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은 오늘 아침의 한 시점에 머물러 있다. 벌써 몇 시간 전 일인데도 그것은 마치 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고 오래도록 옷장에 걸어두던 새하얀 치마에 묻은 얼룩처럼 계속해서 나의 온 신경을 끌어당기고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작된 하루였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먹을 간식과 점심 도시락을 싸면서 동시에 아이에게 아침을 지어 먹였다. 그리고는 이 닦아야지, 세수도 잊지 말고 선크림도 꼭 발라라, 잠깐, 가방을 안 가져가면 어떻게 해,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황상 줄줄이 나오는 잔소리를 그대로 뱉어내고는 아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차장으로 뛰어내려 갔다. 지금부터는 정말로 집중해야 한다. 등굣길 도로에는 늘 차가 많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차선을 잘못 선택했다가는 지각을 하게 된다. 이제는 뇌를 어디 잠깐 빼놓고 왔대도 손이 알아서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길이지만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을 그러모아 운전대를 잡는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편도 2차선 도로로 합류해야 한다. 이미 그 위를 달리는 차들은 나에게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나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오래지 않아 나도 그 물결의 일부가 되어 길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U자형 지하도로가 나타나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 턴을 한 후 반대쪽 방향으로 난 편도 도로를 달린다. 그렇게 몇 미터쯤 이동하다가 큰길로 합류해 좌로 우로 길을 꺾어가며 더 빠르게 내달리면 학교에 가 닿는 것이다.
지하도로에 진입했을 때까지만 해도 다른 날과 다름없었다. 내 앞에 가는 저 차가 제발 시커먼 배기가스를 며칠 전에 세차를 한 내 차에 대고 뿜어대지 않기만을 바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앞서 달리던 차가 갑자기 오른쪽 차선으로 자리를 바꾸었고 내 앞쪽으로는 차 한 대 없이 뻥 뚫린 길이 보였다. 이게 웬 횡재야. 1초쯤 기분이 좋았을까? 그런데 곧이어 저 앞 도로에 앉아있는 작은 새 세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차가 다가가면 금세 하늘로 후다닥 날아오르던 그것들은 이상하게도 내 차가 가까워져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꼼짝을 안 했다. 혹시나 살아있는 생명체들을깔아뭉개는 끔찍한 일이 생길까 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에는 그다지 쓸 일 없던 경적까지 빵빵 울려보았다. 날아가라고, 안 날아가면 큰일 난다고! 그런데도 움직일 생각이 없는 새들을 다치게 할까 봐 무서워진 나는 급하게 차선을 바꿀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보게 된 것이다. 선채로 돌이 된 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새들 곁에 아마도 자동차에 치여 그리되었을 듯싶은 모양새로 죽어 있는 또 한 마리의 새를.
십여 년 전,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살던 시절에 사귀게 된 친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유대인들은 앰뷸런스가 지나가면 그 안에 탄 이가 누구든지 간에 많이 다치거나 크게 아픈 것이 아니기를 기도한다는 글을 읽고 그 친구도 앰뷸런스를 볼 때마다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가 하도 인상 깊어서 아직까지도 나는 그것을 들었던 장소와 이야기를 들려주던 친구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날 이후 멀리에서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나는 그 안에 타고 있을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회복을 빌고 있다.
안녕을 비는 마음
오늘 아침, 아이를 학교에 내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앰뷸런스 한번 못 타 보고 하늘나라로 떠났을 작은 새와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세 마리의 존재들을 위해 기도했다. 가족이었을까? 아니면 친구였을까? 기도를 한대도 한번 떠난 생명이 다시 사랑하는 이들 곁으로 돌아올 수는 없을 테지.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도 어쩌면 제삼자인 나의 마음이 덜 아프고자 하는, 다분히 나를 위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도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제 조금 후면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다시 학교로 향한다. 아침의 그 새는 어떻게 되었을까? 누가 어딘가에 묻어주기까지는 못했을 텐데... 곁을 지키던 새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내 마음속 작은 얼룩이 사라지기는커녕 자꾸만 자꾸만 커지고 있다.
작년, 우리 집에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품어 새끼를 키워냈다. 그것을 지켜본 후 나는 내 부모가 떠올라 울었다. 오늘의 나는 작년의 비둘기 가족을 떠올리고 있다.