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적인 금요일

by 여행하는가족

금요일 오후

금요일마다 아이는 정오 즈음 하교를 한다. 평소보다 세 시간 일찍 학교에서의 일과가 끝나는 날이기도 하고 일주일 간의 나름 고된 어린이의 사회생활을 마무리 짓는 날이기도 하니 나는 너 수고 많았다, 어깨 툭툭 의미로 플레이 데이트* 계획해 주곤 한다. 이번 주에도 같은 반 친구 두 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들은 둘러앉아 팽이 수 십 개를 경쟁하듯 돌리더니(몇 개 고장남) 곧이어 피아노를 열어젖혀 셋이 동시에 건반이 부서져라 두드리고선(진짜 부서지는 줄 알았다...) 간식을 먹은 후 수영장으로 달려 나갔다.


*플레이 데이트: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


잠시 타악기로 변신한 우리 집 피아노와의 정다운 시간. 소리가 안 들리니 참 평화로워 보이네


내 아이가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지 친구들도 대부분 운동을 즐기는 아이들이다. 입고 간 옷을 수영장 옆 선베드에 벗어던진 아이들은 쑥덕쑥덕 한참 뭐라 뭐라 의논을 하더니 경기를 시작했다. 자유형으로 수영장 끝까지 갔다가 배영으로 돌아오고 평영으로 다시 끝까지 헤엄쳐 갔다가 마지막으로 접영으로 되돌아오는 순서였다. 친구 한 명은 학교 수영 대표팀의 에이스 선수고 아이는 수영 대표팀의 대기 선수, 그리고 다른 한 친구는 나머지 둘 보다는 수영에 뜻이 없는 친구였는데 아이들은 경기는 공정해야 한다더니 가장 느린 아이가 먼저 출발하고 5초 후에 우리 집 꼬마가, 그리고 또다시 5초 후에 에이스 선수 친구가 출발하는 식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중간에 실수로라도 반칙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냉정하게 너는 결격사유로 인해 꼴찌라고 선언한다. 그러면 그것에 해당되는 아이는 너무나도 쿨하게 오케이, 이번 경기는 내가 반칙했으니 꼴찌야,라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물에서 첨벙거리고 서로를 향해 공을 던지고 하는 모습이 멀리에서 보면 과격해 보이기도 하지만,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실은 합의된 규칙을 따라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하고 신나게 놀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흡사 두바이 전지훈련


수영장에서 두 어 시간을 놀다가 한 친구가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남은 아이 둘은 해변으로 내달린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두 살 많은 형아들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서로 통성명을 하면서 "Where are you from(너 어디에서 왔니)?"이라고 묻고 답한다. 참으로 두바이적인 풍경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는 이 지역 토박이인 에미라티가 아닌,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나라다. 게다가 두바이는 특히나 더 국제적인 도시이니 어디에서든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인간군상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인 까닭이다. 한국 아이 한 명, 영국 아이 두 명, 이집트 아이 한 명으로 시작된 경기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이탈리아 아이 두 명과 러시아 아이 두 명, 그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아이 한 명이 합세해 순식간에 꽤나 다국적 팀이 꾸려졌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제일 큰 아이는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고 가장 어린아이는 다섯 살 정도인 것 같다. 볼 때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실은 나이도 국적도 인종도 종교도 상관하지 않고 아이들은 어울려 잘 논다는 것이다. 가만히 엿들어 보니 가장 어린 꼬마가 정말로 아무말대잔치 같은 주장을 해도 가장 큰 형아들까지도 그 말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귀 기울여 듣고 있다. 그런 풍경은 가끔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이만 먹은 어른들에게 대견함을 넘어 존경하는 마음까지 피어오르게 만든다.


축구공 하나로 금세 다국적 축구팀이 창단되었다


두바이적인 금요일

바닷가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세 시간이 흘렀다. 뜨거웠던 한낮의 태양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고 놀러 왔던 같은 반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아이는 아직도 동네 친구들과 공을 차고 있다. 언젠가부터 아저씨 두 명이 자진해서 심판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어 제법 그럴듯하다. 충분히 논 것 같아서 이제 그만 놀고 집으로 들어가자라고 말하려다가 벌렸던 입을 조용히 다시 닫았다. 노는 데 충분한 것은 없고 오늘은 금요일인 데다 두바이에서의 이런 삶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다시 한국으로, 서울로 돌아가면 빠르게 돌아가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 바쁜 삶도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지만 내년 이맘때쯤 나는 분명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의 느긋한 삶이 그리워질 것 같다. 햇볕에 잘 그을려진 우리 아이의 갈색 얼굴과 몸, 그리고 해변을 바쁘게 내달리던 발까지도.


보태기)

축구하는 아이들 곁에서 경기 구경을 하다, 책을 읽다 하고 있는데 낯선 여자가 다가오더니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쑥 내밀었다. 화면에는 구글번역기가 켜 있었고 그곳엔 영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You have a very beautiful dress!"


기대하지 않았던 이런 선물까지 선사하는 나의 두바이를 내가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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