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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8. 2020

시칠리아에서 딱 하루만 지내야 한다면

모파상의 발자취를 따라서



어떤 사람이 시칠리아에서 하루만 지내야 한다면, 그리고 "여기서 무엇을 구경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에게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타오르미나요."




그린비 출판사의 <작가가 사랑한 도시> 시리즈는 울낭군과 데이트하던 시절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책이다.


이 매력적인 이름의 시리즈『플로베르의 나일강』, 『뒤마의 볼가강』, 『폴 아당의 리우 데 자네이루』와 같이, 작가들이 쓴 기행문을 소책자로 묶은 것이었다. 시리즈 전체를 다 선물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모두 보유한 책방을 찾지 못해 퇴근 후 난 코엑스의 책방에서 몇 권을 사고 광화문으로 건너가 그곳의 또 다른 책방에서 나머지를 구매한 후 이번에는 여의도로 넘어가 저녁 늦게서야 울낭군을 만나 어렵사리 준비한 시리즈를 완전체로 건넬 수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의미 있는 시리즈인 터라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우린 늘 이 책들을 이고 지고 다녔다. 지금도 안방 책장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 주고 가끔씩 들춰보곤 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자주 꺼내보게 되는 것은 단연 『모파상의 시칠리아』다.




『여자의 일생』, 「목걸이」 등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치료를 위해 유럽과 북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은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는지 자살 시도 후 모파상은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도, 남겨진 독자들도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파상의 시칠리아』는
모파상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행기다.


책 앞부분에 모파상이 실제로 여행한 루트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그것을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 부부가 여행했던 곳들과도 많이 겹쳐진다. 모파상이 시칠리아를 여행한 것은 1889년의 일이고 우린 2012년에 그곳을 방문했었으니 아마도 작가가 본 시칠리아와 우리가 본 그것이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감동시킨 이야기들의 저자와 내가 같은 땅을 밟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가슴은 이미 두근 반 세근 반이다.

시칠리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민족의 지배를 받아왔고 그로 인해 서로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가 섞여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온 이다. 파리의 현대성에 질려 시칠리아로 떠난 모파상은 지중해에서 가장 큰 이 섬에서 그가 살던 시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술성을 발견했다 한다. 그리고 모파상의 여행기에는 이러한 그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었다.




모파상은
시칠리아에서 단 한 곳만 방문한다면
어딜 가겠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타오르미나를 택했다.


그랬던 그가 타오르미나(Taormina)에 남아 있는 유적 중 가장 정성을 들여 묘사한 곳이 다름 아닌 타오르미나 원형극장(Teatro Antico di Taormina/ Taormina Amphitheater)이었기에 우리 부부도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리스 시대에 지어졌던 원형극장의 토대 위에 로마 시대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공간은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크지는 않다. 하지만 바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견뎌온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은 이 극장에 들어서는 이들은 숨 막히는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발아래로는 이오니아 해(Ionian Sean)가 내려다보이고 배경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큰 활화산인 에트나 산(Mount Etna) 펼쳐지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방문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타오르미나 원형극장의
오래된 돌계단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 보고
에트나 화산을 바라보았다


활화산이라더니 과연! 에트나는 믿을 수 없게도 아직까지 뭉게뭉게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나의 뒷모습을 울낭군이 사진으로 남겼고 그 사진은 한동안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우리가 다시 시칠리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타오르미나 원형극장에 오르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셋이 된 우리 가족이 원형극장의 오래된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이오니아해와 에트나산을 바라보고 싶다. 그런 날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도대체, 오늘날 이와 같은 풍경들을 만들 줄 아는 민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중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 극장과 같은 공공건물을 건축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까? 이 사람들, 옛날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혼과 눈을 지녔다. 그들의 정맥 속에는 그들의 피와 함께 지금은 사라진 무언가가, 즉 미를 사랑하고 감탄하는 열정이 흐르고 있었다.



-2012년 9월, 이탈리아 타오르미나-


◇ 여행팁 ◇

● 타오르미나 원형극장(Teatro Antico di Taormina)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원형극장으로 이오니아해와 에트나산이 바라다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타오르미나를 방문하는 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
주소: Via del Teatro Greco, 1, 98039 Taormina M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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