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는 생생하게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점차 흐릿해져 가는 그 시간 속에서 늘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검은색 영창피아노다. 엄마는 우리 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그것을 가끔 연주하셨다. 뒤돌아 보면 그저 평범한 실력일 뿐이었지만 당시의 나에게 있어 엄마의 손놀림은, 나로서는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있는 무언가로 다가왔다. 나와 동생의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는 피아노 의자를 앞으로 쭉 빼고 그 위에 케이크를 올려두고는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배경에 늘 검은색 영창피아노가 멋지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와 동생. 생일날 한복까지 곱게 차려입고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피아노가 무생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그즈음 출시된 전자피아노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우리 집을 떠나던 날, 나는 내가 그동안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영창이는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트럭에 실려 있었다. 그 장면이 눈에 들어온 순간, 우리 가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그것은 무생물이 아닌, 펄떡이는 심장을 지닌 가족이었다. 눈처럼 새하얀 새 전자피아노를 갖게 된다는 기쁨보다 정든 영창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퍼 나는 트럭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재회
사람도 물건도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다는 것을, 혹여나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헤어짐이 영영 이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덜 울어가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두바이로 이사를 오면서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타던 자동차를 국제 이삿짐에 실었다. 컨테이너 하나를 사비로 빌려야 했지만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추가 금액을 내더라도 가져가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물류난 때문에 헤어진 지 장장 두 달 여 만에야 우리는 그리운 자동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 차를 몰기 위해서는 해당 차량을 가지고 두바이 도로교통국(RTA: The Road and Transport Authority)의 연계기관인 TASJEEL이라는 곳에 방문해 상태를 검사하고 보험에 가입하고 자동차를 등록한 후 두바이 번호판을 받아야 했다. 회사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해 나와 아이가 항구에서부터 배달되어 오는 우리의 자동차를 맞이해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한국에는 이제 봄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두바이는 벌써 여름 날씨였다. 주차장에서 우리의 차를 실은 트럭을 기다리는데 쏟아지는 햇살에 얼굴이 따갑고 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저 멀리로는 어느새 익숙해진 버즈알아랍이 보였다.
우리의 자동차를 실은 트럭은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화가 날 법도 했지만 익숙한 차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먼 길 떠났던 자식이 품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안쓰럽고 장하고 반갑고 기쁘고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것을 타고 조금만 운전을 하면 내 부모의 집에 도착해 엄마가 지어주신 따뜻한 밥을 먹고 아빠가 꺼내 주신 이불 덮고 낮잠도 달게 잘 수 있었는데 두바이에서는 그게 안 되겠구나,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도시에서는 내가 엄마로구나 라는 생각에 울보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리움은 행복으로부터
이게 벌써 2년 전 일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같은 자동차를 몰고 다시 한번 TASJEEL에 다녀왔다. 두바이에서는 자동차를 등록한 이후에도 일 년마다 재등록을 해야 한다. 앞으로의 일 년 동안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상태인지 검사하고 그것을 통과하면 또다시 일 년 간 유효한 등록증을 발급해 준다. 이 과정에서 검사비로 170 디르함(한화 약 63,000원)을 내고 등록비로 380 디르함(한화 약 140,000원)을 납부해야 하는데 이걸 매년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내기 싫은 마음도 드는 게 사실. 그렇지만 그래도 이런 제도 덕분에 도로 위를 달리는 무기들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돈 아깝다는 생각이 쏙 들어가기도 한다.
간단하게 재등록을 마쳤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몇 가지 난관이 있었다. 검사 결과 타이어를 갈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급하게 큰돈을 써가며 타이어 네 개를 모두 교체하고 오늘 아침 같은 곳을 다시 방문하여 재검사를 받았다. 재검사비(검사를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하면 필요한 부분을 정비하고 재검사를 의뢰한 후 70 디르함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까지 내고 이번에는 재등록비를 내려고 했더니 납부하지 않은 교통범칙금이 있으니 그것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액과 발급처를 살펴보니 얼마 전에 납부한 것과 같길래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너무나도 친절한 말투로 본인은 모르겠으니 저기 저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란다. 그렇게 같은 사무실 세 명의 직원을 거쳐 나는 결국 그곳의 매니저까지 만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나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직원으로부터 분명히 매니저에게 말하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건만 "이미 지불한 교통범칙금이 미납으로 남아 있다."는 나의 말에 "So?(그래서요)?"라는 대답을 하는 그를 보고 잠시 아, 여기 두바이였지 라는 생각에 화가 날 뻔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침착하게 아, 여기 두바이였지라고 마음을 가다듬고 "두 번 낼 수는 없으니 상황을 해결해 달라."라고 요청하니 또 흔쾌히 자기 사무실로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난관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새로운 자동차 등록증을 받아 쥐고 돌아 나오는 길. 그 네모난 플라스틱 카드에 적힌 새로운 유효기간을 살펴보니 2024년 4월 O일. 이미 우리 가족이 두바이를 떠나고 난 이후일 날짜가 적혀 있다. 그즈음 우리는 서울의 생활에 다시금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테지. 4년 만에 정주를 위해 돌아가는 서울은 또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을 것이고 우리는 어쩌면 그 도시의 리듬에 바쁘게 적응해 나가는 짬짬이 느리디 느린 이곳에서의 삶의 리듬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두바이에서의 시간도 이제 일 년이 남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리워할 것들을 더 많이 많이 만들 것이다. 그리움, 어쩌면 그것은 행복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