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모퉁이만 돌면

by 여행하는가족

어느덧 2년 하고도 반

"Ma'am.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좋은 집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내 번호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해 전화를 걸어온 것인지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외려, 핸드폰 번호가 공공재에 가까운 것은 한국에서나 아랍에미리트에서나 마찬가지인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나저나 좋은 집이라니, 바다가 보이는 위치라니, 구미가 확 당기긴 했지만 지금 나는 여윳돈이 한 푼도 없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안타깝지만 지금 전화기 반대편에 있는 남자는 사람을 잘못 고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일하는 그대, 시간이라도 아껴주마는 마음으로 제깍 입을 열었다. 제안은 고맙지만 나는 곧 이 도시를 떠날 예정이라 집을 살 수가 없다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상대방은 의외로 싱겁게 오케이 마담, 그럼 좋은 하루 보내라며 통화를 마친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문득, 내가 두바이에서 오래 살긴 살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사라는 전화까지 받을 정도로?


그래. 짧다면 짧을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3년을 계획하고 도착한 이 도시에서의 삶이 내일모레면 2년 반을 넘기는 시점에 다다랐으니 말이다. 두바이 바닷가의 좋은 집을 팔아보고자 시도했던 이가 전화를 끊고 난 , 나는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와 남국을 여행할 때만 볼 수 있었던 탐스러운 꽃을 함빡 머금은 나무들, 그 사이로는 아라비아풍 건물들과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이웃하며 서있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엔 자동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지만 다행히 서울에서만큼은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아 스트레스 없이 운전대를 잡을 때가 많았었지. 내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와 코끝이 찡해진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남편의 회사와 아이의 학교를 잇는 20km에 이르는 길을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이동하는 중이다. 그뿐 아니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이 커 그간 하나의 루트만 고집해오지 않은 덕분에 혹여 길을 잘못 든대도 다시금 대체 루트를 찾아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한때는 낯설었던 도시에서 어느새 나는.


나의 부캐는 운전기사

하긴... 도로에 투자한 시간이 많기는 했다. 지난 이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의 부캐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운전기사였으니까. 물론 두바이에도 버스나 메트로와 같은 대중교통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노선이 촘촘하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더위를 뚫고 대중교통을 타러 가는 길이 너무나도 고된 까닭에 스스로 운전대를 잡는 이들이 많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의 주요 임무는 스쿨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그러니까 이 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등하굣길은 물론, 아이의 하교 후 스케줄에 따라 두바이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었다. 가끔은 출근하는 남편을 회사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고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혼자서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도 했다. 다행히 운전을 즐기는 터라 지난 2년 반 동안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중동의 뉴욕이라 불리는 이 도시를 탐험해 왔다. 그리고 이제, 나의 여정은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요즘의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동차를 몰고 살아가지만 내가 운전면허를 손에 쥔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는 서울에서는 자동차 없이도 삶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으니 운전면허를 따고 직접 차를 몰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미국으로의 이사를 앞둔 어느 날, 나라에서 운전을 하지 않으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제야 부랴부랴 운전대를 잡을 준비를 마친 나는 일주일 짜리 도로주행 레슨을 겨우 마친 후 워싱턴 DC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서 초보운전 딱지를 뗐다.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운전하는 즐거움에 자리를 내 준 이후, 나는 더욱 기쁜 마음으로 내가 살던 도시를 탐험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곳을 떠난 한참 후까지도 마음에 남아, 가끔 미국이 그리운 날이면 나는 서울의 도로 위를 달리면서도 우리가 살던 펜타곤 근처의 아파트에서 출발해 남편이 공부하던 학교로, 애난데일의 한국마트로, 혹은 내가 자원봉사를 다니던 워싱턴 DC 도심의 건물로 향하는 중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때로는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풍경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리움 세포를 건드린 탓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의 두바이

내년 이맘때쯤의 나는 서울의 하늘 아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두바이의 익숙한 거리를 자동차로 누비는 상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앞 도로를 빠져나와 양쪽으로는 커다란 야자수들과 하늘의 별빛을 닮은 작은 전구들이 반짝이는 가로등의 무리가 늘어선 길을 지나고 이어 좌측으로 꺾어지는 도로로 접어든 후 신호등 네댓 개만 무사히 지나면 곧 오른쪽으로 꺾이는 좁은 도로가 나타날 거야. 좌측으로는 우뚝 솟은 버즈 알 아랍이 눈에 들어오고 이제부터는 에미라티들이 모여 사는 주택가가 펼쳐지겠지. 그러고 난 후에는... 상상 속을 달리던 나는 문득 두바이가 그리워져 정말로 눈물을 훌쩍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자동차는 목적지인 아이의 학교에 도착해 있다. 오늘의 나에게는 일상이지만 미래의 나에게는 꿈일 수도 있는 이 풍경들. 나는 눈을 더 크게 뜨고 가슴을 더 활짝 열고 그 풍경들을 내 안에 힘껏 담아 보려 한다.


두바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도 곧 그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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