 움직이지 않는 문을 번갈아 보던 그분은 길을 대각선으로 건너 곧장 나에게로 오더니 나보다 더 당황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세상에! 오늘은 선거일이라 도서관이 문을 닫는데 내가 깜빡하고 말았네요! 이렇게나 자주 오는데 그걸 잊어버리다니!"


어쩐지... 트빌리시 공항 대로변부터 시내 곳곳의 크고 작은 골목에 이르기까지 마치 우리네 선거용 벽보를 연상시키는 포스터들이 붙어있길래 혹시 선거철인가 싶긴 했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2박 3일 길지도 않은 우리의 여행 기간 동안 선거일이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미처 숨기지 못한 실망감이 얼굴에 드러났던가 보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오늘은 도서관은 물론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았지만 내일은 다시 열 거라고, 그래서 자기도 내일 다시 도서관에 올 것이니 당신도 그리 하면 된다고 위로해 주시고는 책으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 사라졌다. 땅바닥에 질질 끌지도 않고 용케도 저걸 들고 오셨구나 싶을 정도로 무거워 보이는 가방이었다.


짧은 일정으로 찾아왔지만 나는 트빌리시의 도서관에 꼭 가보고 싶었다. 코카서스 지방에서 처음으로 영어 서적을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서점에도 가기 위해 위치를 확인해두었고 혹시나 책과 관련한 행사를 하는 곳이 있는 지도 알아보았다. 인터넷에서는 영어로 된 정보를 찾기 어려워 두바이 엑스포장의 조지아관에까지 찾아가 정보를 물어봤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고 어찌어찌 찾아낸 조지아 대사관 이메일로도 연락을 취했지만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내가 이렇게 유난을 떤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유네스코는 매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이해 하나의 도시를 세계 책의 수도(UNESCO World Book Capital)로 선정한다. 애초에 책과 관련한 이력이 있는 곳이 선정된다지만 세계 책의 수도로 뽑힌 도시는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은 특히나 더, 책과 책을 읽는 행위를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런데 2021년의 수도가 트빌리시라는 소식을 듣고는 마침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두바이에서 직항으로 3시간 30분 남짓이면 가닿을 수 있는 그곳에 가보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조지아는 자신의 문자와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나라다. 트빌리시 국제공항의 정식 명칭은 쇼타 루스타벨리 트빌리시 국제공항(Shota Rustaveli Tbilisi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조지아의 민족 시인으로 추앙받는 쇼타 루스타벨리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자국의 관문과도 같은 공항을 작가의 이름을 따 지을 정도로 이 나라 사람들의 문학 사랑은 크다 했다. 게다가 전 세계 인구 중에서 약 6~700만 명만이 사용한다는 조지아어도 실은 무려 2000년 가까이 사용되어 온 언어라 한다. 이토록 역사 깊은 문자로 빚어낸 이야기들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바탕으로 꽃 핀 문화를 오늘날의 조지아 인들은 어떻게 즐기며 살아가는지, 나는 그것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방문에서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선 조지아 국립 의회도서관 입구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다니. 군복처럼도 보이는 제복을 입고 도서관 입구 네모난 탁자 너머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우리 가족이 나타나자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잠시 눈을 뗀 후 흉악범이라도 당장 때려잡을 수 있을 법한 매서운 눈빛으로 무언가를 빠르게 말씀하셨다. 너무 유창한 조지아어로 말씀하셔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우리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나의 직감이 맞다면 아저씨는 이런 이야길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당신들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


도서관보다는 다른 곳에 마음이 더 가 있는 아이를 설득해서 여기까지 간신히 데리고 왔는데! 같은 곳엘 이틀 연속으로 데리고 오는 길은 정말이지 호락호락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는지 구글 번역기까지 꺼내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하는 나의 간절함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는 핸드폰에서 눈을 제대로 떼지고 않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 따름이었다. 지어진 이래 단 한 번도 리모델링을 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구소련 스타일 인테리어에 불빛까지 어두침침해 으스스한 느낌마저 풍기는 도서관 로비 한구석에 배경보다 더 으스스한 표정을 한 아저씨가 총질 소리 요란한 드라마인지 영화인지를 보면서 손가락으로는 나가는 문을 가리키고 있다. 거기에다 대고 이보시오, 공공도서관이라던데 왜 들어가면 안 되는지 거, 이유나 좀 압시다라는 말을 건네는 데도 용기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결국 목표한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영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천사 같은 청년이 나타나 통역을 자처해 주신 덕분에 옆 건물에서 도서관 이용증을 발급받아 오면 입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난관이 또 있기는 했다. 막상 옆 건물로 가보니 그곳에서는 책을 빌릴 게 아니라면 이용증이 필요 없다면서 다시 돌아가서 들여보내 달라고 하라 하고 예상대로 아저씨는 어떤 이유로라도 이용증 없이는 절대 안 된다고 버티는 바람에 가을바람 쌀쌀한 트빌리시가 덥게 느껴질 정도로 두 건물 사이를 달음박질쳐 오가야만 했다.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지만 아까의 그 청년이 다시 한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덕분에 영원히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도서관 열람실의 문이 결국 열리긴 했다. 역시 천사는 어디에나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도서관에는 직원들 이외엔 우리 가족을 포함한 서 너 명의 방문객뿐이었다. 나는 인내심의 한계에 봉착한 것 같은 아이에게 할 수 없이 핸드폰을 쥐어 주고 그토록 하고 싶다고 며칠을 졸라대던 소닉 게임을 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리고는 급한 발걸음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렵게 들어온 곳이라 모든 것이 더 귀하게 느껴졌던 걸까? 크고 작은 열람실들과 그곳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보고도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인 책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만족스러웠다.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곳은 신문을 모아놓은 작은 열람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었지만 영어를 하지 못하는 직원분이 조지아어를 하지 못하는 나에게 긴 설명을 하기 힘들어 그냥 들어와도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열람실에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계셨는데 그분은 낡은 신문을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다가 중간중간 그 옆에 놓인 작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계셨다. 저분은 어떤 이유로 백 년도 더 전의 신문을 읽고 계신 걸까?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옮겨 적고 계신 걸까?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는 그 행동에도 장소의 마법이 작용했던 것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빨려 들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잠깐, 무려 19세기의 날짜가 찍혀 있는, 조지아어로 인쇄된 오래된 신문들을 살펴보는 일을 내가 감히 평범하다고 해도 될까?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곳은 신문을 모아놓은 작은 열람실이다.

우리가 트빌리시에서 보낸 시간이 워낙 짧았던 것도 이유였겠지만 팬데믹 때문인지 조지아 국립 의회도서관에서도 그리고 트빌리시의 그 어느 곳에서도 유네스코 세계 책의 수도로서의 모습을 만날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듯한 방문 덕분에 나에게는 그루지야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와의 전쟁 중에 폐허가 된 모습으로 익숙했던 이 나라에 대한 인상이 조금은 바뀐 것 같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의 예고편만 보고 정작 실제 영화는 보지 못하고 되돌아 나온 것만 같았던 방문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다시 가야지. 트빌리시에 다시 가야지. 다음번에 가서는 조금 더 느긋하게 이 도서관을 살펴보고 오래된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책도 읽고 와야지.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번 방문에서는 코로나고 뭐고 우리 곁에서 다 사라져 버려서 지금은 외롭게 텅 비어 있는 이 오래된 도서관의 넓디넓은 홀에 낭창하게 울려 퍼지는 조지아어 낭독을 좇아 그것을 쓴 작가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빌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결국 목표한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보고도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인 책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만족스러웠다.



조지아 국립 의회도서관(National Parliamentary Library of Georgia)

주소: 7 Lado Gudiashvili St, Tbilisi, Georgia

웹페이지: https://www.nplg.gov.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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